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ia : 파두(Fado)의 포르투갈 가수 |
양초와 DNA 수백억이 넘는 유산이 토지에 묻어 있는 강녕 강씨의 장손인 내가 음력 설날열린 첫번째 차례상에서 한 일이라고는 굵은 양초를 두동강 낸 사고뿐이었다.이 집안에서 유산 싸움이 일촉 즉발임을 나이 스물 댓살인 내가 모를 리 없었다.그러니 양초가 두동강난 사건은 무슨 예고편 같은 상징성이 있는듯도 하였고 하여간 느낌이 예사롭지는 않았다.부러진 양초가 새 양초는 아니었다. 며칠 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오늘까지 여러 행사가 잇달아 치루어지면서이 거대한 은빛 양초는 보는 이의 경외감을 불러 일으키며 우리 집안의 위용을 만방에 자랑하였다.또한 에보니의 흑색 촛대도 동남아에서 할아버지가 한 십년전에 사오신 것으로서 아무데에서나 볼 수 있는 종류는 아니었다.따로따로 옮길걸---, 잔뜩 모인 주위의 시선들이 의식 되어서 흑색 에보니 촛대 위에 양초를 미리 꽂아 한꺼번에 차례상으로 옮기다가 한개를 떨어뜨렸는데, 거대한 그 양초는 위풍당당한 위용에도 불구하고 여지 없이 중간이 부러져버렸다.하긴 이 양초도 며칠 사이에 일이 많았네.설 직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 장소를 옮겨가며 이 은빛 양초는 펄럭이는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힘차게 그 불빛을 팔방에 비추었지.자기 몸을 져며가면서, 무슨 싯귀같다.어쨌거나 여기 북악을 이고 있는 평창동 대 저택에서 저 멀리 속세로 내려가 양초를 새로 사올 일은 이미 선녀와 나뭇군의 전설처럼 이루기 힘든 일이었고,나는 굴건제복을 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무릎꿇고 하늘 보기를 두려워하면서 차례 행사가 얼른 끝까지 진행되기만을 숨 죽여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에이 재수 없네, 한쪽 무릅 관절이 얼마 전부터 아파 죽겠더니 다 내력이있었네. 촛대가 부러지다니 이 집안 대들보인 내 금년 신수도 훤하구먼."이건 작은 아버지, 그러니까 仲父의 푸념이었다.둘째가 무슨 대들보인가, 서까래도 못되지.언제부터 장손인 내 눈치 보았다고 신년 신수를 나의 실수에 빗대나---."에이그 잘 부러뜨렸다, 네 고모부도 잘난 그 물건 밖에서 오입질 부지런히 하다가 부러뜨렸지만 아무 탈 없이 잘 산다. 내가 혼자 집에서 속이 터지는 것 말고는---, 으흐흐흐."겨울인데도 미니 스커트를 입고 나타난 늙은 고모는 웃는지 우는지 으흐흐흐하면서 위로사인지 푸념인지를 늘어놓았다.고모부는 구정 연휴에 동남아 골프 여행을 갔다던가."피는 못 속이나 원---."이건 셋째 숙모의 앙칼진 목소리였다.셋째 삼촌은 사실 이 집에서는 열외의 존재였다.할아버지께서 부산 피난 시절, 그 곳에 여러해 계실 때에 어떤 기생을 알아서거기에서 난 소생이라는데 명절이나 기제사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숙모라는사람만 나타나서는 이 집의 장손인 나를 항상 못살게 굴었다.이 여자는 심한 들창코였다.그런데 우리 강녕 강씨 집안에서는 강씨 성을 받은 여자들은 모두 심한 들창코였다.모계 선택형 유전인자의 조화였다.숙모라는 여자는 물론 강녕 강씨가 아니었다.그녀가 만약에라도 강녕 강씨라면 숙부라는 사람은 이 여자와 상피를 붙은것이 된다.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아들 하나는 여기에서 언급하기 조차 부끄러울 만큼못나고 머저리였다. 하긴 이 집안이 나만 빼고는 모두 그러하였지만---.숙모의 성씨는 강씨가 아니고 장씨라고 하였고 적어도 호적에는 그러하였다.부산 피난시절이라는 저 혼란의 역사를 나는 교실에서만 배웠다. 어쨌거나 그녀의 내력을 밝히고자 나서는 일가친척은 물론 없었다.누가 수백억의 유산이 나눔과 버팀의 문제로 남아있는 이 집안에서 맏아들인우리 아버지 집안 이외의 피붙이와 적대 관계를 맺고자 환장이나 육갑을 하랴---.그들은 우리 첫째 집안을 주적으로하는 연합군이었다.자신들의 연맹을 강화한 그들은 이윽고 우리 로열 패밀리를 향하여 공세를 취하였는데 그 첫 전술은 분할 공격술이었다.먼저 장씨 성의 들창코 그녀가 나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졋다.공격이 최선의 방어인가.그녀는 내가 강녕 강씨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외모가 참 잘 생겼다. 이 집안이 모두 땅딸이인데 나는 키가 180센치미터였고 이 집안이 까무잡잡한 남방계 피부임에 반하여 나는 우윳빛이었다.머리?이 집안이 모두 돌대가리인데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이 집안의 전통과는 어울리지도 않게 전교에서 1등을 빼놓지 않았고,또 이 집안 내력에는 가당치 않게도 노래까지 잘 불렀다.내 어머니는 들창코 숙모인지, 장씨만 나타나면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나는 그 숙모가 오래전에 A 의과대학교의 간호사였다라는걸 어느새 알게 되었고 내가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에 어쩌면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그 A 대학 병원에서 인공 수정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으리라는 추측을 최근들어 서서히 하기 시작하였다.그 병원의 유명한 산부인과 과장이 얼마 전에 정년 퇴임을 하면서 인공 수정에관한 놀라운 술회를 한 적이 있었다.아마도 그 유명한 의사는 불임 시술에 관한 그 병원의 역사와 전통을 더욱 세상에 알리기 위하여 살신성인의 역할을 띄고 그런 위험한 발설을 하는 인상이 역력하였다.그의 충격적인 비밀 누설로 우리 A 의과대학의 위상은 아이러니컬 하게도인구에 회자되면서 이상한 명성을 더욱 누리게 되었다.과연 그는 정년과 함께 병원 법인의 이사가 되었다.내가 그 의과 대학에 입학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인가.그녀가 이 집안에서 분탕질을 내놓고 하는 이면에는 나의 출생에 관한 비밀을일부나마 알고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자는 계략이 있는건가.혹은 자기가 나보다 더 강녕 강씨 DNA의 순수혈통을 유지하고 있다는 억울함에서 나온건가.하긴 그녀의 들창코가 이 집안에서 여성들에게만 선택적으로 유전하는 DNA이고자신은 이 집안의 먼 친척뻘이 되면서 들창코의 DNA를 소유하고있다면 친척간에 상피를 붙었건 말건 악다구니를 쓸 자격이 나보다 더 있는게 아닌가.난 뭐야?"DNA"상으로는 적어도 이 강녕 강씨 문중에 낄 아무런 자격이 없지 않은가?"양초를 부러뜨린 것도 조상님의 계시라닌깐!"그녀가 또 악을 썼다."상피 붙은걸 부끄러워하지도 않네."고모가 궁시렁거렸다."모야? 이년이!"두사람이 시근벌떡하며 소매를 걷어부쳤다."에이, 이 자슥이 양초는 부러뜨려가지고---."내 아버지의 강팍한 성질이 두 여자의 앙칼진 싸움으로 촉발되어 또 도지는 순간이었다."내 새끼 실수를 가지고 너무 그러지 말아요. 난 저 왼쪽 양초가 나라고 생각했고 지금부터 저 양초가 다 탈때가지 내가 살 수나 있을까 생각 했어요."창백한 내 어머니의 말씀이었다."당신은 그럼 지금부터 나하고 누가 더 오래 사는지 시합하는 기분으로 제사상과 차례상을 보기 시작했구만. 야, 끔찍하네."유산이 아니면 오지도 않았을 대소가의 앞에서 아버지의 추태가 시동을 걸고있었다."야, 이놈, 경태야"아버지의 불호령이 나에게로 다시 떨어졌다."네, 아버지.""이놈아, 너 의과대학 수석 입학에 특대 장학생이지. 우리집에 어울리지 않게말이야.""네. 아버지.""집안에는 내림이라는게 있지?""네, 아버지.""우리집 내림은 뭐냐?""네, 아버지.""이놈아, 대답해봐! 똑똑한 머리에다가 의과대학을 다니니까 알것 아니냐!""네, 아버지.""아버지 소리 치우고 뭐냐니깐!""우리집 DNA는 모계로는 들창코이고 부계로는 키가 작고 성질이 강팍하며머리가 아주 나쁜 것이지요."퇴주잔을 내리려던 나보다 훨씬 나이든 조카님이 술이 가득한 잔을 떨어뜨렸고일전을 결하려던 들창코 아줌마와 고모도 엉덩방아를 찧었다."예전에는 혈액형 정도로 적손의 범위를 가리는 수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DNA 생물 공학이 너무나 발달하여서 염색체의 배열을 분석하면 진정한 가계의 일원인지 아닌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지요."차례상 주위에는 누가 기침만 해도 부서져 내릴듯안 얼어붙은 공기가 서릿발처럼 엉겨붙기 시작하였다."제 친 아버지는 여기 계신 아버지가 틀림 없으십니다. 제가 쓰잘데 없는 말을 하나만 이 자리에서 지꺼려도 이 적대적인 식구들 사이에서는 당장에 법적인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러므로 제 친 아버지는 A 대학의 산부인과 과장이셨던 분도 아니고 그곳에서 인턴했던 젊은이들 중의 하나는 더더욱 아닙니다. 이런 엄연한 사실은 아버지나 어머니도 확실히 알고 계십니다. 혹시 항간에 떠도는 말데로 돌아가신 억만금의 소유자이셨던 할아버지가 강요하신 전말은 더더욱 아닙니다. 제가 의사로서 필생의 소망을 갖고 있다면 그건 불임 치료에 관한 것입니다. 시시하게 의과대학 인턴들에게 화장실에 가서 수음을 하여 시험관에 담아오면 하루저녁 술값을 주겠다는 치사하고 원시적이고 부도덕한 방법이 아니라 친부와 친모의 진정한 축복 속에서 새 생명이 탄생하는 방법을 연구 개발할 것입니다. 그 연구비를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이미 저에게 격세 유증을 하셨어요. 아버지를 건너 뛰어 제게 주신겁니다."누가 꼴깍하고 침 삼키는 소리를 냈다."그럼요. 침을 삼킬 권리가 우리에겐 있습니다. 한국 불임학회에 불임연구소를지금 만드는 작업이 막 진행되고 있지요.거기에 이런 저런 역할로 참여하십시오.좋은 직업을 갖인 분이라면 오실만큼 조건이 매력적이지는 못하지만 할 일이 없으신 분에게는 소일꺼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선 할아버지의 유언을 실천하는 보람이 있잖아요.""아이고오~"하는 소리가 고요를 깨고 터져나왔다.여자 목소리였으므로 아무래도 들창코들 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