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가 왔다.현우가 미국에서 서울에 왔다.유부남 유부녀에 아이들은 모두 대학을 다니는 우리가 국제 전화를 하게된지도 벌써 몇년이 지났을까---.물론 자주하는 전화는 아니었다. 두 주에 한번쯤일까---.시차 관계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가 공처가 같다는 짐작이 갔다.그것도 심하게. 불쌍한 녀석이---.현우는 내 친정이 있는 경북 영덕에서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다.나는 어선이 여러척 있는집의 고명딸이었고 그는 같은 동네의 넉넉지 않은 자기 고모 집에 얹혀사는 고아에 다름 아니었다.아버지는 우리집에서 운영하는 "대구리 선"의 선장이었는데 어느해 풍랑에 시신도 찾지 못하게 되었고,어머니도 몇년후 현우를 고모집에 맡기고 울산 공단 쪽으로 사라졌다고 한다.우리 집에서는 때때로 이 고아 소년에게 보탬을 주었으나 배를 타다가 물귀신이 된 사람이 어디 한 두 사람이어야지---, 내 어머님의 탄식이 기억난다.초등학교를 같이 다닐 때 그는 공부도 빼어났지만 어느틈에 배웠는지 학교에 있는 풍금도 멋있게 연주하여서 미성(美聲)이라고 과찬받는 돈있는 집안의 고명딸인 내가 노래를 할 때면 어김없이 반주를 맡았다.입성이 초라한 그는 내 그림자 밟기를 좋아하였고 그럴 때마다 나는 도망 다니면서도 기분이 좋았다.나는 지나놓고 보니 운명적으로 평생을 그로부터 도망다닌 셈이었고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아마도 거의 나의 그림자를 밟아보지 못하였을 것이다.항상 한발 늦은 셈이었다.나는 서울로 올라왔고 그는 강구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부산에 있는 수산대학에 들어갔다고 했다.모두 고향의 여자 동기들로 부터 한참씩 지나서 들은 풍문이었다.내가 이화여대의 심리학과에 들어가 다니던 1학년 때, 메이데이, 5월의 축제에 그가 수산대학 교복을 화려하게 입고 나타났다. 축제에 꼭 참석하고 싶다는 편지가 내가 다니던 여대로 왔고 나는 또 답장을 보내고---, 그런 기억이 난다.철로 위의 교문을 지나면 바로 보이는 "신단수" 아래에서 만나 "휴웃길"을 돌아올라서 우리는 일년중 하루만 개방되는 금남의 기숙사에도 들렀고운동장에서 메이 퀸 뽑는 행사를 구경하다가 "이대 오르기" 계단을 숨차 오른 다음 후문으로 나가서 밥을 먹었지, 아마도 석란이었던가---.아니면 후문 그린 하우스였던가---. 수묵 담채 : "梨大 오르기"수산대 교복은 화려했으나 그의 얼굴은 여위었고 안색도 좋지 않았다."수대의 이름난 바다 훈련이 고되구나.""아니야, 내 적성에 맞지않을 뿐이야.""근데 왜 들어갔어?"내 말에는 감정이 실려서 음정은 흐느껴 나왔다.현우에게 진정으로 감정이 실린 말을 한건 이때가 처음이었다.공부 잘하는 아이를 무시할리는 없었으나 나는 그를 그저 공부 잘하는 고아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대했던 것 같다.그게 그에게는 항상 가슴에 못질 같은 것이었던걸 넉넉한 주인 집의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수대는 우선 돈이 들지 않았고 또 물귀신된 아버지의 한을 풀 수 있는 방법이나 과정이 있지않겠나---, 그런 생각과 기대로 무조건 들어갔는데 내가 몸 담을데는 아닌 것 같아.""불쌍도 해라."이건 당시에 서울의 대학가에서 흔히 쓰던 농담 비슷한 소리였다."Pity, pity"라고 영어로 소리지르던 친구들도 있었다."삐찌에, 삐찌에"라고 불어로 나즉이 한숨 쉬듯 말하던 친구도 있었다.그러나 그는 나를 빤히 쳐다 보더니 말조심하라고 퉁명스레 으르렁거렸다.동정 받으며 살아온 세월이 지긋지긋하다는 것이었다."아이구, 난 널 동정할 위치도 아니고 그럴 생각도 없어."나는 당황하여 그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이었다.그러자 그는 와락 내 손목을 감싸쥐고는 보드라운 내 손 바닥을 그의 입술로 갖여갔다.까칠한 수염이 내 가엽도록 보드라운 손바닥을 찔렀다."교복 입고 이러다 너 퇴교 당하겠다.""아무 상관없어."그가 내 귓볼에도 입술을 잠시 스쳤다. 그 뜨거운 입김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이윽고 그는 내 손목을 놓았는데 순수와 연민과 열정이 그 짧은 순간에 우리의 손을 통하여 두사람 사이를 오간 것만 같았다.다음해 이던가, 그 다음해이던가, 그는 국립 서울대학교의 의과대학에 들어갔고 아르바이트를 잘하여서 학교 다니기도 쉽다고 하였다.우리는 자주 만나지 못하였다. 그는 공부와 아르바이트 때문에, 그리고 나는 미국 유학을 준비 중이었기 때문이었다.그가 예과를 마치고 본과에 올라가던해 여름쯤인가 우리는 좀 길게 만났다."신원아, 내가 여유가 있으면 결혼 신청을 하고 싶다만---.""웃기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웃기지 말라는 이 말도 유행어 같은건데 그는 표정까지 변하면서 진저리를 쳤다. 동기들 간에 그가 인기가 없고 까다로운 아이라는 소문이 생각났다.나에게는 물론 전혀 까다롭지가 않았는데---."너 나 무시하는 소리 아니지?"그가 내 손목을 꼭 잡더니 내 손바닥을 또 자기의 입술에 대었다.역시 까칠한 그의 턱 수염 자국.차라리 키스를 퍼붓지. 불쌍한 녀석."서울 의대생을 누가 감히 무시하겠니? 하지만 난 곧 유학을 떠나.""어디로?"그의 얼굴이 굳어졌다."미시간 주립대학이야. 랜싱, 이스트 랜싱에 있는---""전공은?""학부 때처럼 심리학이지. 하지만 내가 뭘 아니. 산업 심리학을 할지, 홍보 광고 쪽을 할지---.""그러지 말고 나하고 결혼해서 살자. 내가 과외도 하고해서 먹고 살만해. 의대만 졸업하면 금방 군의관이 되어서 아무 문제없이 잘 살거야."그가 반팔 셔츠 입은 팔로 내 어깨를 감쌌다.그는 팔뚝에도 털이 많았다.서걱거리는 그의 털의 감촉을 표준삼아 나는 평생 남자를 재단해 왔는지 모르겠다.물론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 없는 기준이었다.예를 들면 "남편은 현우보다 털이 적다" 이런 식으로---. 물론 팔둑과 턱 부근만으로 판단 기준을 삼을 때의 이야기이다.그 이상의 상상---?망칙하여라.그게 내 한계이자 미덕이고 온존한 내 삶의 반경이자 방책이었다.코오롱 스포츠 센터의 수영 코치는 현우 보다 털이 뻣뻣했다. 내가 첫 아이를 데리고 귀국해서 처음 스포츠 센터에 등록했을 때의 그 코치는 물 속에서 나를 얼싸 안다시피 코치하였지.많은 여자들이 그런 접근에 녹는다고 하는데 나는 얼어버렸다.미국애서 마구잡이로 치던 골프를 교정한다고 한국에 들어와서 석달간 계약했던 인도어 골프장의 박 프로---, 그 녀석은 내시 같았어, 이 경우에도 물론 보이는 부분만.나는 아직도 오로지 남편 한사람만을 사나이로 알면서 살아왔는데 다만 이런저런 공적, 사적인 자리에서 다른 남자들을 보게 되면 그들의 털이 어떤가하고 눈여겨본다.누구에게도 말못할 나의 이런 기행(奇行)으로 판단해보면 현우는 아무래도 내 첫사랑인가 보았다.만약 그런 생각이 틀렸다면 나는 첫사랑도 없는 인간인지 모른다.랜싱은 단조로웠다.특히 캠퍼스가 있는 이스트 랜싱은---.내가 남편을 만난건 옛 쏘련의 "KAL기 격추 만행"을 규탄하는 데모 집회에서였다.푸드 사이언스를 전공하는 그는 유학생 모임의 회장으로서 당시만 해도 겨우 30여명 밖에 안되는 대학원 유학생들을 조직화하고마지못해하는 학부의 교포 자녀들까지 엮어서 대규모의 집회를 유도하였다.우렁찬 남편의 목소리는 나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커플이 된 것은 그의 강력한 대쉬와 함께 서울에 있는 양가의 부모가 원동력이었다.남편의 본가는 당시만 해도 그리 크지않은 식품 제조회사를 운영하였다.푸드 사이언스를 전공한 배경을 알만 했다.졸업식날 우리는 이스트 랜싱에 당시만해도 유일하였던 한인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남편은 곧장 시카고에 있는 곡물회사 "카길"의 선물 시장에 투입되었다.십여년 이상 그는 회사내에서도 아시안의 자랑이었다.특히 그가 동남아의 "팜 유"를 취급한 것은 행운이었다.고국에서 라면의 우지 파동이 일었을 때 시댁의 식품 회사는 팜유로 만든 라면으로 한 밑천을 잡았다.아니, 남편에 따르면 라면도 라면이려니와 사실은 팜유의 국내 수입선을 장악하여서 떼돈을 벌었다고한다.회사가 커지며 남편은 급거 귀국하여 경영을 맡았다.나중에 안 일이지만 현우가 미국으로 나간 것은 우리가 시카고로 가서 자리를 잡은 이후였던 모양이다.소식이 끊겼을 때이니 내 결혼도 몰랐던 모양이다.그는 미국 의사 협회, 그러니까 AMA에서 실시하는 ECFMG에 합격하여 뉴욕에 산재한 "제너럴 호스피탈"로 진출하였다.1년에 한번씩 여섯번이나 쳐야하는 전문의까지의 시험을 현우는 6년에 걸쳐 한번도 실패하지 않고 끝마쳤다.전문의가 되어서 이제 평생을 두고 근무할 병원을 찾아보니 디트로이트와 캔자스 시티에서 제의가 왔다.디트로이트면 바로 미시간 주가 아닌가.더우기 "오크우드 병원"이면 포드의 생가가 가깝고, 아니 그게 아니지.랜싱이 지척간이 아닌가---.그 때 나는 이미 시카고에서 겨울철에 눈을 잘치우겠다고 공약한 사람이 시장이 되는 전설의 현장을 호호호 구경하고 있었는데---.그는 항상 역경 속에서 한발 늦었다.이런 일들은 현우와 내가 전화를 걸면서 지난 3년간에 모두 알게된 사실이었다.전화도 그는 길게 하지 못했다.전화 청구서에 흔적이 남는 것을 그는 기피하는듯 했다.그렇다고 내가 전화를 하기에도 그의 근무 시간과 시차가 장애물이었다.가끔 그는 전화 속에서 흐느끼기도 하였다.작년인가 그는 큰 아들이 "앤 아버"에 있는 "Michigan 대학"을 나와서 하바드 "로 스쿨"에 진학하기 위하여 연세 대학교 국제 대학원으로 유학을 시킨다고 하였다.미국의 법학 전문 대학원이 그런 캐리어를 요구하는 모양이었다.현우의 아들이 미리 나와서 연세대 대학원에 합격이 되었고 부부가 마침내 서울로 나들이를 오게 된 사연이었다.우리 아이들이 모두 서부의 그만그만한 대학에 유학을 가서 다니는 것과는 좋은 대조였다. 우리도 아이들 때문에 캘리포니아에는 무척 자주 다녔다.남편의 출장과는 별도로---.하여간 현우가 나왔다. 사랑찾아 구만리가 아니라 아들 덕택에 마누라와---.그가 온지는 사실 이틀이 지났다.그런데 이 불쌍한 녀석이 이틀 동안 통 소식이 없다. 미국에서 보다도 더 전화를 못하네.어제 오후에는 초등학교 동기들이 환영회를 한 모양이다.나는 집안 일로 갈 수가 없었다.다녀 온 친구들 말이 놀랍게도 부인이 그 자리에 동반을 했더란다.잠시 동안?아니 오밤중까지 뻗쳐서 노래방 까지 따라왔어, 강파르게 보이더라.출국 때 까지도 전화하긴 힘들겠네.허탈함이 웃음으로 변하던 오늘 아침에야 그는 겨우 전화를 했다."내가 차 갖고 나갈까? 미국엔 지천인 메르세데스 벤츠야""아니야, 내가 택시타고 너희 집이 있다는 성북동으로 갈께, 아침 10시에서 11시까지 1시간 동안은 시간이 될듯싶어."나는 분통이 터졌으나 사실 감동과 기대는 이틀전부터 목빠지게 전화 기다리다 오늘 아침에는 이미 사라졌지,이번엔 키스라도 해볼까---, 내 달콤하고 작은 음모의 짜릿함도 전화통을 꼬나보며 안달하던 시간과 함께 사라진지 오래였다."나도 사실 오늘은 힘들어. 아니야, 조선 호텔의 피트니스 센터에서그 시간에 만나자. 12시에는 남편이 그 옆 오킴스 클럽으로 외국인내외를 초대하여 점심이 잡혔어. 그 전에 운동이나 함께하며---."그가 지하 피트니스 센터의 계단 아래에서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주름살과 약간의 흰머리 말고는 옛날과 꼭 같았다.그 나이에 배도 나오지 않았다."몸 관리 잘했네."내가 웃어주었다."아~~"그가 신음하더니 이윽고 내 손목을 꼭 잡았다.분통같아서는 홱 뽑아버릴려다가 나는 불쌍한 녀석에게 또다시 억울한 감정과 턱없는 실망의 구석을 만들어주지 않기로 결심했다.아니 그의 찬 손이 오래 잊었던 내 형제 자매의 체온같았다.나는 내 락카에서 꼭끼는 땀복으로 옷을 갈아입었고 그는 옷을 빌려입은 다음 나란히 러닝 머신 위에서서 달리기 시작하였다."감격의 시간도 45분쯤 밖에 남지 않았어---."나의 이죽거림."45초라도 만나보니 한이 없네."그의 신음섞인 부르짖음.그의 팔둑에서는 갈색의 털이 갈기를 세우고 주인의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었다."우리 스위밍 풀로 가자."분초를 다투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땀복을 벗고 그는 트렁크 형으로나는 준비된 비키니로 갈아입었다.옷 갈아입는 날렵함과 풀 속으로 다이빙하는 찰나적 동작들!우리는 머리칼에 적당히 세치, 아니 흰머리칼이 난것 외에는 잃어버린 시절의 청년과 같았다.물싸움을 하면서 나는 그의 팔뚝에 내 팔뚝을 부딪쳐 보았다.서걱거리는 소리와 살을 에이는 감촉이 동짓날 갈대같았다.우리는 누구랄 것도 없이 코너 쪽으로 가서 서로를 안았다.그의 팔과 아니 손바닥이 나의 어깨에서 등으로 또 자랑스런 나의한줌 허리로,그리하여 마침내 내 둔부를 갈망에 차서 쓰다듬었다.서걱이던 팔뚝의 털도 물결따라 유영하고 있었다.아아, 그의 팔뚝과 손의 움직임이 얼마나 감각적이었으면나는 한동안 부드럽고 큰 그의 남근이 나의 델터지역을 점령한 줄도 모르고 있었다.얇고 보드라운 스판텍스가 우리 둘의 비밀스런 곳을 차단하고 있었으나 그의 남근은 나의 그 곳 깊은 곳을 이미 완전히 찌르고 들어와서 이제는 점령군의 선무 공작 단계에 들어와 있었다.아아,어느 순간 그는 물 속으로 엉큼스레 들어가서 점령지에 나부끼는 백기를 최종 확인하더니 다시 불쑥 머리를 내 얼굴 앞으로 내밀며힘차게 머리칼을 흔들어대어서 수많은 물방울을 정액처럼내 얼굴에 뿌려대었다.나는 상기된 얼굴로 그의 정액을 빨아먹어 보았다.가볍게 염소 처리된 풀장의 물은 약간 "솔티"하였다.혈압이 조금 있는 남편은 음식 대부분을 "솔티"하다고 타박하는 사람이었다.나는 이번에는 물기 그득한 그의 머리칼을 두손으로 받쳐쥐고 힘껏 당겨보았다.그러나 입을 포개기에는 시선이 두려웠다."네 머리칼은 아직도 밀식소주구나."내가 웃으며 말하였다."?""밀식소주란 말이 있어. 자 이제 서둘러 옷입자!"내가 채근하였다. 훌쩍 풀장에서 튀어나오는 우리의 동작과 몸매는 정말 아직 청춘이었다.헤어 캡을 락카로 뛰어가며 벗어던진 내가 소리쳤다."우리 30분씩만 더 할애하자.""안돼!"그가 웃으며 동의하였다."미국가서 많이 컸네. 말 솜씨랑 여유 말이야!"나도 웃었다. 휴게실에서 가까이 쳐다보니 그의 턱에 난 수염자국의 기억이아직도 선명하게 내 뇌리에 내리 꽂혔다."마누라가 히스테리가 있구나. 그리고 너!""뭐?""마누라한테 오해 받을 짓 했지, 바른대로 대봐!"그랬다.부인의 신분이 영주권 있는것 말고는 그 보다 나은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처지에서 그가 랜싱에 있는 교회의 합창단 아가씨와 눈이 맞았다는 의심을 했다는 것이다."의심은 무슨---, 사실이었겠지. 이실직고해봐!""널 빼다 박았어. 네 자매인가 했지. 현실에선 없는줄 잘 알지만---. 딸이기에는 나이가 맞지않았고---.""미쳤구나. 넌 합창단 지휘자였을테고---""내가 피아노와 음악에 재능이 있잖아.""네가 못하는게 뭐가 있니. 그래서 마누라가 여기 와서도 널 한시도 놓아주지 않는구나.""정신과에서 심리분석 치료도 많이 받았지. 그래도 안되는거야.""의붓증이 병이긴 하지. 사이카이트리스트에 다니면 보혐도 되겠구나.그건 그렇고 말해봐. 코러스 걸에 대한 남자로서의 욕망과 관심이었지?. 나와 판박이라는건 괜한 소설 쓰는 이야기이고---.""천벌을 받겠다. 너하고 너무나 똑 같아. 지금도 그 코러스 걸은 시집가서 랜싱에서 잘 살고있어. 아니 이웃한 오케모스에서 오리엔탈 마켓하면서 잘 살어.""아, 옛날 이름들---, 머스키간에서 낙시도 했겠구나?""숭어철이면 대단하지. 물반 고기반, 너도 잘 알잖아.""그 동네의 지명이 인디언 이름이 많은데야, 그지? 낙시터의 물고기 제한도 느슨하고---. 호호호"우리는 아침나절의 공기와 햇살이 아직도 우리의 세포를 긴장시키는멀쩡한 오전나절의 호텔 로비에서 서로를 친 남매간이나 되는 것처럼 몸을 붇들고 어쩔줄 몰라했다. 아니 그 보다는 더 음탕한 몸짓으로---.내 남편이 조금 일찍 나타나거나 이 호텔 출입이 잦은 시댁 식구가 보았으면 내가 치한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있거나 내 옆의 멀쩡한 멋쟁이 중년신사가 돌았다고 할만 했다.아니 두남녀가 모두 제 정신이 아니라고 할 만했다.타인의 눈에 비치는 진정한 사랑의 모습은 언제나 이토록 개별적이고 독특하고 비정상적일는지 모른다.현우는 앞으로 1년에 꼭 한번씩은 와서 내 그림자를 밟겠다고 했다.그럴 때마다 우리는 오늘처럼 이 피트네스 클럽에서 열심히 움직이는듯 하지만 한치도 움직이지 않는 이 둔중한 러닝 머신만 타고 심해의 축소판인 이 풀장에서 바람 가르고 달리는 요트를 탄 시늉만 할 것인가---.현우는 이제 딴 사람이 되어서 카운터 쪽으로 향하였다.건녀편 회전문으로는 한점 흠잡을데 없는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그도 이제는 머리칼에 까만 색갈을 고집하지 않고 흰부분을 많이 섞어얹었다.그가 완전탈모의 대머리 신사임은 우리 가족들 밖에 모른다.푸드 사이언스가 전공이고 그 쪽으로 사업 영역이 넓어서영농지도 책자에서 "밀식소주"라는 단어를 익힌 그였다 촘촘히 모심기 방식이라는 표현이 행정적으로는 그런 모양이었다.밀식소주에 대한 부러움과 솔티에 대한 혐오감과 탐욕스러운 사업확장이 그의 인생이라면,나와 현우는 그리움의 인생이란 말인가---. Yanni : Before I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