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포토 에세이, 포엠 플러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원평재 2012. 12. 7. 23:23

 

 

(포토 에세이)

 

디트로이트의 첫날 저녁은 "노엘의 밤" 40주년 분위기에 젖어, 시내의 바아에서 식사를 하고

뮤지컬 "닥터 제컬과 미스터 하이드"를 "피셔 극장"에서 관람하였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스의 원작은 뮤지컬로 개작이 되면서 여러가지 버전으로 갈라졌는데

이날의 공연은 브로드웨이 버전이라고 한다.

 

이전에 우리나라에서도 여러가지 버전이 공연되었는데

안내서를 가만히 훑어보니 여기 버전과 내년 1월 5주간의 한국 공연 버전이 같은듯 싶다.

 

사실 예전 우리나라에서의 공연에서는 줄거리를 너무 줄이고 그 결과 유명한 노래들,

오페라로 치면 "아리아"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뮤지컬 넘버"가

많이 생략되어 말들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이날 받은 안내 브로슈어에 나온 제작진 가운데에는 우리나라 뮤지컬의 대부격인

"신춘수(Chunsoo Shin; Producer)라는 이름이 나와 있어서 어깨가 으쓱하였다.   

  

  

 

 

피셔 빌딩 1-2층에 자리한 피셔 극장은 자동차 부속품 공장으로 유명한

피셔 재단이 오래전 건축한 것인데 지금도 이름 값을 하는 모양이다.

건물의 내부 장식과 천정 그림등이 문득 루브르 궁전을 연상케하였다.

휫샤 뽀데는 우리나라에서 지금은 피셔 바디로 이름을 바로 찾은 것 같다.

 

 

 

 

  

 

오늘의 공연은 크라이슬러가 후원하고 있었다.

크라이슬러의 최신 회심의 역작, "크라이슬러 300"이 경품으로 나와있었다.

나도 귀찮지만 추첨권을 써 넣었으니 때가 되면 저 차가 내 수중에 들어오지 않을까?

 

이곳에서 머지않은 폰티악에 본사가 있는 크라이슬러도 재기의 몸부림이다.

한때 "포냑" 승용차는 영화로만 보아도 황홀하지 않았던가~

추첨권을 담당하던 아가씨가 갑자기 "친절한 금자씨"로 포즈를 취해주어서

나는 "와룡선생 상경기"의 아우라로 대응하였는데 

아차, 당첨 가능성은 대략 그런 일들로 소진되고 말았지싶다

 

  

 

최근 개축한 이 컨벤션은 1-2층을 합하여 3000석에서 2100석으로 줄었다고 하지만 대단하다는 느낌이다.

브로드웨이에서는 보통 4-500석 이하를 오프 브로드웨이로 보니까

여기가 디트로이트의 브로드웨이로 자부하는 것도 과언은 아니겠다.

물론 오프 브로드웨이(OB)나 오프오프 브로드웨이(OOB)는 타임즈 스퀘어와 42번가에서의

거리와도 관계가 있지만.

  

 

연극이 끝나고 모두 기립박수 하였다.

(내년 초 한국 공연의 배역은 모두 쟁쟁한 한국 뮤지컬 배우들입니다)

 

 

주지하다시피 도시에도 두 얼굴이 있고 사람의 마음에도 두가지 면이 있지않겠는가.

악마의 웃음 소리가 때로 이명처럼 울려올때 

닥터 제컬과 같은 괴로움을 음미하는 순간들이 있어서

이 스토리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려니---.

 

땅 위의 험한 모양을 짐짓 외면하며 선루프를 통하여

모노레일의 구동을 바라본다.

마침 캐딜락의 본적지, 화려한 GM 빌딩 앞이었다. 

 

 

 

 

 

 

 

여기 보이는 이 교회 건물은 원래 디트로이트에서 가장 큰 한인 교회, "디트로이트 연합 장로교회"가

최초로 자리를 잡았던 곳이라고 한다.

동네가 황폐화되고 한인들도 교외로 나가기 시작하자 지금의 사우스필드 쪽에 새로 성전을 마련하여서

지금도 교인수 1000명이 넘는 큰 교회로 발전하였고 훌륭하신 목회자님들이 봉직해 오고 있다고 한다.

전에 두어번 가본 기억도 있다.

성전을 너무 크게 일구지 않고 내실에 전념하는 모양도 감화, 감동이었던 기억도 난다.

 

 

 

 

 

이야기는 그쪽 보다도 이 성전의 후일담이라고나 할까

비어있는 이곳에는 그 후 아주 특별한 흑인 목회자가 나타나서 오래동안 고생을 하며

험한 이웃을 아우르던 중 어떤 불우한 젊은이를 입양하였고~

 

긴 이야기는 기억을 벗어나는데

"모리스와 함께"에 출연까지 예정되어있던 주인공이 너무 흥분한 탓인지 갑자기

뉴욕의 호텔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하직한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사우스필드에 있는 한인 교회는 역사 40년이 되던 2007년도에

지난 반세기를 두껍고 단단한 책자로 엮어내었다.

 

 

 

둘째날 저녁도 시내의 바아에서 간단히 하고 겨울 거리에 나섰다.

 

 

 

 

빛의 향연이 이 동네에서도 화려하였다.

겨울 광화문과 태평로 쪽이 생각났다.

 

 

자동차 부품 전문의 LEAR 본사 앞을 지나는데 은빛 치장이 인상적이었다.

나목이 된 아래 나무들이 겨울 옷을 입었다.

 

Driven by Our Core Values

 

 

  

2박 3일의 짧은 겨울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여행은, 특히 겨울여행은 모름지기 우수어린 여행이 아니랴

우수를 불쏘기개로 하여 몸을 덥히면

슈벨트의 겨울 연가를 들어도 춥지않으리

하지만 젊은이들 흉내는 너무 내지말자

연가 5번 보리수 까지만 듣고 6번 (눈물의) 홍수는 사양하자.

기회가 되면 남쪽으로 배라도 타고 떠나보자.

 

(이번 디트로이트 겨울 여행 이야기 끝입니다. 편편의 이야기와

사진들이 남아 있지만 아쉬움 속에서~~~.)

 

Winterreise 중 "Der Lindenbaum"
슈베르트 / 겨울나그네 중 "보리수"

 

Franz Schubert

 

Am Brunnen vor dem Tore,
da steht ein Lindenbaum.
ich träumt" in seinem Schatten
so manchen süßen Traum.
Ich schnitt in seine Rinde
so manches liebe Wort.
es zog in Freud" und Leide
zu ihm mich immer fort,
zu ihm mich immer fort.


Ich mußt’auch heute wandern
vorbei in tiefer Nacht,
da hab" ich noch im Dunkel
die Augen zugemacht.
Und seine Zweige rauschten,
als riefen sie mir zu.
Komm her zu mir, Geselle,
hier findst du deine Ruh,
hier findst du deine Ruh.


Die kalten Winde bliesen
mir grad" ins Angesicht.
der Hut flog mir vom Kopfe,
ich wendete mich nicht.
Nun bin ich manche Stunde
entfernt von jenem Ort,
und immer hör" ich rauschen.
du fändest Ruhe dort,
du fändest Ruhe dort.


성문 앞 우물가에,
보리수 한 그루 서 있네.
그 보리수 그늘 아래서
나는 그리도 많은 단꿈을 꾸었지.
나는 그 보리수 가지에다
그토록 여러 번 사랑의 말을 새겼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나는 언제나 그 보리수에게,
나는 언제나 그 보리수에게 갔었지.


나는 오늘도 깊은 밤을 지나
떠돌아 다녀야만 했네,
그때 어두움 속에서도
나는 눈을 감았지.
그리고 보리수 가지들이 소리를 내며,
나를 부르는 것 같았네.
친구여, 나에게로 이리 오게나,
여기에서 자네는 안식을 얻을 걸세,
여기에서 자네는 안식을 얻을 걸세.


차가운 바람이
내 얼굴로 바로 불어 닥쳤네.
모자가 벗겨져 날아가 버렸지만,
나는 몸을 돌리지 않았네.
지금 나는 그곳으로부터
먼 곳에 떨어져 있지만,
여전히 나는 보리수 소리를 듣고 있네
자네는 거기에서 안식을 찾을텐데,
자네는 거기에서 안식을 찾을텐데.

 

 


Hermann Prey, Baritone / Karl Engel,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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