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올리언즈"를 빠져나오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한(恨)을 간직한 도시가 사람을 붙들어매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퐁찬 트레인"이라는 거대한 민물 호수 위에 걸린, 세상에서 가장 긴
다리를 건너서야 족쇄에서 자유스러운 느낌을 갖게되었다.
다리를 건너는 데에만 40분이 걸렸다.
담수호 위에 걸린 다리가 그렇게 길었다.
그리고 무려 여섯시간 반을 달려서야 테네시 주의 멤피스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 글을 쓰기 이틀 전에 미시시피 강에 걸린 다리가 무너져내렸다.
멀리 미네소타 주, 미시시피 강 발원지에서 일어난 사고였다.
우리가 찾아가는 도시, "멤피스"라는 이정표가, 달리는 승용차에서
흐릿하게 보인다.
마침내 도착한 멤피스, 엘비스 프레슬리의 생가와 기념관, 기념 조형물들이 있는 거리는
"그레이스 랜드"라는 이름이었다.
그레이스 랜드 타운으로 들어가는 길은 아주 넓었다.
그러나 기념관을 만들때 프레슬리의 자가용 제트기 두대를 차에 실어서 끌고 들어가는
데에는 부족하였다고 한다.
그 넓은 거리가 좁아서 많은 시설들을 뜯어내었고, 전깃줄 같은 것이 걸려서도 난리가
났다고 한다.
기념관 정문 앞에서---.
잘 알려져 있듯이 그의 무대 의상은 수천점이 넘는데 모두 이 곳에 전시 되어 있었다.
옛 황제들의 곤룡포 같았고 카리스마와 신화의 재현을 위한 소도구에 다름아니었다.
그걸 알면서도 현대의 소시민과 청년들은 열광하였고 그는 환호 갈채 속에서 일찍 숨을
거두었다.
엘비스 프레슬리 일가는 모두 이 곳에 묻혔다.
이집트, "왕가의 계곡"이 재현된 셈이었다.
그가 즐긴 자동차 만도 몇백대에 이르렀는데 전시장에서는 찍기가 쉽지
않았다.
진시황릉의 토용에 비유한다면 과한 비약인가---.
자가용 비행기 두대는 어쩌면 피라밋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빠른 속도를 꾀했어도 무서운 시간의 쌍두마차(앤드루 마블의 시)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가 이룩한 음반의 판매수는 골든 디스크로 가름해 볼 수 있었다.
물론 숨이 막힐 정도의 기록들이었다.
하지만 "헛되고도 헛되도다"
"부요도 헛되고 명예도 헛되고 학문도 헛되고 모든 것이 헛되도다",
구약 전도서의 일절이 생각났다.
이집트 파라오들이 잠든 카이로 인근, "기자의 피라밋"에서 본 상형문자의
기록들은 유한한 인간들의 처연한 소망이었다.
바로 시간의 흐름을 극복하고자한 소망의 기록들이었다.
"말똥구리" 모양의 곤충이 시간의 흐름을 말아서 굴리는 모습은 덧 없고도
참람하였다.
돌이켜 보건데 인터스테이트 턴파이크 55번을 따라 북상, 미시시피 주를 다시
거쳐 테네시의 멤피스에 도착하는 순간은 시간 여행을 하는가, 착각이 들
정도�다.
이집트 고왕조의 수도 멤피스로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러해 전에 찾아갔던 이집트는 무척 더웠다.
여기 현대의 멤피스도 똑 같이 더웠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원래 이웃 미시시피 주에서 태어났으나 바로 옆 멤피스를
고향으로 삼았다고 한다.
무슨 인연의 끈이 그를 이끌어서 나그네에게 깊은 명상을 허락했는지
모르겠다.
이집트 멤피스에는 기억에 남을만큼 큰 유적이 남아있지는 않았었다.
이집트 고왕국시대(기원전 2575-2134)의 수도였을 때에는 거대 조형물들이 많이
있었지만, 기원전 2134년경 고왕국이 멸망하면서 멤피스의 중요성이 상실되었고,
이집트의 수도는 마침내 11왕조 때에 테베(11왕조)로 이전되었다.
3천년이 넘는 멤피스의 역사는 기원후 395년 우상숭배 타파를 선포한
테오도시우스 황제 칙령에 의해 종말을 고한다.
다신교 신앙의 도시는 철저히 파괴되고 말았다.
그러나 인근 네크로폴리스 지역을 포용한 대 멤피스 지역을 염두에 두면 수많은
유물과 역사서를 끌어안을 수는 있다.
이집트 여행은 더웠다는 기억이 가장 뇌리에 남는다.
테네시의 멤피스도 마찬가지로 몹씨 더웠다.
이름이 같다는 이유와 더위 탓만이 아니라 미시시피 강가의 멤피스는 나일 강상의
멤피스와 여러모로 무척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의 멤피스도 19세기, 한때 역병이 돌아서 도시가 절멸할 뻔하였다.
고대의 멤피스처럼 절멸되지 않고 불사조처럼 소생하긴 했지만---.
황제가 재현 되었다는 점도 소름끼치게 닮았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바로 현대의 황제, 모던 엠퍼러가 아니던가---.
그의 위력은 어쩌면 고왕국의 황제 때보다 더하였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그가 엔터테이너들과 음반 기획사들의 등쌀에 생명을 갉아먹었다면
예전 이집트의 황제, 파라오들에게는 성가시고도 성가신 제사장들이
있었을 것이다.
멤피스는 엘비스 프레슬리 만으로 유명한 도시는 아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피살된 작은 모텔도 도시의 일우에 남아 있었다.
참배객은 끊임없고 기념물들도 전시되어있었으나 쓸쓸한 모습은 어쩔수 없었다.
유한한 인간의 숙명을 잠시나마라도 잊거나 극복하겠다는 듯이 멤피스의
또 한 곳, 빌 스트리트라는 곳에는 밤만 되면 폭주족과 데이트 족들이
모여들어서 광란의 한때를 연출하였다.
그러나 열광이 지나면 이곳은 블루스를 연주하고 또한 그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는 블루스의 거리가 된다.
이곳을 블루스의 발상지라고 하는데, 과한 표현은 아닐듯 하다.
도시에 일몰이 오고 나그네는 다음 날, 또 다음 도시를 향하기 위하여
멤피스 교외로 잠을 청하러 서둘렀다.
다음 목적지는 칸추리 뮤직의 본산, 내슈빌이었다.
미시시피 강을 다시 건너 멤피스와 작별을 하는 순간은 마치 엘비스 프레슬리를
하데스나 레테의 강변으로 떠나보내는 기분이 들었다.
과연, 우리가 떠나는 도시의 끝 쪽, 미시시피 강가에서는 나일 강가에서 본
피라밋이 현대적인 모습을 하고서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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