워싱턴 벚꽃 페스티발 100주년 기념 놀이를 찾아가 보았다.
해마다 주최는 일본 대사관이라고 한다.
100이라는 숫자를 드리대며 떠드는 품새가 하수상하여 도미니카-아이티 연재를 잠시
중단하고 달려가 보았다.
동해바다를 일본해라고 꾸준히 우기는 숙명적 이웃의 속셈이 이제는 대놓고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생떼잡이까지 하는 세상이 되었기에 벚꽃 100주년 행사라니 화가
치민다.
지금까지 우리가 너무 조용히 일을 처리하려다가 발목이 잡혔다는 정치학 논문도
이곳에서 나오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 노이즈 효과에 말려들지 않으려던 전략,
정책이었다는 말도 분분하다.
하여간 워싱턴 DC에 들어서다보니 과연 시뻘건 나무 막대를 걸쳐놓은 그들의 상징물이
보이고 잔치집 고기 굽는 연기가 넘실거린다.
하지만 하늘이 그들의 편만 드시지는 않은듯, 지난달 23일 밤에는 때아닌 폭우와 폭풍이
몰아쳐서 이상기온으로 일찍 핀 벚꽃을 모두 떨구시고 휘몰아 날리셨다고 한다.
일본 대사관에서는 과연 잔치를 계속하여야 하는건지, 마지막 날인 7일 밤에 전통데로
불꽃을 올려야하는지 고민이 있었다고도 한다.
기억으로는 다섯번째인가 하여간
오랜만에 다시 들러본 미국회 의사당, 백악관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Capitol Hill이 뜻하듯
행정부 건물 보다 높은 곳에서 입법부로서의 위용을 자랑한다.
80년대 초에 두어번 들어가본 기억도 있다.
당시 문교부의 어떤 분이 "우황청심환"을 휴대하였는데, "드러그"라고 설명하다가
퇴장당한 적이 있었다. 스스로 마약이라니~~~.
근거리에서의 목격담이다.
9-11 이후에는 미리 방문 신청과 신원 조회가 있어야 입장이 허락된다고 한다.
그때는 현장에서 기다렸다가 휴대품 조사만 마치면 들어갔다.
무슨 위원회 토론하는 것도 보았다.
백악관 일부도 물론 들어가 보았고---.
이 사람들은 지금 국회 의사당을 보고 있지만 등 뒤로 시선을 던지면 멀리 워싱턴 모뉴먼트가 보인다.
그사이 스미소니언 박물관 17동을 포함하여 일대를 National Moll이라고 하는데 이번에 보니 일대가
공사장이 되어있었다.
먼지가 바람에 뽀얗게 날리는데 아프로 아메리칸 기념 박물관도 세우고 또 모뉴먼트와 링컨 기념관
사이의 긴 연못, Reflection Pool도 물을 다 빼고 고치는 중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소년도 연을 날리고 있었고
아이티 난민촌에서도 검은 연을 보았고
이곳에서도 누군가 연을 날리고 있었다.
일인들이 워싱턴 D.C.에 벛나무를 기증하고 심은것은 1912년
3000 그루였다고 한다.
조지 워싱턴이 어릴때 벚나무를 찍었다가 아버지에게 솔직히 고백을 했다는 것은
물론 지어낸 설화라고 한다.
그때 이곳에는 찍어낼 도끼는 있었으나 벚나무는 없었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수신 교과서 내용이었던 허구를 미주알 고주알 따질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도 있었으나 진실은 밝히는게 옳았고 이제 이런 이야기는 사라졌다.
워싱턴에 오면 스미소니언 박물관을 들리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도 자연사 박물관 쪽으로 가서 호프 다이아먼드를 구경하고 나왔다.
미국인을 나타내는 National Face에도 시간과 세대의 흐름에 따라
짙은 색갈이 덧칠되는 시기에 들어섰다.
아프로-아메리칸 역사 문화관이 새로 들어서는 모양이다.
워싱턴 모뉴먼트 옆으로 항공기 한대가 지나간다.
오벨리스크의 건설 기간에 남북 전쟁기가 있었다.
중간쯤에서 멈추어진 공사가 전후에 재개되면서 돌의 색조가 달리 보인다.
돌은 물론 50개 주에서 고루 수집한 것이다.
아, 작년인가 버지니아를 진앙으로 지진이 일어난 이후 탑 속의 엘리베이터는
안전을 위하여 가동 중지된 상태이다.
벚꽃의 종류는 약 180종인데 오래가기로는
이 왕벚꽃이 아닌가 싶다.
제퍼슨 기념관 주변의 Tidal Basin이라는 인공호수 주위에 벚꽃은 집중적으로 심어졌는데
지금 그 꽃 이파리는 다떨어져서 일본인들의 마음은 편치않을 것이다.
토마스 제퍼슨은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이고 독립기념문도 기초한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다.
버지니아 대학도 설립한 그에게 흑인 핏줄의 자손이 여러해 전
DNA 검사로 확인되었고 그들은 이제 한자리에서 종친회도 연다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다.
한국전쟁 기념관으로 왔다.
김영삼 대통령 때에 우리나라가 출연한 기금으로 특이한 구조물을 세웠다.
병사들의 숫자는 18명, 오른쪽 검은 돌에 얼비친 모습을 합치면 36명이 된다.
당시 미군 일개 소대 병력이다.
병사들의 앞에 놓인 돌판은 우리나라의 논밭을 의미한다고.
진흙탕과 혹한의 기억이 무슨 신드롬으로 국가의 정신을 좀먹기도 하였다.
지금은 가장 특징적인 기념 조형물로 손꼽히고 있다.
대한민국 해군 참전 용사회와 서울상대 17회 동기생들이 항상
꽃을 바치고 있다
대한민국 ROTC 출신의 한사람으로 당당하게 섰다.
링컨 기념관은 소외된 자들의 성소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저 유명한 연설 "I Have a Dream"을 외친 자리에 서 보았다.
지금은 물을 빼고 공사중인 반영의 연못 물 위에 인간의 염원이 뜬다.
하지만 링컨이 암살되고 이 기념관이 서기까지에는 오랜 세월과 우여곡절이 따른다.
제임스 로웬이 쓴 Lies Across America를 읽어보면
링컨 사후 반대당이 집권을 하면서 일이 꼬이고 흑인의 완전한 해방에 관한
법안도 꼬투리가 달리며 지지부진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1914년 이 기념관이 오랜 세월 끝에 제막될 때
흑인은 길을 하나 건너 마련된 자리에 앉아야만 하였다.
링컨의 통나무 집에 관한 진실은?
같은 책을 읽어보면 그 통나무집은 링컨 사후 30년이 지난 후에야
근거가 희박한 어떤 통나무집이 진짜로 둔갑을 하여 지금의 장소에 세워졌다고 한다.
링컨 기념관의 앞은 이제 즐거운 결혼식장으로,
혹은 억울한 자들의 통곡의 장소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연은 바람을 타고 나르기도 하지만 항상 떠 있을 수만은 없는 숙명이기도 하다.
백악관도 이제는 유색인종이 대통령이 되어 제국을 다스리는 자리가 되었다.
저격수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같기만 하다.
이 할머니도 여기 올 때마다 참 오래토록 본다.
티베트인 할머니의 일인 시위가 30년이 되었다던가---.
포토맥 강변에서 유람선을 타려다가 마음이 변하여
맥주 한잔으로 저녁 시간을 보냈다.
킬힐을 신은 아가씨가 포토맥 강변을 내려다보며
데이트를 즐기는듯하다.
마침내 일본 대사관 주최의 불꽃 놀이가 시작되었다.
미국 독립기념일의 불꽃 보다는 십분의 일 정도였달까~~~.
늦게 들린 메릴랜드 쪽의 매리엇 호텔의 밤과 아침
같은 형상의 양면이 역사를 생각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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