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롤터 해협은 12-17킬로 미터의 폭으로
유럽과 아프리카를 갈라놓고 있는데
현해탄이나 울돌목(명량) 처럼 조류가 급하고 빨라서
그 큰 페리호가 어기적 거리며 스페인의 알제시라스항에서
모로코의 탕헤르 항까지 건너가는 데에는 두시간 이상이 걸렸다.
특히 북아프맅카 쪽에 솟아있는 헤라큘레스 산과 산맥은 그 우람한
모습이 유럽인들의 가슴을 항상 서늘하게 할만했다.
헤라큘레스라는 이름을 지은 것도 물론 유럽인이었고,
공포의 說話와 신화를 지어붙인 것도 또한 유럽인들이었다.
그러나 막상 모록코의 Tangir(탕헤르, 딴제)에 초저녁에 도착해보니
거리는 온통 프랑스어와 아랍어가 병기된 유럽의 여느 번화가와
다름이 없었고, 차도르를 쓴 여인 보다는 짙은 눈섭과 깊은 눈의
북아프리카 미녀들이 마치 우리 동양의 미남들을 마중하는듯 눈길을
마주하였다.
호전적인 이슬람 술탄들의 후예도 있겠지만
특히 이곳 모로코는 친 서방적인 분위기가 물씬하였고,
물과 꽃과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관대한 사회적 규범같은 것을
피부로 느길 수 있었다.
알람브라 궁을 만들었던 이들이 마침내 그라나다에서 물러날 때에는
당시 30-40만명이 이 딴제 항으로 몰려와서 결과적으로는 이 항구를
중흥시켰다던가---.
서구식 호텔에서 식사와 취침을 별 특징없이 하고,
다음날은 이슬람의 유서 깊은 도시 페즈와 수도 라바트의 구조물들을
보고나서
오후 늦게 "카스바 우다야"를 지나면서 대서양의 일몰을 감동적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카스바가 캐슬이구먼?"
내가 물었다.
"아랍어가 서구로 들어간게 한둘입니까---. 알콜이라던지요---"
한국인 가이드는 정서적으로 친 이슬람, 적어도 중립이었다.
"아니 요즘 서울 강남에도 무슨 무슨 캐슬 붙은 고급 아파트가
난무하여 신 왕족들이 다투어 입주한다기에 해 본 소리요."
내가 시비를 피하였다.
사실 성채라는 뜻의 캐슬은 로마 군단이 먼져 쓴 말이었지만
그건 그렇고---.
우리는 카사블랑카로 향한다는 가슴 울렁거리는 기대와 함께
서둘러 영화 "카사블랑카"를 버스에 있는 비디오로 틀었다.
영화는 디지털 기술로 색채를 입히지 않은 흑백 원판이어서 더욱
반가웠다.
몇십년전의 아스라한 추억과 함께---.
그러나 영화는 못내 싱거웠다.
우선 배경이 너무나 단조로웠다.
카사블랑카의 뒷골목 풍경이 따로 전매특허낸거야 없겠지만
이슬람의 흔적은 별로 없는 서양의 어느 도시의 뒷골목과 흡사했고
(모로코가 원래 일찍부터 서구화 되긴 했으나),
그나마 연극 무대처럼 풍경이 몹시 절제되어 있었다.
물론 다이나마이트로 도시의 한 블록을 다 날리는 오늘날의
블록버스터 영화들 때문에 내 눈과 감정이 모두 상처를 입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 그리고 또한가지 놀라운 사실,
험프리 보가트가 영화에서 마침내 살아남고 말았네---.
나의 오랜 기억으로는 사랑하는 연인, 잉그리드 버그만과
그녀의 남편을 위하여
험프리는 그의 비행기 표를 그들에게 주고 장렬하게 최후를
장식하는 걸로 되어있었는데---.
나의 감상주의가 희미한 스토리를 그런식으로 윤색하여 입력시켜
두었었구나---.
이런 유치, 치졸하기까지한 영화에 나는 왜 한 세대동안을 얽메어서
공연히 "카사블랑카"라는 말만 나오면 눈시울을 붉히고
가슴을 태웠던가---.
너 "애수(Waterloo Bridge)"마저 언젠가 이런식으로 나를 배신할건가?!
그러나 숨을 돌려 다시 생각해보자.
과연 카사블랑카가 나를 배신한건가?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사춘기를 지배하던 당시의 우리시대는 게슈타포와 이태리 치안대에
의해서 숨통이 쥐어졌던 카사블랑카의 상황처럼 암울했고
희망이라면 밀항을 해서라도 우리 나라를 벗어나는 길 밖에 도리가
없는 것 처럼 보였었지---.
당시 선생님들의 눈을 피하여, 혹은 문화 교실이라는 이름의 허락된
영화 프로그램을 부지런히 섭렵했던 것은,
어두운 영화관 속에서나마 정신적인 마스타베이션을 하고 있었던 것에
다름아니었었지.
"카사블랑카"에 우리가 심취했던 것은 바로 그런 시대상황이
우리에게 준 미약(媚藥)이었고,
사춘기에 이를 받아먹은 우리는 힘껏 조루하였는지도 모른다.
항구 도시 카사블랑카는 원래 포르투갈 사람들이 흰 성벽을 쌓고
또한 흰 집들을 지으며 건설한 대서양의 요충으로서,
마침내 주인인 모로코인들의 손에 돌아갔는데
그들의 이름도 있지만 도시의 발전을 위하여 옛 이름을 그대로 썼다고
한다.
지혜로운 사람들의 너그러운 결정이었다.
저녁을 먹고 우리는 인근 하이얏트 호텔의 1층에 있는 "카사블랑카"
카페로 갔다.
물론 영화에 나오는 "리키의 카페"와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내부는 그와 비슷하게 만들어 놓았다.
영화에는 2층이 있었으나 여기에서는 공간의 배치상 그렇게는 할 수
없었으나 플랫폼을 만들어서 오르내리는 구조를 만들었고,
영화의 여러장면 사진이 벽면에 가득히 붙어서 쓸데없이 몇 컷의
사진을 의미없이 찍게끔 유혹하였다.
우리는 기분좋게 유혹에 넘어갔다.
루이 암스트롱이나 혹시 다른 흑인 트럼페터는 물론 없었고,
허리가 낭창거리는 노랑머리 아가씨가 춤과 노래를 좁은 스테이지에서
불렀는데 말한마디 붙여볼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아, 카사블랑카의 밤이여---.
(가슴이 벅찰 때는 신파가 솔직하지요---).
* 사족: "영화 카사블랑카"는 헐리우드에서 셋트 촬영했답니다.
표기는 초기 해양 대국이었던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선원들의
명명에 맞추어 "까사 블랑카"가 맞을지 모르나 통칭을
따랐지요.
Casablanca / Bertie Higgins
I fell in love with you watching Casablanca
Back row at the drive-in show in the flickering light
Pop corn and cokes beneath the stars became champagne and caviar
Making love on a long hot summer"s night
I thought you fell in love with me watching Casablanca
Holding hands beneath the paddle fans in Rick"s candle lit cafe
Holding in the shadows from the spots, a rocky moon lihgt in your arms
Making magic at the movies in my old chevrolet
I guess there are many broken hearts in Casablanca
You know, I"ve never really been there So I don"t know
I guess our love story will never be seen on the big wide silver screen
But it hurt just as bad when I had to watch
Ooh, a kiss is still a kiss in Casablanca
But a kiss is not a kiss without your sigh
Please come back to me in Casablanca
I love you more and more each day As time goes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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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를 감상하며 당신과 사랑에 빠졌소
깜박거리는 불빛아래서 드래이버인 쇼의 맨 뒷자리에서
별빛 아래 팝콘과 콜라는 샴페인과 캐비어 안주로 변하고
길고 무더운 여름밤에 사랑을 나누었지요
카사블랑카를 감상하면서 당신은 나의 사랑에 빠졌어요.
럭의 촛불, 카페의 큰 패들 선풍기 아래에서
우린 손을 잡았지요 그림자는 자취를 감추고
나의 낡은 시보레 승용차안에서 마술과도 같은 영화를 보았어요
오, 영화 카사블랑카의 키스는 멋진 키스이지만
당신의 한숨이 없는 키스는 진정한 키스가 아니예요
세월이 흐르수록 당신을 향한 사랑이 열렬해져요
카사블랑카는 사랑을 잃은 사람들이 많나봐요
카사블랑카에 직접 가보지 못해서 잘 모르지만
크고 넓은 은빛 스크린에서 우리가 나눈 멋진 사랑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오, 영화 카사블랑카의 키스는 멋진 키스이지만
그러나 당신의 한숨이 없는 키스는 진정한 키스가 아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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