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기적을 위하여

원평재 2004. 1. 26. 06:53
일러스트 감상하세요.... miracle ^^*☆

 

지방 사립대학의 역사학과를 나와서 마침내 국립 박물관의 학예과에 자리를 잡은 나의 행적은 가히 
사학계에서는 기적에 가까운 성공사례로 꼽히곤 한다.
기적이라---.
기적이란 말을 함부로 쓰지는 말자.
이건 내가 모래 밭에 혀박고 국내 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를 어렵게 해낸데 대한응분의 댓가라는 
건방진 주장이 아니다.세상에는 진정한 의미의 기적이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낮에는 스승의 가방 모찌를 하며 주요 공사장에서 의뢰된 문화재 관련 지표 조사, 저녁에는 학원가의 
비인기 과목의 강사로 전전하며 서른이 훨씬 넘어서야 학위를 하고 국립 박물관의 학예과에 전문직을 
얻고나니 모두들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하였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1000명을 뽑는 사법 시험에서 서울 법대가 아닌 출신들수백명은 모두 기적의 
범주에 속하는 엽기적인 사람들이란 말인가.
기적이란 개념을 그런데에 쓴다는 건 언어와 감정의 낭비에 다름아니다. 
내가 늦깍이로 중앙무대의 공무원이 되고 나니 "전문직 올드 레이디들이 이 강산에 이토록 지천으로 
깔려있는 줄은 예전엔 미쳐 몰랐었요"가 되었다.
또한 이런 남녀들을 묶어주는 결혼 정보센터의 전문가들이 이토록 많은 줄도예전엔 미쳐 몰랐었다.
그들은 물론 나이든 당사자들의 부름에 따라 나온 것이 아니라 그 부모님들의 간곡한 청에 의하여 
종횡으로 뛰게 된 것이었다.
나도 물론 그런 인연 맺기 방식은 일소에 부치는 사람이었다.
인륜이란 역사적 당위성이 전제되어야 하거늘 어찌 어중이 떠중이 중매쟁이들에내 미래를 의지하랴---.
말은 이렇게 거룩하게 하지만 사실은 감정적으로 그런 방식을 능멸한 것이 아니라  믿는 구석이 따로 있기 
때문이었다.
그건 정확히 인터넷 카페를 말함이었다.
"오 마이 스쿨"을 통하여서 나는 초등학교의 3년 후배 여자 약사를 한사람 알게 되었고, 
또한 "미학/갤러리/패션을 사랑하는 자들"이라는 아트 전문 동호인 사이트를 통하여서는 웹 디자이너 겸 
대학에서 애니메이션 강의를 하는 가방 끈이 긴 여자 대학 강사를 한 사람 알게 되었다.
바야흐로 나에게는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진정한 기적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었으며 기적에 대한 
나의 기대치는 기적적이 아니라 보편적이었다.
아니 이게 어쩌다 말 장난이 된 것 같다. 
기적이라는 말 자체를 모독하고 싶지는 않다.이건 신성모독이 아닌가---.
하긴 내가 이 말 장난 때문에 귀중한 기적 하나는 이미 잃은 것 같다.두가지 기적 중 여자 약사 관련 기적은 
며칠전 대학로에서 깨진 셈이었다.
대학 병원에 근무하는 후배 여약사와 나는 일주일전 쯤 대학로에서 첫 대면을 하였었다.
파랑새 소극장이 있는 건물의 찻집이 좋다고 그녀는 메일에서 내내 자랑하였다.
"퇴근하면 대학로 큰 길을 건너가서 얼그레이 마시고 노래를 듣죠."
나는 그녀가 아마도 술이 센가보다라고 지레 짐작하였다.
"나도 동동주를 좋아해요."
나는 당당하게 메일로 답변하였고,그녀는
 "저는 파전으로 저녁 대용이 되죠."라고 답 멜을 금방 보내 왔었다. 
통판 유리 저편으로 가슴에 의약 관련 원서를 안고 키가 좀 작은 여자가나타났었지.
저녁 노을을 비껴 받으며 아담 사이즈의 그녀는 다리를 좀 끌며 통판 유리문을 들어섰다.
긴긴 메일을 주고 받으며 그녀는 자주 자신이 "퍽탄"이라고 하였었다.
폭탄의 변형인 퍽탄은 온라인으로 시작된 관계가 오프라인으로 옮겼을 때못봐줄 인물 대상을 
일컫는 표현이다.
와장창 실망을 주는 인물이 퍽탄이다.
"솔직히 저는 얼굴에 의미를 두지 않죠. 마음이 아름답고 영혼이 맑아야죠.
"나의 정신없이 써내려가는 메일이거나 문자 메시지였었다.
노총각 처지에 누군들 이런 거짓말을 하지 않았겠는가.
"아뇨. 전 인물은 예뻐요. 직장은 대학병원 약사니까 안정적이죠. 그럼에도 저는 퍽탄입니다."
아하, 알고 보니 키가 작고 다리를 저는구나.이건 퍽탄 중에서도 핵 퍽탄이 아닌가.
그녀는 방송통신 대학을 나와서 다시 동남아에서 약학을 전공하고 국내 시험에합격하여 약사가 되었다.
혹시 인물이 좀 못났거나 이미 메일로 알게된 다소 결손이 있는 학사 경력이 퍽탄의 조건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고 신체적인 핵퍽탄이라니---.
그녀는 마침 의약 분업으로 대학병원 약사들이 대량으로 퇴직하여 인근의 대형 약국에 취업을 하면서 
그 빈 자리에 취업이 될 수 있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이건 행운이었고 그런 개인사는 오히려 성공사례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나---아무래도 내 마음에 그녀는 핵퍽탄 같았다.
그러고 보니 얼그레이가 술에 얼그레 취하는건줄 알았던 돈없는 노총각에게 차 한잔에 만원씩이나 
하는 것을 매일 퇴근 무렵에 마시고 다니다니---.
모든 것이 미워보이기 시작하였다.
피부가 까무잡잡한 것 까지---.
"내가 퍽탄이 맞죠?"
그녀가 장난스레 물어보았다.
"아~아닙니다."
내가 황급히 손까지 내저으며 부인하였다.
"에이 그래도 표정에 다 쓰여있는걸요, 우하하하."
여자의웃음소리로는 과했다.
내가 당황하여 제안하였다.
"우리 어디가서 술이나 한잔 할까요?"
"아뇨. 전 술치거든요. 못마셔요. 그래서 얼그레이 차로만---."
내가 어떤 역사학회의 일원으로 대마도를 답사하고 오게된 부분은 거두절미,여기에서는 생략해도 
이 이야기에 문제가 없겠다.
이제 대마도를 출발한 페리호를 타고 돌아오는 뱃길이 부산이었고 부산에는 Miracle이라고 하는 
카페 닉네임을 갖인 여성 웹디자이너가 나의 마지막 기적의 한 꼭지를 담보하고 있다는 사실은 
앞에서 말한 바 있다.
그녀와의 첫 만남이 바야흐로 목전에 남아 있는 기적의 마지막 이야기이다.
그녀의 연구소는 페리호의 선착장과 부산진역 사이에 있었다.
상경을 위하여 철도역까지 걸어서 오다가 일행은 식당으로 갔고 나는 붉은 벽돌로 된 좀 낡은 건물로 
들어갔다.
입구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아름다운 채색의 "Miracle 웹 디자인 연구소" 광고가 나를 빨아들이듯 하였다.
아름다운 모습은 연구소 간판만이 아니었다.
자주색 모자를 쓴 미라클의 주인공, 그러니까 미라클 님 자신은 정말 동화의 세계에서 방금 튀어나온 
공주님 같았다.
"미라클님, 정말 기적이란 뜻만큼 놀랍고도 아름답군요."
"선생님도 엄살보다 훨씬 젊어보이시는군요."
그녀의 음성은 아름다운 얼굴보다 더 예뻤다.
"가만히 있자. 미라클님은 최근에 배너 일러스트를 만들어서 우리의 미학/갤러리/패션 카페에 올리신 
그 인물들 중의 한 사람이시군요. 자주색 모자를 쓴---."
"호호호. 그렇게 관심이 많으셨으니까 우선 후한 점수를 주어야겠군요."
미라클 님은 벽에 붙어있는 밝고 큰 모니터를 켰다.
거기에서는 최근에 그녀가 우리 카페에 올린 배너 일러스트레이트가 경쾌한 에버그린 노래와 함께 
신명을 내며 선명하게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모습은 열네번째의 자줏빛 모자를 쓴 아가씨와 꼭 같았다.
그런데, 그런데 열한번째의 아담 사이즈 여성, 키가 작아서 높은 밑창을 단실내화 같은 구두를 신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바로 여약사, 얼그레이 님이아닌가!
"이 그림 전체는 원래 무슨 용도로 그린 것입니까?"
"아, 최근에 드림 도움 인터넷 회사에서 종래의 카페나 칼럼 말고 홈페이지 비슷한 새로운 포럼 시스템을 
개발했거든요. 그곳에 이미지 넣는 곳이 있는데 거기 쓸려고 주문한 사람들이 많아요. 기존의 것에서 
선택하지 않고 아예 새로하나 자기 얼굴을 만드는 것이지요. 제가 그 회사의 하청을 받아서, 혹은 
개인적인 친분이나 마케팅으로 얼떨결에 사업상의 덕을 좀 보고 있지요."
"저기 열한번째 여성은?"
"아, 약사 친구 말이지요. 제 부산여고 동기인데 서울가서 성공했지요. 친해요. 걔도 포럼을 하나 열겠다고 
연락이 와서요---. 잘하면 백마 탄 기사가 하나나타날거라고 하던데요. 혹시 아세요?"
"처-천만에요. 그런데 다리를 좀 짧고 부실하게 표현하신건 아닌가 하고요---"
"쟤가 키가 좀 작긴하죠. 근데 대학 병원 약사는 하루 종일 서서 일한답니다. 저녁이면 다리가 마비 상태까지 
된데요. 거기다가 최근에는 언 길에서 넘어지기 까지 했답니다. 걔가 원래 피부도 까무잡잡해서 브라우니라는 
별명도 있었어요. 그래서 마지막 24번째 그림 보세요. 제가 보너스로 캐리커추어를 하나 더 그려 주었지요. 
말하자면 다리 다친 표시까지 하고 까무잡잡이로---."
이런 우연이 있나.이걸 기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고---.하지만 전체적 흐름으로 봐서 이건 기적 같은 우연의 
일치가 아닌가.
사이버 미라클,이제 기적을 만들 수 있는 최종의 결정권은 아름다운 미라클 님의 마음에달려있을 뿐이었다.
무슨 결정을 내리실까---?
(짐작하시겠지만 이건 완전한 픽션, 순 허구 입니다.다만 가정법 속에서 함께 생각해 보시지요. 잘 읽은 
독자의 입장에서, 혹은 불확실한 정보 속에 놓여있는 미라클이라는 인물의 입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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