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세계여행 4
네브라스카의 부트힐
중서부 네브라스카의 오갈랄라로 들어가는 길목에 "부트힐"이라는 팻말이 보여서 가슴이 뛰었다. 아주 옛날 학창시절 "오케이 목장"의 결투라는 영화를 보았던 기억 속에 "부트힐~, 부트힐~"이라는 지명이 들어간 주제가는 언제나 뇌리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때 이래 "부트힐"은 항상 잊지못할 서부의 추억의 한 키워드가 되었다. 부트힐은 결투에서 죽은자를 끌어다가 야산에 거적대기를 덮어 씌워놓은 곳을 일컬음이다. 두 발이 삐죽이 나와있음직한데 부츠힐이 아니라 부트힐이 맞고 서부 여러 곳에 산재한 지명이 되었다. 지금 영어를 잘하는 청소년들과 달리 그때 우리는 영화 포스타에 나온대로 "오케~목장"이라고 하였고 가수 명국환의 노래를 따라"아리조나 카~보이"라는 발음에 익숙하였다.
내 친구가 사는 오갈랄라는 지금 인구 5000명도 채 되지않는 작은 마을이지만 카우보이 시대만 해도 '오레곤 트레일'이 지나가는 주요 길목이라서 여간 번창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레곤 트레일이라고 하면 남서부의 소떼들이 카우보이들의 몰이에 따라 태평양 연안지역으로 이동하는 길을 뜻하였다. 예컨대 텍사스에서 자란 긴뿔 소, "롱 혼 카우"들이 여기를 거쳐 샌프란시스코까지 올라가서 팔렸다. 지금 오갈랄라는 한적한 시골 마을로 변했지만 이 곳에서 차로 두시간쯤 걸리는 세계 최대의 '노쓰 플렛' 화물역으로 가는 중간 길목의 "팩스톤"이라는 곳은 그 때의 영화를 어느정도 지니고 보여준다. 세상 어디나 다 그렇게 영고성쇠와 부침이 있는 모양이다. 조용하게만 보이는 오갈랄라에도 카우보이 시대의 흔적이 남아있어서 밤마다 그 시절을 재현, 재연하는 쇼가 벌어지는데, 흘러간 시절의 추억과 환희, 그리고 애수와 애조도 함께 즐길수가 있다.
(저녁을 친구의 집에서 먹고 슬슬 걸어서 카우보이 바아로 갔다. 네브라스카 대학, 와이오밍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댄서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흘러간 좋았던 시절, 길에는 카우보이 들이 설치고 바아에는 미녀들이 죽치고 있는 판이니 건맨들이 모여들지 않을리 없었다. 총 싸움이 벌어지면 누군가는 총구의 건 스모크를 입으로 불어서 초연을 닦아내지만, 그의 발 아래에서는 패자가 숨을 거두었고 진홍의 피가 아직도 진득히 흘러넘칠 따름이다. 얼마후 보안관이 잡부를 데려와 쓸어진 건맨을 거적대기나 포장마차의 캔바스 천에 둘둘 말아 거리로 부터 끌어낸다. 그때 죽은자의 얼굴은 포대 속으로 사라지지만 목이 긴 카우보이 신발, 부트는 마대 밖으로 삐져나와서 마른 흙 위에 두줄을 긋고 먼지를 일으킨다. 두줄 흔적과 먼지가 멎는 곳은 동네 뒤쪽 얕은 언덕배기, 부트 힐이다.
서부 곳곳에 부트 힐은 산재한다. 특별히 유명한 곳은 "오케이 목장의 결투"가 있었던 아리조나의 "툼 스토운"이지만 오레곤 트레일 길목의 이곳 오갈랄라 부트 힐도 만만치 않다. 그만큼 총싸움 "건 파이트"가 많았다는 이야기이다. 춘향이나 홍길동의 고향이 여러군데이듯이 여기서도 서로 원조 부트 힐을 우긴다. 원래 죽어서 부트힐에 갖다 누인 패자는 고향으로 연락이 가서 연고자가 오고 마차에 실려가지만 대략은 그냥 무연고 망자가 되어 자갈 언덕, 부트 힐에 몸을 누일수 밖에 없다. 오갈랄라 부트힐에도 그런 묘지가 지천이었지만 최근 이 곳에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하여 단장을 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정리를 하였고 지금은 당시 유명했던 여판사의 묘기와 Unknown 묘기, 둘만 남겼다고 한다. 나무로 된 묘지판과 묘지는 물론 많이 남겨두었다. 이곳에는 검고 흰 색갈이 섞여서 무언가 음산한, 아다지오 풍을 뜻하는 듯한 열매를 마침내 남기는 좀 못난 꽃이 피고지고 한다. 유카 혹은 여커라고 하는 다년초 식물이다. 서양의 검은 상복과 우리네 소복이 합쳐진듯하다는 유식한 느낌이 입가까지 나왔으나 더위 속의 마른 침과 함께 꿀꺽 삼키고 말았다.
100년후의 오갈랄라 캡슐도 함께 묻혀있었다. <오래된 미래>를 위한 표석이랄까~~~.
부트 힐에서 죽은 건파이터들을 조상하고 다시 오갈랄라의 중심으로 내려왔다. 오갈랄라는 인디언 종족의 이름인데 오글랄라, 오갈라, 갈랄라 등등으로 다시 세분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이름들이 모두 Sioux 족의 지파로서 백인들이 잘못 듣고 이리저리 멋대로 나누어 기표한 혐의도 있다.
인근에 있는 큰 호수---. 요트를 소유한 부호들의 동네이지만 풍경이 마치 인상파 화가들의 유화 캔버스 같다. 소실점이 있는 풍경은 언제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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