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결혼식장에서 들은 이야기들---

원평재 2005. 1. 22. 08:48
두어주 전 결혼식장 이야기.
그날도 물론 주말, 토요일의 길일이었다.
요즈음은 주말이 길일이 아니라 결혼식장 잡는 그날이 길일이라던가.
교통 전쟁을 뚫고 가까스로 달려간 혼사에 느낌이 많았다.
아주 오래전, 직장을 함께 잡은 인연으로 한 친구를 사귀었다.
성장 배경은 달랐으나 나이가 같고 개발년대의 힘든 세상을 함께 개척
한다는 자세가 마치 전우애 같은 정을 우리 사이에 심어주었나보다.
나는 그곳을 곧 나왔으나 그는 평생을 그 직장에서 시종하였다.
한때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계절이 바뀔 때 쯤이면 함께 술잔도 
기울였으나
생활반경이 너무 달라지기 시작하고 부터는 마음 속에서만 술잔을
나누었다. 적어도 나는---.
그를 다시 만난 것은 각자 아이들을 성가시키면서 부터였다.
그도 아들은 장가를 보냈는데 과년한 딸 걱정을 하는 것을 간접으로
들은 기억이 난다.
이날이 바로 그가 그 과년한 딸을 시집 보내는 날이었다.
오랫만에 보는 부인의 얼굴도 잔주름에 가득하였다.
피로연회장에서 낮익은 얼굴의 어떤 부인이 시선을 보내왔다.
검은 투피스를 입은 모양이 아름다웠는데 범접 못할 기품이 
그녀의 옷깃을 더욱 빳빳하게 풀 먹이는 느낌이었다.
먼 발치의 그 분이 먼저 일어나며 좌중을 훑어 인사하였다.
내가 옆 사람에게 누구냐고 물어보니 직함을 겻들여서 
아무개 씨의 부인이라고 알려주었다.
"부군께서는 왜 안나오셨어요?"
과거에는 그 분과의 교유가 깊었다고 생각하고 내가 큰 소리로 
힐난햐엿다.
"남편은 반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여기 그 전말과 저희 가족들의
발언과 하나님에게 대한 아름다운 느낌이 들어있답니다."
부인께서 조용히 웃으시면서 편지 한통을 내밀었다.
편지는 나에게 보낸 것 만은 아니었지만 조용히 그분이 유명을 
달리하신 경과와 남은 가족들이 하나님 믿으며 열심히 사시는 
모습을 담고 있었다.
절절한 글들이 감동과 눈물을 자아내게 하여서 여기 조금 옮겨본다.
"하나님, 제 남편은 유난히 겁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남들에게는
그 분이 만인의 지도자로 부각되었으나 저는 그 양반이 유난히 
겁많은 사람이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겁많은 사람을 
걱정없이 데려가시기 위하여 반년을 무의식의 상태로 두었다가 
데려가신 우리 하나님---"
아, 부인의 얼굴에 보이신 저 조용한 미소는 바로 그러한 전말이
녹아있었구나---.
내가 본의 아니게 큰 결례를 한 셈이었지만 그 부인은 그런 세속에는
이미 초연한 경지를 이루고 계셨다.
한편 얼마 후에 그날의 혼주로 부터 감사의 편지를 받았다.
매우 독특한 놀라운 편지였다.
아무게님께
"시원섭섭하다"와 "딸을 치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과년한 것을 드디어 치우게 되어 이것 저것 준비를 하며 참으로 
즐거웠답니다.
그런데 막상 당일 날 잡고 있던 손을 넘겨주고 돌아서며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고 있는 집사람을 보았을 때 왠지 허전함을 느꼈답니다.
딸을 가진 부모들의 한결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앗습니다.
지난 주말 쌀쌀한 날씨임에도 저의 딸 혼사에 많은 도움을 주셔서---,
이번에는 좋은 일 끝에 받은 글이었음에도 나는 눈물이 나서 
그만 읽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 그 날 들은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
상처를 한 분들, 풍맞은 부인을 간호하며 살아가시는 분들, 
특히 중년 이혼을 겪은 분들이 꽤 있었으니 세상사도 많이 변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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