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기념관의 야외 전시물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조형물은 바로 남북의
병사가 형제의 모습으로 껴안고 있는 이 장면이리라.
감격적이고 낭만적인 조형물이다.
하지만 북의 통치자들도 이 작품을 보고나서 우리와 같은 감동을 받으며
현장을 수용하리라는 기대가 있다면 가당치도 않은 감상적 상상일 것이다.
이 청동상은 우리의 시각에서 조형된 희망사항일 뿐이다.
통일의 염원을 두손 모아 합장한 모양으로 구상화했다는 이 기념탑은
그 뒤의 높은 빌딩들이 이 나라의 굳건한 경제적 실력을 나타내고
있음으로써 그 진정한 예술적 수준과 미적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것이리라---.
보라! 음미하라! 저 힘차게 펄럭이는 깃발들 속에서 동맹의 의미를---.
한·중·일 청소년 의식조사 결과,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나면 앞장서서
싸우겠다는 청소년이 10명당 1명밖에 안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일본의 4분의 1에 불과하였다.
갈수록 희박해져 가는 국가관.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진보주의를 자처하는 무리들이 내세운 출처불명의 편향된 민족관에
그 연원이 있지는 않을까---.
민족이라는 개념, 혹은 관념은 근세사의 산물로서 다분히 패권적 제국을
지향하는 소수 통치자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합리화하는 데에 쓰인
수단이었다.
민족이나 국가주의가 개인의 자유와 안녕에 우선하고 모든 인간적 가치의
최상위에 있는 절대적 개념 혹은 관념인지,
또한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자행된 파렴치한 폭력의 역사가 인류사를
그저 지상의 한갓 "동물사"로 추락시킨 것이나 아닌지를 이 시점에서
우리는 곰곰히 반추해 볼 일이다.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과 자유와 민주정신은 어떤 개념 혹은 관념에
대칭적 선택 사항이 아니라 비대칭적으로 우선하는 절대적 가치가
아니겠는가---.
국군의 날을 맞기 하루 전에 울적한 기분으로 용산 전쟁 기념관을
찾았다.
한시간이 넘게 야외 전시장을 카메라에 담으며 이 나라에 자유가
뿌리내리게한 노력의 결정체들이 엄존하고 있음에 요즈음 생긴 마음의
응어리가 많이 풀리고 위로받는 심사로 그 곳을 떠날 수가 있었다.
한국 동란 때에 "쓰리 코타"는 이 강산의 전장을 누볐다. 사람들은 그게
무슨 뜻인줄도 모르고 구경꾼들이 되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3/4톤 트럭, 쓰리 쿼터즈였다.
이 대형 폭격기는 월남전에서 위용을 떨친 B-52 기종이다.
한국 전쟁 중에는 이보다 작은 B-29 프로펠러 폭격기의 굉음만으로도
피아간, 모두의 간담이 서늘하였다.
전쟁 기념관을 찾는 관광객들은 성분이 다양하다.
한동안은 미국 재향군인들이 많았고 일본 관광객들도 줄을 이었으나
요즈음은 동남아와 중국 본토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또한 한국 근무를 마치고 귀환하는 미군 GI, 그리고 고국을 찾은 재미 동포
등등도 주요 방문객 리스트에 들어간다.
물론 가장 많이 찾는 방문객은 우리나라의 학생들이다.
야외 학습장으로 이만한 곳이 없다고 한다.
그들은 무엇을 배우고 생각하며 돌아갈 것인가---.
간난 아이를 안고 나선 아빠의 모습이 탱크 옆에서 이채로웠다.
월남전에서 맹위를 떨친 헬리콮터---.
우리 쪽의 나이키 허큘레스 등과 북쪽의 스커드 미사일 등등---.
집안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의 모형을 전쟁 박물관에 실물대로 세워놓은
것은 참으로 시의적절하고도 속 시원한 기획이었다.
하지만 고구려 최대 강역을 나타낸 지도가 이렇게 겸손하고 초라할 줄이야.
동북공정에 매달린 중국이 턱없이 욕심을 부리는 사례를 경쟁적으로
보아서가 아니라,
문헌에 나온데로만 표현을 하여도 이보다는 두배가 넘을 수 있는데 무엇이
이렇게 겸손한 자세를 취하게 했는지 안타깝고 궁금할 따름이다.
통일을 기원하는 시계탑이 서 있었다. 통일이 되고나면 아래에 있는 통일
시계판을 맨 위에 새로 올릴 예정이라고 한다.
그날이 어서 오기만을 기원할 따름이다.
광화문에 있는 세종문화 회관에는 지금 뮤지컬 "미스 사이공"이 성황리에
공연중이다.
월남이 패망하던 마지막날의 헬리콮터 후송의 순간까지가 모두 묘사된
뮤지컬 "미스 사이공"이 국군의 날에 감회를 새롭게 한다.
우연인지, 바로 국군의 날인 10월 1일까지 공연을 하는데 거의 반년이란
기간에 걸친 장기 공연이었다.
성인 나이트 클럽의 쇼걸들이 벌이는 줄팬티 배꼽춤보다도 더 선정적인
쇼를 예술의 이름으로 펼친다는 지적도 있으나 전장의 황폐성과 모럴의
부재를 이 보다 더 리얼하게 보여주는 예술 작품이 어디 있느냐는 찬사도
난무한다.
하긴 "오 캘커터" 같은 완전 누드의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에서 십년
이상의 장기 공연 기록을 예전에 이미 세우고 지금은 막을 내렸다.
남녀가 맨몸으로 군무한 그 작품의 예술성을 지금 의심하는 사람들은
없다.
문제는 그런데에 있지않고 이 땅에서도 "미스 사이공"의 망령이 재연될까,
국군의 날에 공연한 위구심이 생긴다는 것이다.
미스 사이공이 공연중인 세종 문화회관 앞
광화문 네거리는 평화롭기만
하다.
엊그제만 해도 "바다 이야기" 관련 업자들의 데모 등등, 영일이 없던
이 곳도 국군의 날 전야에는 고즈넉하기까지 했다.
다행인지 요행인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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