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브라스카 출신 여류 소설가, 윌라 캐더의 <나의 안토니아> 일부 구절이 새겨진 안내판을 사우스 다코타 "블랙 힐즈"로 가는 국도 변에서 보게 되었다. 소설의 배경은 네브라스카이지만 주 경계라는게 무슨 의미랴. 모두가 다 '수(Sioux)' 족의 지파, '다코타', '나코다', '라코다' 등으로 표현되는 한덩어리 땅일 따름이다. 그런 남의 땅으로 들어와서 "고난과 참담"을 운위하는 것이 좀 우스꽝스럽다고 시니컬한 비평론을 전개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이 척박한 바람의 땅에서 보헤미아 이민들의 참상은 한동안 계속 되었지만 위의 안내판 구절은 이 바람의 땅을 예찬하는 내용이다. 왜냐하면 여기 인용된 구절은 이 곳을 떠나서 도시로 나간 나레이터가 나중에 고향으로 돌아와 어릴적 여자친구 안토니아가 이 거친대지에서 이룬 성취에 감동을 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윌라 캐더(Willa Sibert Cather, 1873~1947) 1905년에는 첫 단편집 「트롤요정의 정원 The Troll Garden」을 출간했다. 이후 1912년 첫 장편소설 『알렉산더의 다리 Alexander's Bridge』를 출간하면서 전업 작가로 전향한 후 평생을 글쓰기에 전념했다. 지방주의 작가, 자신과 친숙한 지방인 네브래스카의 평원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방황하는 부인 A Lost Lady』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 Death Comes for the Archbishop』 『바위에 비친 그림자 Shadows on the Rock』 외 다수.
<바람의 동굴>이 지척에 있다시피 무척 센 바람이 몸을 날릴듯 하였다.
네브라스카와 사우스 다코타 등, 중서부 대 평원지역에는 바람도 많이 불고 또 동굴도 많다. 사우스 다코타에서 인디언 추장 "크레이지 호스"의 조각상 제작 현장과 러쉬모어의 미국 대통령 조각상을 찾아가는 도중에 뜻하지 않게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미국 여류 소설가로는 파이어니어 였던 <윌라 캐더>의 소설 작품을 기리는 안내판을 마주하게 되었다. 정말 뜻밖의 소득이었다.
"윌라 캐더"는 원래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에서 이민을 온 부모 사이에서 태어 났으나 조실부모한다. 특별히 아버지는 꿈이 많은 사람으로 준비없이 낭만적 삶을 추구하여 대평원 지대로 이주해왔으나 바람많은 이 지세를 이길 역량은 없었다. 버지니아로 가서 성장한 윌라 캐더는 어린 시절을 보냈던 네브라스카의 대학 으로 스칼라쉽을 받아서 다시 오게 되고 졸업 후에는 교직과 언론에 종사 하다가 전업작가가 된다.
오늘날 물질 문명으로 인간의 삶의 터가 파괴되는 현실 속에서 윌라 캐더가 그린 대평원의 개척자들의 삶, 특히 대지의 지모신 같은 여성 주인공들은 이제 <에코 페미니즘>의 전형으로 재조명되고 다시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아이러니컬 하게도 이 땅을 오래 간직하고 오래 함께 호흡을 한 진정한 주인들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이었다.
백인들은 이 땅에 들어오면서 초기에는 버팔로로 부터 단지 장신구용 뿔을 채취하기 위하여서 인디언들의 양식을 절멸시킨 죄를 지었으나 집단적 저항에 부딛치자 여러차례의 패전 끝에 강화조약을 맺고 화해한다. 하지만 곧 골드 러쉬가 터지면서 인디언들과의 약속은 휴지쪽이 되고 그들을 내몰아 절멸시킨 땅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중서부 대평원 지대이다.
그 개척시대의 가장 큰 상징적 희생자가 "크레이지 호스"였고 오늘 날은 약 24킬로 미터 가까이에 있는 러쉬모어에 백인 대통령 네명의 얼굴이 자연을 파괴하며 양각되어 있는 데에 저항하듯, <크레이지 호스>의 대 기마상 공사가 정부의 도움없이 진행 중이다. 지금 얼굴 하나를 겨우 깎아냈는데 약 60년이 걸렸다.
대통령 얼굴이든 크레이지 호스 얼굴이든 모두 록키 산맥의 준령을 깎아 만들었으니 모두 자연 파괴에 다름아닌데, 이 일대의 땅들은 <블랙 힐즈 대 산림지대>로 불리워진다. 크레이지 호스가 저 유명한 인디언 토벌대장 커스터를 죽인 곳도 여기이다.
이 아름답고 장엄한 록키 산록은 원래 수족 인디언들의 땅이었다.
"크레이지 호스"의 얼굴을 파내는 작업이 멀리 바라보이는 캠핑 그라운드에 들러서 사진을 찍었다. 얼굴 상 앞 면만 겨우 깎아내는데 60년이 걸렸다는게 아닌가---. 다이너마이트 등의 폭약을 쓰는 데도 말이다---.
공사의 상세한 진행사는 자료가 너무 많아서 이 곳에서는 생략하고 "러쉬모어"와 대비하여 그 의미만 잠시 명상하며 지나가고자 한다.
생각해 보자, 윌라 캐더가 바람 많은 대평원에서 평생을 수고하는 가운데 있었던 촌부 '안토니아'를 고난과 성취라는 양면 가치로 아무리 예찬했더라도 이 땅은 원래 인디언의 땅이었다. 지금은 또 이 땅에서 비육 가공된 쇠고기가 우리의 식탁을 넘보고 우리는 이 중서부 대평원에 현대와 기아의 자동차를 쏟아붓고 있다.
또 '크레이지 호스'가 아무리 거대한 규모로 블랙 힐즈에서 양각 되고 있어도 백인들의 자연 파괴에 대항하는 또다른 자연파괴의 행위가 되어 인류사의 처연했던 한 시대에 대한 씻김 굿이 될는지---, 보상이나 회복될 수 없는 슬픈 전설이 귓전에 바람 소리가 되어 잉잉거릴 따름이다.
석양 잔영이 러쉬모어로 가는 길을 재촉하였다.
말도둑이라고 하면 이 곳에서는 죽고 사는 결투를 각오해야한다. 여기는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개스가 바닥이 나서 가슴 졸이며 내리막 길을 필리 드라이버가 잘 이용하여 내려와서 가까스로 에너지를 보충하였다.
저녁 시간이 되었고 멀리 보이는 아메리카 합중국의 위대한 대통령 상들도 속절없이 어둠 속에 파묻힌다. 블랙 힐즈 삼림 속에 삼라만상도 어둠속에 묻힌다. 피자로 저녁을 떼웠다.
(계속) |
'깊이 보고다닌 투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 배드랜드 (1) (0) | 2008.08.05 |
---|---|
러쉬 모어의 미국 대통령 얼굴들 (0) | 2008.08.04 |
촛대 바위와 솟은 캐년 (0) | 2008.07.30 |
소떼와 함께 시작한 미 중서부 기행 (0) | 2008.07.26 |
초파일에 동과 서의 만남/바이 바이 키플링 (0) | 2008.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