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목단강---
목단강의 북룡 호텔(Beilong Hotel)에 여장을 풀고 림 선생은 일단 직장인 “흑룡강
조선민족 출판사”로 갔다. 휴일임에도 자기 직장에 정성이 대단한 분이었다.
아, 헤어지기 전에 "조선민족 민속 거리"를 구경 시켜 주었는데 길게 늘어선 거리가
LA의 코리아 타운 못지않았다.
입구에는 "조선민족 민속 거리"라는 이름이 큰 돌에 새겨져 있었는데 림 선생이
작명해서 시 당국이 승인한 경과가 있었다.
(이 곳도 한국 정품이면 고급으로 통하는 "한국 브랜드" 한류 현상이 있었다.)
흑룡강 성과 목단강 시에도 조선족이 많이 살고는 있지만 자치주도 아닌 곳에서
이런 저자 거리를 만들어 당당하게 유지하는 모습이 희열보다는 오히려 숙연함을
자아내었다.
다섯 시면 상점들이 모두 철시하는 법은 이 곳도 마찬가지여서 문을 닫기 직전의
백화점에서 파커 만년필을 하나 골랐다.
그리고 내가 미리 준비해 간 대학 로고가 찍힌 기념품도 약소하나마 함께 들고
"흑룡강 출판사"에서 림 선생을 만나 아파트로 향하였다.
남매를 자녀로 둔 이 작가이자 출판인의 집은 상당히 고급이었고 부인도 기품이 있는
중에 친절하였다.
부인은 따로 사업을 하고 있는 분이었다.
맏이인 아들은 결혼을 하여 연안 지역에서 교수를 하는 부인 따라 그곳에서 창업을
하였고 딸은 좋은 고등중학교를 다니느라 학교 인근의 외가에 있어서 부부만 큰 집을
지키고 있었다.
식탁에는 우리처럼 초대받은 조선족 손님이 한분 있었는데 김씨 성의 그 분은 조선족
거리에서는 물론 목단강 시에서도 어쩌면 가장 크게 식당 영업을 하는 “총경리”(사장
혹은 회장)이었다.
하루에 나가는 랭면만도 엄청났으며, 이 곳 공산당의 위원직도 갖고 있는데, 견문이
넓고 앞뒤 막힌 보수주의자가 아니어서 할말은 다하고 사는 그런 사람이었다.
남북한도 자유롭게 왕래하는 입장이어서 양비론, 양시론이 정연하였다.
박 기자가 복사하였다.)
어찌된 셈인지 부인은 1년 기한으로 지금 서울에 나가있으면서 못해본 고생도할 겸,
심심풀이로 작은 한국 식당에서 노무를 하고 있는데 “로반”(지배인)이 너무 사람을
무시하여서 감정이 매우 좋지 않다고 한다.
놀다 오시지 무슨 일이냐고 내가 펄쩍 뛰었더니 고생도 좀 해보고 배우기도 할 겸
그렇게 한 번 해본다고 하였다.
어쨌거나 남을 깔보고 무시하는 우리네 문화는 고쳐야할 큰 폐단이 아닐 수 없다.
로반이 하도 욕을 잘해서 부인이 밤마다 전화를 하고 울기도 한다면서, 이날도
저녁 8시 반경에 일반 전화를 받아야 한다고 그 분은 집으로 먼저 갔다.
앞으로 그 로반과 주위 사람들을 목단강으로 반드시 초청해서 눈을 뜨게 해주겠다고도
하였다.
(이 사진도 그 댁에서 박 기자가 복각하여 나에게 주었다. 중국 조선족 문단의
여러 유명 인사들의 청년 시절이었는데 박 기자는 면면을 잘 짚어내었다.)
김 총경리와 림 선생의 두 집안은 오랜 세교가 있어서 우리도 곁들여 크게 웃으며
저녁 식사를 즐겼다.
이 쪽 분들의 음식 대접은 과연 대단하여서 온갖 종류의 조선식, 한식(漢式) 음식이
상다리를 휘청이게 했는데 모두 부인이 만든 음식이었다.
림 선생이 조금 돕는 듯 했으나 평소의 스타일은 아니라고 안동 권씨 성을 가진
부인이 웃으며 놀렸다.
한족들은 남자들이 모두 음식을 하는데 굳센 조선인 남자들은 그런 일을 수치스럽게
여긴다는 문화에 대한 견해를 우리 남정네들은 이날 만장일치로 통일시켰다.
세분 조선족 동포들은 그래도 고국인 한국을 몇 차례 방문했던 일을 자랑으로 여기며
많은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
특히 한국의 노인들은 중국 동포들이 못 먹고사는 줄 알고 먹을 것을 강권하는 데에는
질렸다고 웃으면서 말하였다.
권 여사는 특히 성씨의 고향인 안동을 방문했던 일이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 같았다.
생애의 인연으로 치면 그 곳과는 아무 관련도 없었지만---.
푸짐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우리는 이 댁의 빛나는 사진들을 감상하였는데
두 가정이 워낙 절친하여서 양가의 가족들을 모두 함께 감상할 수가 있었다.
마침내 오랜 소원이던 “목단강 시”의 방문을 하게 된 나는 우선 연길의 호텔에서
만났던 "신롱 양로원"의 원장님을 만나는 일이 급선무였다.
아는 것은 오직 “신롱 양로원”이라는 조금 불명료한 이름과, 원장의 성명이 김 아무개
라는 정도여서 자칫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가 될는지도 몰랐다.
공산당 위원인 김 사장과 여성사업가 권 여사는 각자 갖고 있는 소스를 동원하여
전화로 탐색을 하더니 금방 위치를 알아내었다.
평일인 내일 아침에 림 선생은 출근을 해야 되어서, 김 사장과 권 여사가 우리를
안내하기로 금방 고마운 작정을 하고나서 일찍 일어선 김 사장은 내일 점심에
개장국(구육탕)과 갖은 음식으로 우리를 대접하겠다고 선언을 하였다.
림 선생 댁에는 명절날이나 휴일, 특히 신년원단이면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자고 먹고 간다고 한다.
가끔 조선(북한) 사람들도 오지만 그들은 함께 지내기를 힘들어한다고 하였다.
우리 에게도 앞으로 시간이 있으면 그렇게 찾아오라고 정 깊게 진심으로 권유하였다.
우리는 림 선생이 쓴 “동명성왕” 상하권을 염치없이 증정 받고 호텔로 돌아왔다.
림 선생은 살아있는 력사 소설 소재의 보고인 셈인데, 집필을 할 때에는 방대한 내용을
다루기 힘들어서 꼭 최금산 선생과 합작을 하여왔다고 한다.
그런데 아주 최근에 그 분이 작고를 해서 타격이 크다고 한다.
다만 몇 년 전에 작가 지망의 소년이 부모와 찾아와서 대를 이을 인재로 키우는 중인데
“작가는 천재라야 된다”는 림 선생의 평소의 지론에 꼭 맞춘 청년으로 지금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오래전 앨범에서 본 사진을 역시 복사해내었다. 왼쪽은 따님, 부인, 림 선생,
아드님, 작가 지망 소년의 아버지, 김혁 소년.)
미국의 “메디컬 소설”이나 “로 폄 소설”이 모두 내부적으로는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댄
공동의 제조품이라는 현상이 이 곳에서도 자연발생적으로 실천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일 또---)


드디어 목단강시....
오늘은 제가 일등이로군요.
어서 써야지, 누가 먼저 쓸라~~~
새벽꼬대 하고 드가서 더 잘라고 했는데
영 잠이 안오더군요. 나와서 현미 녹차 한 잔 더 묵고..
작가지망생이 아직도 저리 어린데, 미리미리 키운다,
참, 우리들로서는 생각도 못해 볼 일이지요?
하긴, 악기만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되는 건 아니지..
천재에 연마에....
동명성왕....그런 책을 언제 읽어 볼 꺼나...
역사소설은 역사 그 자체보다 더 리얼한 것이지요?
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살도 있고 솜털도 있고 체온도 있고
미소도 있고 분노도 있는....에구, 빨리 올려야지....^0^
김사장님의 부인은 어느 식당에서 일하신대요, 그래?
당장 찾아가서 위로해 드리고 싶네. 어쩜,
그런 위로가 우스워질 테지만, 사서 고생하는 분이시니,
그래도 친구해 드리고 싶은 마음...


어린 작가 지망생 김혁소년 회이팅!
그런데 사진 배경이 일장기를 연상케 하네요..
잘 읽고 갑니다.


림선생님...랭면등...싱숭생숭한 느낌이 들면서도 좋군요.
손님대접 잘 받으신 것 같아 저도 흐믓합니다.


그곳에 사시는 동포들이 모두 민족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사는 모습이 참 본받을만하고 보기 좋읍니다.
청담 님의 글을 읽으며 느끼는 사실은
일본에도
그리고 우리 나라에도
저런 타 민족을 위한 배려를 전혀 찾아 볼수 없다는 사실이죠.
바로 단일 민족의 못난 해악이라고 내가 말한다면
돌맹이가 나라 올까요 ?
같은 동포가
다른 나라에서 왔다고 말을 함부로 해대는 나쁜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면,
그 옛날,
조상중에 나라를 잃은 유민을 이끌고 다시 새로운 나라를 세워
밝은 기상을 뽑내 본들
보잘것 없는 후예들의 못난 짓거리로
부끄러움만 가득 느낀다면 ,,,,,,,,
때가 더 늦기 전에 고쳐야 겠네요.
암튼
청담님 글 읽고 느끼는 점이 너무 많았지요.
감사 합니다 청담 님 !


마음 설래며 읽습니다
눈에 선하게 쓰시니
제가 꼭 그곳에 있는것 처럼 느낍니다!!
늘 감사 합니다..


복사한 사진들을 보는 맛도 특별하네요.
여기까지 찍으시고 카메라가 고장난건 아니겠지요?
소니 수리점은 다녀오셨는지...
작가지망생을 저렇게 키우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워요.
글도 재미있지만 언제나 많은 생각까지 하게 만드시니 더욱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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