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화문을 거쳐서 창덕궁에 들렀다.
아직 단풍이 휘황하지는 않았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었다.
호기심 어린 시선이 보기 좋았다.
가을 바람이 도심의 먼지를 쓸어내고 구름의 운행도 빠르게 하였나보다.
세월이 구름을 타고 빨리 지나간다.
멀리 북한산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이 맑으니 가을 양광이 따가웠다.
고궁을 찾아오는 발길이 모두 이색적이다.
시선들이 한군데로 모아지는 풍경~
그런게 쉽지 않은데, 축복의 순간이려니.
궁궐로 들어섰으나 가을 단풍은 아직 인색하다.
여러해 전, 사진을 하는 친구와 이곳에 들어온 때도 10월 하순이었는데 그때는 단풍 속에 풍덩 빠졌었다.
기후가 정말 아열대로 바뀌었는지도 모르겠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방금 거쳐서 들어오니 인정전이 왼쪽으로 보인다.
나라의 중요한 의식을 치르던 곳이다.
창덕궁 후원은 시간대별로 해설사의 인도에 따라 문을 열고들어간다.
이곳은 비원으로 우리 세대에는 익숙한 이름이다.
내원 혹은 금원이라고도 했는데 원래 지어놓은 특별한 이름은 없었다고 한다.
왕실 사람들이 일반인들의 사가에서처럼 자유롭게 지내는 내정이었다.
아울러 우리나라 정원의 전형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도 하겠다.
사람들이 기다리는 모습, 그 시선들이 미쁘고 굉걸하기 궁궐같다.
외국인들에게는 따로 시간을 정하여 해설사가 안내를 한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전문이 각각이다.
내정에는 네군데 골짜기가 있어서 각각 부용지, 애련지, 관람지, 옥류천 영역을 펼쳐 놓았다.
부용지와 주합루
휴식과 학문적 용도로 쓰인 아름다운 곳이다.
부용지에 얼비친 가을이 추상화로 느껴진다.
애련지와 의두합
군자의 성품을 닮은 곳이라고 한다.
궁궐 안에는 소나무가 가장 위엄을 자랑하였고
대체로는 상수리 나무 쪽이 많았다. 물론 전문적 식생은 알 바가 아니고~.
오래된 나무의 빈곳은 우레탄으로 채워넣었다.
합성수지이지만 그 위로 버섯류가 기생하여 생활공간을 마련하였으니 흥미롭다.
아마도 기와를 다시 얹는 게 아닌가 싶다.
고백하자면 문우들로 구성된 우리는 해설사를 버리고 이른바 자유 관람을 하였다.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게 유도하는 것을 그냥 슬그머니 실천해 주었다.
연경당은 사대부 살림집을 본뜬 조선 후기의 접견실이라고 한다.
불로문을 통과하여 보았다.
늙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싫지않다.
멀리 이중의 지붕을 한 건물이 존덕정
부채꼴의 관람정
다시 부용정 쪽으로 하여 내려왔다.
대한민국의 힘!
힘 센 부인 관광단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포즈를 잡으며 폰 카메라의 셔터를 부탁하여서
청을 들어준 후,
내 카메라로도 한번 찍자고 하였더니 즐겁게 같은 모양을 재현한다.
반대 쪽으로 대칭 자세를 취해달라고 하였더니 기꺼이 응하는데
V자 순발력이 보태어진다.
대한민국의 저력인가 싶다.
여고 동창 쯤으로 짐작을 해본다.
석양이 빈약한 단풍의 색조를 조금 보태어준다.
비원을 나와서 오른쪽 첫째 건물의 뜰에 오소리가 한마리 애완견처럼 어슬렁거렸다.
사진을 찍으려니 아래 아궁이로 슬쩍 사라진다.
마치 헛것을 본듯 싶다.
해가 빠지려고 하니 어느새 저녁 날씨가 쌀쌀해졌다.
절기를 어쩌랴~
순서가 따로 없겠지만 나가는 길에 낙선재를 들렀다.
근세사의 이방자 여사와 그 비극적 삶이 생각난다.
멸실되었던 어떤 건물을 새로 올리는 모양이다.
금천교를 건너며 한 컷 하였다.
궁궐의 안과 밖은 금천교로 구획되니 이제 정녕 궐 밖으로 나가는 모양이다.
궐 밖은 아직도 시선의 잔영이 남아있다.
(시) 본다는 것은
본다는 것은
보았다고 한없이 외쳐서 얻어낸
자신으로부터의 여전히 미심한 인증서
오차범위 광대무변한
타인과의 선문답
사진기가 나타난 이후에도
마찬가지
아니 영상을 주고 받아서 더욱
등잔의 일렁이는 심지만 돋우어 낸 꼴
착시와 해석의 아우성
에밀리 디킨슨은 19세기
낭만주의 말기에
문 꼭꼭
입 꼭꼭
죽는 날까지 네편의 시만
세상에 흘렸지만
시대의 고인 물이 마르고서야
뻘 속에서 드러난
2000여편의 시 시 시
20세기 주지주의 햇볕 아래에서
이쁜 몸을 말리고 형상을 찾았으니
그녀의 말살이
또 글살이의 생애는
어느 시대 목차에 들어가야 하나
큰바위 얼굴
나다니엘 호손은
참살이 이야기의 바탕으로
일상의 햇살 말고
으스름 달빛으로 꼬아낸
로만스 풍의 피륙을 주장하였지
낮살이
밤살이
범용살이에서
진실로 보았다는 것은
말하는 자와 듣는 자의
빗금 활성 단층
그 사이에 끼인
시련과 긴장
그리고 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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