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수련의(修鍊醫) 첫해를 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아서 나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었다. 옛날처럼 손잡고 앉아서 이야기는 커녕 맞선을 보일 기회도 잡기 힘들 때였다. 밤새우기를 잠자듯한다고도 했다.
그런 딸이 당시의 통신 수단인 삐삐를 통하여, 다시 확인 전화가 오가는 번거로움 끝에 일요일 오전나절을 아빠와 산행 데이트를 하자고 프러포즈를 해왔다. 둘이서만---.
해부학 쪽을 택할 때, 아니 그 이전부터 선택의 문제에 있어서는 항상 독한 여식(女息)이라고 생각 했었는데 무슨 탈이 났단 말인가.
이 딸 아이의 친구들이 여리고 감성적이어서 의대 실내악단같은 예술 동아리를 함께 꾸려가면서도, 또 모두 기갈있고 당찬데가 있었다. 아니 이것들이 뭘 몰라서 무지했던건가---
첫 해부학 교실에서의 이야기는 혀를 차게했다. 친한 친구끼리 해부실습의 한 조(組)라던가---, 하여간 한 조에 배당된 이 아이들의 과제는 사체(死體)를 하나 받아서 조금씩 깎아들어가 마침내 완전히 "부수는 과정"이라고 했다. "데몰리션 맨"이라는 영화도 있었지만 하여간 완전히 디몰리션하는 과정인 모양이었다.
행여 다른 조에 질까봐, 저녁 늦게까지 몇날 며칠을 이 짓만 하면서 배가 고프면 피자에 오뎅에 김밥까지 시켜서, 혹은 재잘거리며 함께 나가서 먹고 들어오곤 했다한다.
"메디칼 영화 보면 이 단계에서 보통 집단 히스테리와 난리가 나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우린 별게 아니네---" 누군가가 툭 던지더란다. 그랬더니 그제서야 다른 한 애가 "말도 마라. 나도 모처럼 집에 들어갔다가 엄마에게 그런식으로 이야기 했더니 엄마 친구의 딸이 속한 어떤 다른 조에서는 토하고 휴학하고 난리났대. 울 엄마가 너희 조는 모두 독한 년들이구나라고 하더라---"
말문이 막힌 아이들이 알아보니 화장실에서 토하고 울고 뻗고 휴학하고, 난리가 났는데 이 독한 조에서는 "새우깡"과 피자만 사다먹은 꼴이었단다.
"아빠, 영혼이 있을까?" 말없이 산길을 걷던 딸이 무심한듯 말문을 열었다.
며칠전에 갖 태어난 영아가 죽어서 딸이 혼자서 사체해부(오톱시)를 했는데 한없이 슬펐다고 했다.
"너 보기보다 독하잖아---!" "무서워서가 아냐, 슬퍼서야"
나는 스티브 호킹의 이야기를 했다 (좀 더 꼼곰히 읽어둘걸). "영혼의 문제에 그가 바로 접근은 안했지만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원소(element)의 배합비율이 우주의 원소 배합비율과 같더라는 그의 발언은 많은 위안을 주더라. 어쨌든 우리는 우주의 한 부분으로 남아 있잖아---."
딸이 그 바쁜 중에도 영세를 받을 즈음 우리는 인터넷에서 성녀(聖女)들의 전기와 행적을 찾아서 긴 항해를 하였다. 딸은 내친 김에 견진성사(confirmation)도 받고자 열성을 보였으나, 레지던트 생활은 고달펐고 이어서 결혼과 임신, 의약분업 사태 때는 데모 등으로 정신이 없는듯 하였다.
이제는 저도 딸의 에미, 병원 일도 나에게는 별로 이야기 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 병원의 오톱시 기록이 세계적이라는 것만 얼핏하는 걸로 봐서는 고생과 함께 숱한 경륜을 쌓고 있겠지.
올해도 가을이되자 나무들이 자기 몸을 부수어 낙엽으로 떨구고 있다.
보케리니 첼로협주곡 9번(전악장)-자클린 뒤 프레(C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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