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에서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으로 들어가면서
관광가이드가 물었다.
"플라멩꼬와 파두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대답이 없자 그는 웃으며 말하였다.
"F자로 시작하는 것 말고는 모두 다르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에 따르면 플라멩고는 13-15세기경 지금의 인도, 파키스탄 지역
에서 유럽으로 흘러들어온 집시들에 의하여 계승 발전된 화려한
노래와 특히 춤을 말하는데, 현재에는 이베리아 반도뿐만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에도 널리 퍼졌다고 한다.
한편 파두는 포르투갈 선원들이 아프리카와 남미 등에서 애조띤
선율을 갖고 들어와서 합성 발전된 어둡고 소박한 노래라고
하였다.
물론 현재는 스페인은 말할 것도 없고 남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에서 널리 애창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극과 극은 통한다던가---.
내가 그의 해설에 조금 보충을 해보았다.
두 음악 모두 고난과 한(恨)에 가득한 집단에서 부터
파생되어 들어와서 대중의 정서를 두드린 것 아닌가.
이것이 다시 기득권 세력으로 흡입되어 음계와 화성과
춤사위를 체계화한 이후에,
다시 대중들에게 예술의 이름으로 확대재생산 되어
서민들은 시름을 잊고,
지배계층에게는 사회안전판과 이윤을 창출한 것 아닌가.
나의 보충 해설을 이의제기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단순한
보충자료로 생각해보라---고 했더니,
밥통이 걱정이었던 순진한 가이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도 열심히 보충을 하였다.
플라멩고에도 크게 세종류가 있는데 나의 설명과도
바로 맞물리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나는 그라나다 플라멩고인데 집시족들이 이미 13세기에
시작한 원형적(原型的)인 것이고,
둘째는 세비야 플라멩고로서 세비야의 전통 춤과 집시곡이
합류한 형태이며,
세째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등지에서 완전히 상업화된
대형 쇼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 파두와 비교해 보면,
포르투갈 독재군부의 통치 수단인 three F가 football,
Fatima(성모 발현지로서 종교를 뜻함),
그리고 Fado라는 점으로도 이미 고난의 민중음악에서
통치자의 수단으로 변질된 측면과 함께 플라멩고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어느 플라멩고를 감상해 보아야할까.
셋을 다 보면 물론 금상첨화였겠으나 시간과 돈을 염두에
두면서
그라나다의 플라멩고를 보기로 하였다.
알람브라궁의 건너편,
아랍인들이 술탄의 나라가 망하고도 다시 100년을 더 웅거하여
살았던 알바이신이라는 동네.
그 동네 뒷편에는 자연 동굴들이 있는데 집시들은 그 동굴들을
조금씩 더 넓게 파고 살면서 매일 밤 플라멩고 춤을 선사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한편 100년을 더 버티던 아랍인들은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모로코의 Tangir(탕헤르, 모로코 식으로는 딴제)로 도망가고
좁은 골목과 작은 광장이 특징인 그들의 집과 세라믹 건축술만
남겨 놓앗다.
바로 그 뒷쪽의 동굴에서 만난 집시들,
그들의 고난에 찬 얼굴 표정(젊은 무희들도 이미 그런 표정을
등록상표로 갖고 있었다),
플라밍고 손뼉의 강고한 박동 등은 정말 파두의 애조와
수많은 동심원을 그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한잔씩 주는 산그리아 주는 마드리드에서 본격적으로 마시기로
하고 위생상 우리는 산미겔 맥주로 목을 축이며 자정을 넘어
12시 반까지 춤과 노래를 감상하며 어울리며 지냈다.
한동안 우리는 투어 버스에 세가지를 켜고 안달루시아 지방을
달렸다.
로드리게스와 로드리고와 에어컨만---.
파두는 무엇인가?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내면」을 표현한다는 포르투갈의 민족대중음악 Fado는 "삶의 영원한 슬픔과 우울함"을 테마로 다룬 음악이다. Fado의 유래는 아프리카 노예들에 의해 브라질로 전해진 음악이 18세기 선원들에 의해 포르투갈로 전래되었고, 다시 이태리의 오페라 멜로디와 결합되어 만들어졌다고 한다. 초기에 Fado는 항구마을에서 선원들의 외로움과 향수를 절절이 담고 있는 노래말이 주종이었는데 지금은 포르투갈인의 한과 설움을 대변하는 대중적인 음악으로 정착하였다. Fadista (Fado를 부르는 가수를 지칭)들은 대부분 검은가운을 입고 노래를 부르는데, 그 이유는 백작신분의 귀족 Vimisio와 사랑에 빠져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Maria라는 Fadista가 26세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뜨자, 이를 애도하는 모든 Fado가수들이 그녀의 명복을 빌고자 검은 가운을 입고 노래했던 것이 기원이 되어 오늘날의 Fadista의 전통복장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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