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먹고 사는 터전의 어른이어서 마담은 그 날밤 소복을 하고 계동 사옥으로 문상을 가서
큰 절을 하며 망자인 왕회장께 진심으로영결의 인사를 올렸다.
이어서 나오는 길에 비원쪽을 바라보았더니 지금은 프리티 우먼이 빌라를 지은,
당시는 민둥산인 비탈로 혼불이 움직이는 모양이 또 보였다.
순간 계동사옥의 어떤 과장이 그쪽에 땅나온 것이 있더라는 이야기를 밥 먹으러 와서 하던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귀여운 여인은 다음날 앞뒤 재지 않고 그 과장을 통하여 억지를쓰다시피하여 60평을 샀고
그 옆의 60평짜리 땅 주인과 서로 합하여 빌라를 지었다.
혼불 탓인가, 과장의 덕분인가 사업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내가 마침 우리가락을 담은 CD를 교보에서 산 것이 있어서 아래의그림과 비슷한 재킷을 보여주었더니
자기가 본 남녀의 혼불과 꼭 같지는 않으나 매우 흡사하다고 무릅을 쳤다.
위의 그림은 남자의 혼불같고 아래는 여자의 혼불과 닮았다고 했다.
"혼불은 무섭고도 대단해요. 대나무 숲은 혼불 맞으면 말라 죽어요. 소나무는 혼불 맞으면 더욱 청청해지고
관솔도 알차진대요. 계동 사옥바깥에 심은 대나무 숲은 그 날 이후 다 말라죽엇어도 소나무는 청청하잖아요.
대나무 숲도 이제 모두 소나무 숲으로 바뀌었어요."
말을 마치며 프리티 우먼은 몸을 조금 떨었다.
그 자태가 또 더욱 고혹스러워서 사람을 미혹시켰다.
"혼불을 읽어봤소?"
내가 물었다.
"최명희의 혼불요? 그럼요."
"거기에도 혼불에 대해 소상하게 나와요?"
내가 물어 보았다.나는 그 방대한 대하소설의 첫권에 손을 대다가 말았었다.
그 광대한 모국어의 바다를 나 같은 게으름뱅이가 어찌 항해하였으랴.
"그럼요. 소상하게 나오죠."
프리티 우먼의 단호하고 예쁜 대답.
"당신은 정말 비원 안마당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소."
마침내 건축가도 감동과 감격어린 선언을 하고야 말았다.
"우리 언제 그 빌라에 가서 왕궁을 내려다 보자. 그리고 헨델의 왕궁의 불꽃놀이를 들으며
크게 축배를 들자. 이 풍진 세상을 이기고 마침내 왕궁을 점령한 프리티 우먼을 위하여!"
P국장도 기염을 토했다.
"네. 평일날 2시에서 다섯시까지 불꽃놀이 한번 쏠게요. 주말에는 대학 다니는 아이들이 집에
있으니까요."
마담의 흐뭇한 찬성.
"주말에는 원주에 있는 군인 남편도 오잖아!"
국장의 첨언.
"아참, 그렇지."
남편 오는 날이 "아참 그렇지" 수준이라니.
그러나 우리 나머지 둘은 아무 토도 달지 않았다.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선생님은 어디 사세요?"
"분당이오!" 내가 말했다.
"아, 그럼 이번에 파크 뭔가하는 것 특별 분양 받으셨죠? 그쵸?"
프리티 우먼이 나를 빤히 보며 물었다.
나는 처음에는 장난인줄 알았다.
그래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더니 "정말 그럴줄 알았어요."하며 "큰 돈 버셨군요"하였다.
내가 펄쩍 뛰었다.
정말 그런게 아니라고 싹싹 빌다시피하여도 프리티 우먼은 믿지않았다.
"똑똑한 사람들은 다 그렇게 벌잖아요."
프리티 우먼의 말은 확신이었다.
할수 없이 그녀 앞에서 당장에 1가구 2주택이 된 나는 그건 그렇고 왕궁의 불꽃놀이는
꼭 해야된다고 화제를 돌렸다.
프리티 우먼이 이제껏 속고만 살았냐는듯이 소리질러 건배 제의를 하였다.
"이제 곧 봄이 오면 저희 집과 왕궁에는 진달래, 개나리가 가득해요! 그걸 보러 오셔야해요.
제가 개나리! 하면 진달래!라고 화답하세요."
그녀가 아름다운 입과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진달래!"
우리도 우물우물 따라하였다.
"개나리---."
그러나 국장은 "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라고 느릿느릿 화답하였다.
"개나발"이라고 세글짜로 줄여서 말하지 않은 것만 다행이었다.
"왕궁의 불꽃놀이"에 대한 건배 화답으론 좀 심하잖아?"
내가 힐난하였다.
"프리티 우먼 탓하는게 아니라 나라 꼴 때문이지."
그의 답변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