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들불 축제(제주 통신)

원평재 2004. 2. 1. 10:02
"나이스 샷!"높고 달콤한 캐디의 소리가 맑은 제주의 하늘에 울려 퍼지다가 다시 페어웨이 위로 사뿐히 낙하하여 사라졌다."스윙과 임펙트가 완벽하셔요."또 달콤하고 촉촉한 목소리---."빌어먹을 놈들, 여기서 너희끼리 재미보는구나!"헐레벌떡 관리원의 카트에 편승하여 쫓아간 3번 홀에서 나는 캐디의 교성을 낚아채며 소리질렀다."어, 미안 미안!""제일 섬유"의 안사장이 손을 흔들었다.그의 뒤쪽으로는 민족의 두 번째 영산, 한라산이 새하얀 도포자락을 휘날리듯 어깨에서부터 발치까지 눈을 잔뜩 묻히고 서 있었다."아라와 오라를 구별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남강 방직"의 박사장이었다."제기랄, 다 망해가는 회사를 꾸려가는 놈이 제주도의 칸추리 클럽 이름을 어이 다 알겠노!"중소기업청의 국장을 모신 워크 샵을 일년에 두어차례 갖는 우리 섬유업계는 가끔 제주도에서도 회합을 갖였는데 오늘이 그날이었다.회의 시작은 저녁나절부터여서 안 사장이 부지런하게도 이른 아침에 티업하는 부킹을 주선해 놓았었다."아라인지 오라인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 공항에 내리자마자 택시 기사에게 빨리 가자고 했더니 오라로 갔어. 근데 오라는 오랬만에 내린 폭설 때문에 폐장이었고 며칠간 부킹도 받지 않았더구만, 제기랄! 그렇다면 아라라는 데는 있냐고 소리질렀더니 아, 제주 씨씨 말이군요, 이러잖아!""휴대폰을 꺼놓고 있었으니 이 지경이 되었지.""비행기 타고 끈 휴대폰을 내리자마자 급한데 어떻게 살려놓냐. 그냥 택시타고 달렸지."섬유회사가 어려운건 세상이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우리 잘 어울리는 몇사람은 그래도 도시 변두리에 공장 터를 넓게 잡아 놓아서 땅값으로 일단은 버티고 있는 셈이었다. 자연히 회사 경영보다는 골프운동이니 여행이니 명상회 같은데에 참여하는 시간이 늘었다. 긴장이니 스트레스니 하는 것이 공연한 헛소리가 아닌 줄을 아는 사람들은 절실히 안다.아, 찜질방에도 자주 가지---, 고 스톱은 기본이고."어서 때려."박사장이 내 드라이브 샷을 채근하였다. 하지만 잘 될 리가 있나. 나는 뒷 땅을 쳤고 공은 Ep구르르 굴러서 앞쪽에 있는 레이디즈 티에 얌전히 얹혔다."물건 떼라"는 농담이 기다렸다는 듯이 터져나왔다. 이구동성, 아니 삼구동성이었다. 나와 캐디만 빼고---.멀리 우리 앞 팀을 흘낏 쳐다보니 남자 셋을 재치고 키 큰 몸짱 여자가 세컨드 샷을 부드럽게 휘두르고 있었다. 우드 3번일텐데 치는 폼이 가히 일품이었다. "아이구, 저 앞쪽 여자 치는걸 보니 정말 떼긴 떼야겠네."나도 내 물건을 떼는 쪽에 마침내 동의하였다. 캐디도 빙그레 웃었다. 우리는 모두 의견의 일치를 본 셈이었다. 만장일치로."저 여자 그 때 그 여자 같애!"박사장이 큰 발견을 한 것처럼 소릴 질렀다."아, 명상회---."또 안사장도 생각이 난듯하였다.우리는 수근거렸는데 다음 그늘 집에서 그 말은 사실로 판명이 났다.지난여름, 업계는 부도의 위기에 떨었고 누가 명상회 같은데에나 한번 참석하여 마음을 진정시키자는 제안을 했으며 우리는 절박한 심정에서 감히 누구도 이의를 달지못했다."우리가 무슨 시인이라고?"누가 한마디 딴지를 걸만도 한데 군말이 없었다."임마, 시인들은 그런 데에 참가하지 않아!"군말이 나왔더라면 아침에 겨우 부도를 막고 나온 국문과 출신의 내가 소리질렀을 것이다.1박 2일 코스의 명상회는 가부좌 트는 법과 요가, 복식 호흡 등의 형식 갖추기로 시작하여 내공을 쌓는 법 등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아침 고요 수목원으로 가서 숲 속의 나무 사이로 옮겨다니며 "생명주의 철학"같은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끝으로 "행복은 항상 행복이고 불행은 항상 불행이다"라는 화두를 받았다.요컨데 기쁜 마음으로 살면 항상 기쁘다, 그건 마음 먹기에 달렸다---, 그런 참으로 "위대한 결론"이었는데 지금 그 이야기를 풀자는 것은 아니다.몸짱 교수님---.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계기가 있다면 이런 건가. 교수님의 몸매는 인터넷에서 세계 최고의 몸매를 눈요기하는 이 시대의 눈 높이 수준에도 불구하고 가히 아시아의 자랑일만 하였다.여름이라서 좀 노출이 심했냐고?천만에, 매무새가 단정한 그녀의 옷을 우리의 고성능 투시력이 꿰뚫었을 따름이었다.나무 사이에서 시원한 마직 투 피스를 입고 강의를 진행한 젊은 강사가 천만부당으로 현직 교수일리는 없었겠지만 팸플렛에도 강지은 교수였고 우리도 그녀를 당연히 그렇게 불렀다. 아니 그뿐 아니라 인도의 무슨 연구소에서 박사학위도 받았다고 되어있어서 우리는 때때로 강박사라는 호칭에도 인색치 않았다.마음이 대체로 평정을 얻게된 그 프로그램의 둘째날 저녁에 우리 집행부는 대학 부설의 최고 경영자 반에서 흔히 그랬듯이 명강사를 모신 뒷풀이 행사를 가졌다.워커힐의 중국식당 "금용"에서 통판 유리로 한강을 내려다보면서, 오늘의 명강사로는 당연히 몸짱 교수님을 모시고서---. 그녀는 얼굴 모습도 사람의 넋을 빼는 수준이었다."아,  넋이 빠집니다."누가 아부하였다. 아니 이 경우에는 아부가 확실히 아니었지만 저 사람 처음부터 저렇게 진솔해서 사업상의 '네고' 치기는 어떻게 하나---.그녀는 큰 백에서 부시럭 거리더니 곰팡이 냄새가 나는 오래된 책을 대여섯권 내 놓았다."제가 책 장사예요. 희귀 고본을 중개하죠. 동경의 간다에 있는 서적상들을 훑어서 세계적인 희귀본을 구하여 우리나라의 유명인들에게 파는 것이지요. 오늘은 특별히 미술책들을 좀 골라왔어요.""명상 비즈니스가 잘 되지 않는군요?"누가 낯두꺼운 질문을 했다."아, 그건 오가나이저가 알아서 하니까 저야 강사료만 챙기면 되죠."표현이 조금 거칠었다.아무튼 이 장사도 잘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생명주의 철학은 어디에서 터득했어요? 인도에서 학위받고 수행했다는건 좀 수상쩍고--- "내가 날라리 업계의 동업자 같은 친근미를 보이며 까놓고 이야기하자는 식의 접근을 했다."간다 서적상에 가면 별게 다 있잖아요. 거기서 수행 좀 했죠. 책과 함께 호호호."그녀의 꿈은 희귀 고본 서적상을 여는 것이었다."고전 음악을 틀어주고 차도 팔고---, 책은 주문을 받고 구해서 택배도 하는거죠.""잘 될까요?"나의 걱정이었다."한번 망했어요. 그래서 요즈음은 동반 가이드라는 걸 해봐요. 여행 가이드인데 한 사람도 좋고 그룹이면 최고죠. 목적지의 문화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해설을 최고의 장기로 삼지요. 인바운드로는 제주도가 전문이고 아웃바운드로는 대만과 인도네시아가 좋아요. 제가 대학에서 일본어과를 나와서 일본어에 강하거든요.""둘이서도 다녀요?" 누가 침을 삼키며 되물었다."그럼요. 하지만 쓸데없는 상상은 금물이예요. 저는 뜨거워 보여도 피가 차가워요. 실제로 체온이 0.5도 가량 낮답니다. 그래서 술은 좀 좋아하나봐요---."그녀는 금문 고량주를 거푸 마셨다. 부분별로 적절하게 딱 붙고 또 적절하게 느슨한 실크 원피스가 에어컨 속에서 살짝 추워 보였다."저는 제주에서 살고 싶어요. 300개도 넘는 '오름'을 매일 오르며 그 중에 가장 좋은 곳 밑에서 북 카페를 열고 평생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때로 해외 여행 가이드도 하면서---. 저는 오름 귀신이 붙었나봐요. 오름만 보면 소름이 돋으면서 정신이 몽롱해져요.""오름 가운데에는 처녀 귀신 설화도 많으니까 아마도 강박사는 그런 귀신이 환생한 모양이오."내가 알은체를 좀 하였다. 그녀의 눈빛이 내 눈으로 꽂혀 들어왔다.눈빛이 부담스러워서 내가 또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냈다."서울에서도 망한 북 카페인데, 그게 제주의 한적한 오름 아래에서 가당키나 하겠오. 그리고 망했을 때나 지금이나 자금은 어디서 구해지나요? 나 같으면 그런데는 투자하지 않겠오만---."사실인지 아닌지 그녀는 재미있는 답을 하였다."아, 일이 없을 때에는 부모님이 하고 계시는 부추 밭에서 부추를 베죠. 비닐 하우스에서 한 천평 가량 하는데 두어 달 마다 한번씩 베어서 팔면 수입이 크게 짭잘해요. 물론 하우스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땀을 뒤집어쓰며 베고 나면 몸무게가 3킬로는 금방 줄어요. 샤워하고 나면 날죠, 날아.""그게 어디 있오?""상계동 쪽에 있어요. 오빠와 제 이름으로 되어있지만 아직은 부모님이 움켜쥐고 계시지요, 호호호.""아이구 부모님 만수무강 하셔야겠어요.""염려 마세요. 허튼 짓은 안해요.""하긴 한번 망한걸 허튼 짓 했다고는 보지 말아야지요. 나도 이거 국문학과 나와서 부모님이 공부나 더 하라는 걸 공연히 가업을 물려받는답시고 섬유업계에 뛰어들어서 후회가 막급이요."우리는, 그리고 나는 그녀를 그 이후에 한 두 차례 만났다.그녀 쪽에서 연락이 온 셈이었다.하지만 구멍가게 하기도 바쁜 내가 제주의 오름이나 인도네시아로 여행할 형편은 아니었고 곰팡이 냄새나는 책을 살 마음도 전혀 없었다.그리고 그녀는 사라졌다."강 박사 오랬만이요."그늘 집에서 정말 오랬만에 다시 맞대면이 되면서 우리는 반갑게 인사하였다.이제는 박사라는 호칭이 좀 희극성을 띄고는 있었지만---. 그녀는 일본 관광객과 골프 일행이었다. 간다의 서적상들이라고 하였다.그 쪽 일행과의 말의 방벽을 이용하여 우리는 또 기탄없이 감탄사를 발하였다."강 박사 몸매는 정말 짱이네."안 사장이 말을 낮추고 있었다."얼짱은 아니구요?"기민한 응대를 하면서도 그녀의 눈매는 내 쪽을 향하고 있었다.일본어와 국문학의 만남인가, 왜 이렇게 우리는 통하지."오늘과 내일, 애월읍 새별 오름에서 정월 대보름 들불 축제가 있어요. 한번 꼭 오셔요. 저도 진행 위원인데 저녁에는 춤사위도 한판 벌일 거예요. 몸짱 한번 감상하세요.""오늘이 아니고 내일이 대보름 날 아니요?"내가 물었다."그렇죠. 그러니까 오늘은 전야제인 셈인데 놀이 마당은 많아요. 달집 만들기 대회도 있고---, 달집 태우기와 오름 들불 놓기는 내일이지만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바깥의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나도 급히 일어나서 그녀를 뒤쫓았다."제주에서 사나요, 강박?""주로---""오늘 저녁부터 내일 오전까지 난 바쁘고 내일 오후 비행기로는 올라가야해요. 내가 묵는 곳은 새로 개장했다는 라마다 플라자입니다. 8**호실입니다. 밤에 연락하고 한번 만납시다. 다른 뜻은 없고---."나 참, 끝말은 왜 토로 달았나."힘들어요. 아니 반반이에요."여자 화장실 입구에서 갈라지면서 그녀가 내 손을 꼭 잡았다 놓았다. 바깥바람 탓도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그녀의 손은 0.5도 정도 차가웠다."강박은 아무래도 인문정신이 몸짱 속으로 잘못 들어간 것 같아요. 아니 몸짱이 인문정신을 걸터앉아서 괴롭히던지."나는 그녀의 잘록한 허리 아래로 예쁘게 튀어나온 엉덩이 살에 눈을 주며 그녀가 듣거나 말거나 중얼거렸다.이날 내 골프 스코어는 형편없었다."한라산을 눈앞에 두면 무조건 오르막 퍼팅이에요."라는 캐디 아가씨의 조언이나 "골프 역사 300년에 퍼팅 짧게해서 홀인하는 경우가 없었지"라는 박사장의 농담도 별로 귓전에 들어오지 않았다.이날 저녁 라마다 제주에서 열린 워크 삽은 업계가 어려운 형편이어서 오히려 성황이었고 중기청 국장의 정책 설명회를 끝으로 방파제 쪽 횟집으로 회의장은 이동하였다.세상의 모든 것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한라산 소주도 도수가 약한 것이 그 사이에 나왔다.우리는 약한 한라산 소주에 맥주를 섞은 다음, 크게 썬 레몬으로부터 즙을 쭉쭉 짜 넣은 비바리 칵테일을 만들어 마시면서 업계의 시름을 덜었고 자정이 넘어서야 다시 걸어서 호텔로 돌아왔다.아차, 강 박사!떨림으로 해 놓았던 휴대폰에는 기록이 없었고 프론트 데스크에도 메모가 없었다. 역사에 없던 일이 일어나랴. 그래도 반반이라고 했잖아.나는 창을 열고 발코니로 나갔다. 차가운 겨울 바람과 파도 소리가 몰아쳐 들어왔다. 저 멀리 해원(海原)에서 원양으로 나아가는 거선의 어깨쭉지에 붙은 광망이 가물거렸다.

유클립투스의 추억 (Horchat Hai Caliptus)...Ishtar Kshe Ima Bah Ahena Yafa Utzeira Mos Az Aha Al Give A Bana Hahait Halfu Haavivim Hatzi Meah Avra Vetaltalim Halchu Ciba Beintaim Aval Al Hof Yarden Kemo Meumal Lo Kara Ata Adumia Vegam Ota Ata Horad Horchat Hai Caliptus Hagesher Lasira Vereah Hamaluah Al hamaim Horchat Hai Caliptus Hagesher Lasira Vereah Hamaluah Al hamaim Bashebil Hine Yoredet Edat Hatinoqot Hem Bayarden Irsha Shebu Ragtaim Elu Hatinoqot Kbar Lambu mispor Ish Mihanearim Oshim Mishunaim Aval Al Hof Yarden Kemo Meumal Lo Kara Ata Adumia Vegam Ota Ata Horad 햇새벽 지중해의 금빛꽃 Ish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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