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학원 연합회"라면 들어본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국회에도 로비 실력이 꽤 있는 입시학원 연합 단체이다.일년에 두 번 친목 겸 정보 교환 세미나를 하는데, 교육 관계 기관의 책임자를 초빙하여 급변하는 시대의 교육 정책 기조에 관한 연설도 듣는 등 일반적인 활동이 활발한 편이다.금년 여름에는 해운대의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정기 모임을 갖였다.학원 경기가 좋고 잘 나갈 때에는 제주도에서 좀 거창한 모임을 갖기도 했으나,이제는 시대가 바뀌어서 교육정책의 관계자들도 입시 관련 국책에 관한 강연을 사양할 정도가 되었다.입바른 정보를 내놓고 말하기도 조심스러웠을 것이고 강연료 받는 것도부담스러워졌을 것이다.특히 새 정부의 교육정책이 개혁 일변도여서 어떤 식으로 대학 입학 정책이 입안 되던간에,입시 학원은 목하 서리를 만날 운명을 코 앞에 두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진데, 어이 공직자가 서뿔리 이런 모임에 강의를 나오랴. 더욱이 입시생의 숫자가 급감하는 추세에다가 EBS 방송을 듣지 않으면 대입 준비에 치명상을 입도록 정책을 조정하였고 서울대 폐지론까지 대두되는 마당이 아닌가---.대치동에서 "원조 대치 대입 학원"의 부원장을 맡고 있는 나는, 우리 학원을 대표하여 부산행 KTX를 비오는 날 오후에 탔지만 이런 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세미나에 생전 처음 마누라를 동반한 사실도 이런 복잡스런 시대적 정황과 무관치 않았다. 세미나의 결과에 별로 소득이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 오랜만에 부인 위문 공연이라는 부차적 소득이라도 추구하자는 속셈이었다.기뻐하는 부인이여, 이런 내막을 눈치채지 마소서.처음 타보는 고속전철은 너무 빨라서 공현히 마음이 불편했다.이렇게 달려가다가는 학원계가 우려하는 문제의 핵심에 너무 빨리 도달할까봐서 걱정이 앞섰달까---, 아니 세상 물정이야 이미 모두가 다 내다 보고 있으련만, 그래도 막상 까발려놓고 걱정을 나눌 동업자들을 빨리 만나기가 공연히 겁이나기 시작하였달까---.한시간 만에 대전에 코를 박는 고속철이 정말로 원망스러웠고, 내 고향 구미 금오산의 두 영봉을 느릿느릿 감상하며 내 유년 시절을 반추할 기회도 이 고속철은 반납 시켰고,내가 청년시절을 보냈던 대구를 지나갈 때에도 차창에서의 익숙한 주시 각도를 이 괴물 열차는 낯설게 할 따름이었다.참 세상 많이 변했구나, "원조 대치 학원이여 영원하리---"라는 소망도 10년을 더 버티지 못하는 세태처럼---.이런 내 마음의 불편함 속에서 덜컥 부산역이 나타났다.그래도 바다 냄새만은 영원한 듯, 우리는 역전에서 잡아 탄 택시의 문으로 들어 온 미역 냄새와 매연을 함께 맡으며 해운대로 달렸다.커플로 온 참석자에게는 바다 쪽을 우선 배정한다더니 주최측이 약속은 제대로 지키는구나.시네마스코프로 활짝 전개된 바다의 전경은 방음 문을 열자 천둥치는 파도 소리를 10층 리빙 룸으로 사정없이 치밀어올렸다."어려움 속에도 축복은 있네"내가 한숨을 쉬며 말하였다."뭐가 또 어려운게 있어요?"서부에서 살다 나온 아내가 무얼알랴. 그리고 사실 마누라는 곧 며느리의 산바라지 때문에 다시 동부로 떠나가야할 형편이었다."당신이랑 오래 떨어져 살다가 이런 호강도 누린다는 뜻이라오.""거봐요. 내가 최고이지---."일찍 도착한 우리 커플은 해변을 거닐었다.백사장의 모래가 서걱거리며 신선함을 자랑하였다. 파도 바로 아래까지 고층 호텔과 콘도미니엄이 즐비한데도 이 나라의 기술력이 좋아서 그런가---,해변의 모래 띠는 전혀 손상 없이 넓었다.갑자기 옆으로 비키니를 입은 서양 처녀 두명이 조깅을 하며 달려갔다.아슬아슬한 옷 매무새가 발가벗고 스트리킹을 하는 듯 하였다."LA에서도 보기 드문 장면이네. 이 나라도 많이 국제화 되었어요.""이 나라가 아니라 우리나라라고 불러봐. 그리고 이 동네라면 러시아 여자일는지도 몰라. 당신이 옆에 있어서 몸짱 백인 아가씨들잡고 물어보기도 틀렸네. 하하하.""난 그런 시시한 농담에도 상처입는 성격인줄 알잖아요. 어서 취소해요.""그래 취소야. 다만 제임스 조이스가 쓴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보면 사제직을 꿈구던 청년이 어느날 더블린 해변에서 반나의 여인이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욕정이 솟구쳐서 자신은 성직의 순교자가 아니라 예술의 순교자가 되겠다고 하는 장면을 읽은기억이 문득나서 불쑥 농담이 나왔네. 당신이 결벽주의자인줄 내가 잘 알잖아. 날 용서해줘."글쎄 아내가 띄고 있는 결벽의 색깔을 분광해 본다면 그녀는 이미 의학적으로는 경고의 붉은색 경계를 넘지 않았을까---.우계의 신호로 빗방울이 후두겨서 우리는 얼른 호텔로 들어왔다. 세미나 시간도 박두해 있었지만.아내가 잠시 잠을 청하는 사이에 나는 세미나 장으로 갔다.때가 때인 만큼 학원장이나 나 같은 부원장들이 빠지지 않고많이 참석하였다.초빙 연사가 조심스레 발제 연설을 하였다.그는 우선 우리 교육계의 일반적 위기 상황을 지어나갔다.잘 알다시피 교육 인적 자원의 급감 현상이 그 첫번째였다.이것은 인위적으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국가적 차원의 문제였고 민족사적인 위기상황일 수도 있었다.대학 교육기관이라면 외국 유학생을 유치할 수도 있겠는데 세계적으로는 유학 가용자원이 100만, 이중 1/3이 미국이 홀드하고 있고 중국이 3만, 일본이 7만을 갖고 있는데 우리는 불과 3000명이고 그나마 학원에까지 배분될 성격의 자원도 아니었다.한편 이제는 교육이 예전처럼 경직된 채널을 통할 필요가 없는 시대에 돌입하였다는 것이다. 사이버 학습의 비약적 발전과 팽창으로 실공간에서의 교육이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다만 온라인 교육이 무한정 확대되면서 거대 규모의 대학이나중등교육 기관이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어쩌면 착실한 인적 구성을 갖춘 학원이 앞으로는 더 많은 학생들을 확보할 수 있는 선택적 틈새 시장이 생성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위기가 기회인 셈이다.이 외에도 어려운 미래 예측 몇가지 더 개진되었다.자유 토론 시간에 내가 제안하였다. 우리 학원도 학점 은행식으로 특정 교과목이나 전공에 대학 이수 학점을 부여할 수 있으면 평생 교육을 원하는 성인들을 수용하여서 양질의 교육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아니냐는 요지였다."앱솔루틀리 억셉터블. 정말 좋은 제안입니다. 정책에 반영해 보겠습니다."그의 대답은 시원하였다.그가 우리에게 덕담을 했다기 보다는 사회 환경이 급속도로 달라지고 있다는 반증 같았다.누가 또 제안하였다."LA 같은 데에서 보니까 학원 수준인대도 마이크로 소프트 회사 같은 데에서 용역을 주어 일정 기간 일정 수준의 컴퓨터 과정을 이수하니까 대학 졸업자와 같은 자격을 부여합디다. 우리도 그런 여유를 보여줄 수 없겠습니까?"이 좋은 제안도 조만간 채택될 전망이 보였다. 학원도 열심히 하기만 하면 또다른 방향으로 활로가 뚫릴듯도 하였다."서울대가 없어지나요?"누가 큰 소리로 물었다."큰 틀에서는 서울대만의 독야청청은 이제 재고될 시점이 왔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만한 대학도 세계적으로는 200대 대학에도 못들어간다는 우리의 현실---, 그래서 국립대학만 어떻게 느슨하게 묶는 방법---, 여러 가지가 민족사적으로 심도있게 연구되어야겠지요."그의 대답이 몹시 조심스러웠다. "하여간 서울대 연고대 하는 식으로 구조적 서열화 사회 속에서만 이 때까지 안주하고 돈을 버신 학원 오너 여러분들께서는 이제 좀 사고의 패러다임을 바꾸실 때도 되었을 것입니다."정답은 내놓지 않거나 아직도 만들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적어도 이 부분만큼은 앞으로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되는 참여 정부의 난제이겠으나,학원을 경영하는 입장에서도 결코 낙관할 사태 전개는 아닌 듯 하었다.시간이 흐르고 강연자는 서둘러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부인들이 입장하였고 와인을 겯드린 저녁이 성대했으나 분위기는 별로 뜨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에는 몇가지 대정부 건의문을 채택하고 회의는 끝났다.나는 아내와 택시를 타고 광안대교를 건너보았다. 그리고 황령산 터널도 통과하였다."태종대로 갑시다."내가 오랫동안 내 가슴에만 들어있는 지명을 입술로 표현해 보았다."네, 잘 모시겠습니다."불경기에 이게 왠 횡재냐는 표정으로 기사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까 광안 대교도 보도와 관람대를 붙여서 건설했으면 관광객으로도 먹고살텐데, 이거 부산에서 행정하는 사람들이 뭘 모른단 말입니더. 해운대에도 저 높은 호텔 건물들을 지어놓으니 파도가 힘이 빠져서 모래를 못갖고 온단 말임더. 저 모래는 모두 외지에서 사다 뿌려놓은 것 아임니껴. 예전에는 극동 호텔과 웨스틴 호텔 두 개만 있었거든요.""아, 극동 호텔---"내 입술에서 저 추억의 호텔 이름이 후렴처럼 반추되어 터져나왔다."당신 거기서 누구랑 자봤구려!"아내의 반응이 단호하였다."아니야, 커피 한 잔한 기억이 있지.""누구랑?""지금은 망한 동국제강에 내가 있었는데, 그 때 고객하고---."아내가 무어라고 따지려는데 기사가 흥분해서 열을 올렸다."제강이고 신발이고 모두 다 망했다 아입니껴. 한창때는 4백 5십만 하던 인구가 시의 경계는 넓어졌는데 100만이 빠져서 지금 3백 5십만 밖에 아임니더."기사의 흥분으로 분위기는 살았고 택시는 태종대를 향하여 기세좋게 달려갔다."저기 해양대학이 있던 섬도 매립이 되어서 이제는 육지가 되었다 아임니껴." 마침내 "해양대학" 이야기까지 나오는구나.그래, 여기가 분명 부산이구나---.오랜 세월전, 내가 고통스레 사귀었던 그녀는 나에게 툭하면 해양대학 다니던 청년 이야기를 꺼냈다."해양대학 녀석 이야기 다시 한번만 꺼내면 때릴거야."내가 열불이 나서 소리 질렀지.그러나 그녀는 줄창 해양대학 이야기를 꺼내곤 했었다.우리는 그 해양대학 때문에 헤어졌는지도 몰랐다.그녀는 해양대학생과 처음으로 키스도 나누었고, 아니 처음으로 몸도 나누었다고 했었지.왜 그랬을까.왜 그런 사실을 묻지도 않는 나에게 계속 하였을까.그녀는 맨날 울었다. 눈물이 주루룩 흐르는 울음을 울었다.소리내어 울지는 않았다.그냥 묵음의 울음이었다.내가 좋아서, 조금만 못 보면 보고 싶어서, 또 때로는 야멸 찬 내 태도가 분하고 속이 상하여서, 또 대부분은 내가 너무 멋이 있어서 울고 또 울었다.그러면서도 들먹이는 건 매번 해양대학 나온 청년 타령이었다.왜 그랬을까.나는 그 이유를 모른다.그리고 화가 나서 헤어졌다.그녀는 어쩌면 형편없는 녀석들에게 걸려들었을는지도 몰랐다. 내게 건너오려면 그래서 그중 가장 깨끗한 유니폼을 입었던 해양대학생으로 하여금 속죄의 의식을 치루게끔 했던가,그래, 해양대학의 유니폼이 하얀 색깔이었지 아마.대구에서 학교를 다녔던 나는 부산을 잘 몰랐다. 그때만 해도 사회적 인프라나 개인적 여유가 참 형편없었지.오빠가 부산에서 큰 냉동업체를 한 그녀는 자주 부산을 다녔고 나를 만나기 전에 이미 해양대학생과 깊은 연애 관계에 있었던 모양이다.감추면 되었을 그 일을 왜 내게 결정적인 순간마다 자꾸 이야기 했을까.그게 미스터리라는 것이다.아까 말이 나왔던, 오래전에 헐려서 지금은 사라진 극동 호텔에 들어가서 몸 사랑을 한 상대도 물론 그녀였는데, 청년의 얇은 지갑으로 그런 만용을 부린 것은 그 윗쪽에 있는 달맞이 고개 때문이었다."극동 호텔 옆 쪽에 있는 달맞이 고개에서 해양대학생과 처음 했어."그녀가 웃으며 말했지.맙소사.괴뢰군 물리치고 백두산 영봉에 태극기 꽂은 무용담 이야기하듯 하는구나. 내 머리꼭지가 돌았었지.그래 나하고는 달맞이 고개 말고 극동 호텔로 직진하자.내가 그녀의 손목을 끌고간 기억이 난다.태종대를 향하여 달리는 택시에서 내다보니 노랑머리 아가씨 둘이서 자전거를 타고 땀을 뻘뻘흘리며 올라가고 있었다."여기도 또 미국 여자들이네."아내가 소리쳤다."아닙니더. 러시아 여자들일겁니더. 저 아래 코모도 호텔에 많이 머물지요."기사의 말이었다."거기 가면 재미있겠구려."내가 불쑥 말을 뱉었는데 옆구리에 깊은 통증이 왔다. 아내가 내 살점을 꼬집어 뜯었다.
이날, 태종대에서는 두가지 일이 있었다.하나는 전망대에서 까마득히 발 아래 부서지는 파도와 오륙도를 내려다 본 일이었고,다른 하나는 그 절벽을 내려가서 직접 유람선을 타본 일이었다.유람선은 예전과 달리 오륙도를 돌아올 수는 없고 먼 발치에서 보고만 오게 되어있었다. 어항선(어선이라는 표현이 아니었다)과의 충돌을 막기 위한 규정 때문이라고 선내 방송이 여러차례 안내를 하였다. 일행과 함께 온 어떤 노인이 선장에게 가서 오륙도를 왜 돌지않느냐고 떼를 쓰며 물었다. 선장이 같은 말로 다시 설명하는 모습이 유리창으로 보였다.노인이 고개를 끄덕끄덕 하더니 나와서 일행에게 설명하였다."어항선과 충돌할까봐서 돌아올 수는 없다네."그의 진지한 설명에 그 일행들은 그제야 알아들었다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우리는 배를 내린 후에 가까운 횟집에서 회와 밥을 맛있게 먹고 고속철을 다시 탔다.맥주도 두 캔을 사서 횟집에서 싸준 후한 회와 함께 짧은 여정에 빨리빨리 먹었다.갑자기 뒷좌석에서 어떤 젊은이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지금 안끄면 그 휴대폰 부셔 버릴꺼야,""왜그래, 전화도 못받어?"여자 목소리는 높지 않았으나 고집이 담겼고 당당하였다."그 녀석은 우리 둘이 지금 함께 기차타고 가는 줄 뻔히 알잖아?""알면 어때서?""남자가 옆에 있는데도 전화를 하는건 뭐냐 말이야. 한번만 더 오면 내가 그놈의 전화 정말 때려 부실꺼야!""전화한 그 애도 착한 아이야. 너무 그러지 마, 하지만 서울 갈 때까지 핸드폰은 이제 꺼놓을게. 어이구, 착한 이 남자야, 내 키덜트!"맥주 기운이 있긴했지만 그 대화에 귀를 기우리며 내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