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보고다닌 투어

뉴 올리언즈를 들어서다

원평재 2007. 7. 31. 11:19

28170

올리언즈를 그냥 사진으로만 지나칠 수는 없겠지요.

한 "팩션"이 있어야 되지않겠습니까---.

여기 한(恨)의 땅, 뉴 올리언즈가 배경이 되는 천일야화의 초고가 모두

만들어졌으나 최종 퇴고와 사진 처리가 아직 미완인 상태입니다.

 

더구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이곳 허드슨 강변에서 해야할 일들이 좀

산적해 있습니다.

완성본 "팩션" 글은 천천히 뒤로 미루면서 우선 남부 여정을 영상으로만

계속 달려갑니다.

 

지금 막, 우리는 루이지아나 목화밭 아래쪽에 널부러져있는 뉴 올리언즈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한과 오욕의 설화로 점철된 그런 역사의 뗏국이 켜켜로 묻은 그 도시

말입니다.

 

 

 

 

 

 

   

                                      황토색을 띈 미시시피 강이 도심을 안고 흐릅니다.

 

 

 

 

 

  

부서진 집들도 아직 많이 눈에 띄지만 재건축에 들어선 공동 주택들도

여기저기 많이 보입니다.

오죽하면 카트리나 참상을 구경하는 관광 코스가 다 있을까---.

일정상, 또 감정상 그렇게까지 남들의 재앙에 코를 들이밀지는 못했습니다.

 

 

 

         같은 블록에서 재건축 건물과 부서진 건물이 대조적입니다.

 

 

 

 

 

 

 

카트리나 보상금 신청을 대행한다는 보험사의 광고판을 힐끗 지나쳤습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뉴 올리언즈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 건물입니다.뒷쪽에 높고 웅장한 건물이

미시시피 강변을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흑인 노예사를 최근에 좀 읽었는데 그들을 족쇄에 얽어매는 도구들, 째찍들이

전율하게 합니다.

이곳 루이지아나 목화 밭에는 년산 1000톤에 불과하던 목면 소출이 흑인들이

들어오면서 수백만 톤으로 늘어납니다.

흑인 노예 400만명의 노역의 결과입니다. 남북 전쟁 이전의 이야기입니다.

이때 흑인들이 부른 노래가 블루스와 가스펠이었습니다.

이를 토양 삼아 재즈가 나옵니다.

 

목화 밭 보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목화가 하얗게 터지는 계절이라는데---, 여섯 사람이 머리를 맛대어

지방 국도로 들어가도 목화는 피어나지 않고---.

마침내 아직도 푸르디 푸른 키 낮은 식물을 보고 우리는 목화라고 이름 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