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시대의 아쉬운 세상 나들이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원평재 2004. 5. 13. 08:36

 


 

Piccaso의 Geronica

 


마드리드에 있는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은
피카소, 달리, 그리고 미로의 컬렉션으로 세계적이다.

피카소의 "게로니카"도 물론 이 미술관에 있다.
3층의 첫 전시물은 철물 재질로 된 "그레타 가르보"라는 조형물인데
해체된 인물상이 혼란스러웠으나,
연상작용의 어디쯤에서 가르보는 선정적인 미소와 유혹의 향수를
풍겼다.

그래 차라리 처음부터 당혹스런 홍역을 잘 치루었다.
미적 감각의 시각조정을 하고나니,
이 화백의 청색시대나 로즈시대의 작품 이해가 한충 쉽게 닥아왔고
저 역작 "게로니카" 앞에서는 나치스 독일의 폭격기 소리가
귀에 들리는듯하였다.

이제 살바도르 달리의 컬렉션으로 닥아선다.
난해한 그의 앙포르멜, 해체 기법이 피카소와는 또다른 큐비즘의
한 축을 형성하는데
문득 구상화에 가까운 여인을 그린 화폭들이 나타났다.
특히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이 여인,
달리의 여동생으로 Ana Maria 혹은 Anna Maria로 표기되는 이 그림은
아무래도 비구상 게열같이 느껴진다.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는 해체된 구도이지만---.

여기에서 나는 내 친구, L 화백을 떠올린다.
소년시절과 청년시절을 여러 부분에서 공동 체험한 그는 항상 티없이
맑다.
그는 나중에 대학의 정식 교수가 되었으나 그림 그리기에 방해가
된다고 하여서 헌신짝 처럼 그 직업을 버렷다.
우리나라 예능계에서 대학교수의 직함이 얼마나 위력적인가---?
그렇지 않을지라도 세끼 밥벌이가 보장되는 교수직을 버리다니---.

그가 중등학교 시절에 그린 사실적 그림들은 가히 날라가는 새들을
불러서 떨어뜨린 신라시대 화가 솔거를 무색케할 정도였다.
그러한 그가 한국 최고의 미술대학을 졸업하였을 즈음해서는
도무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사물을 철저히 해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나 그가 비구상, 앙포르멜 작품을 그리기 직전에는 거의 며칠간
목탄으로,
대상과 꼭 같은 극사실화를 그리는 모습을 나는 여러차례 목격하였다.
말하자면 경기 전의 운동선수들처럼 몸을, 손을, 마음을, 그리고
영혼을 푸는 것이다.

한때 비구상 계열의 화가들은 사실화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일
것이리라고 지레 폄하했던 나의 상상력은 부끄러운 자기만족이었다.

그가 비구상으로 치달릴때쯤, 그는 "이까소"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이름이 피까소와 비슷하기도 했지만,
우리에게 아직 익숙지 않았던 그의 비구상 화법이
그 당시 모색에 모색을 거듭하며 세상의 관심을 몰아가던
세계적인 큐비즘 화가 피까소와 닮았다고 지레짐작하면서
이 친구도 바로 그러한 반열에 오르리라는 우리의 염원의
한 표현이기도 하였다.

행위 미술가 정강자 화백이 한강을 발가벗고 걸으며 시선을
모으다가 일본으로 진출하여 어느정도 세계화의 경지를 달성하던 무렵
이까소화백도 톱밥을 깐 화랑에 막걸리 좌판을 벌여놓고 행위와
설치의 미학적 세계를 펼쳐보이며 이 나라 아방가르드 미술계를
선도해 왔다.

문외한인 나는 그의 화풍이 어디에 속하는지 모른다.
오랫동안 그의 근황은 간접화법을 통햐여서 접할 뿐이었다.

살바도르 달리의 해체된 그림들 속에서도,
이 화가가  누이 Ana Maria 혹은 Anna Maria를, 또한 자신의 아버지와
사촌들을 비교적 구상 계열의 화법으로 그려낸 그림들과 조우하면서,
나는 "이까소" 화백의 그 선연한 구상 작업, 몸과 영혼을 풀어내었던
극사실의 목탄화 등을 섬광처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