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덕수궁이라고 늦가을을 거부할 수 있으랴.
한동안은 그런 생각으로 시청앞을 지나치면서 그저 고궁의 담장 안쪽을 힐끔거릴
따름이었다.
막상 들어가 볼 기회를 잡은 것은 먼 곳에서 친구가 온 날,
도심에서 밥을 먹고 난 연후에 가까스로 만든 일이었다.
고궁의 가을은 정녕 아름다웠고,
깜박 잊고 있었던 "라틴 아메리카 16개국의 거장"들은
"벽화"라고 하는 혁명적 주제에서 부터 초현실주의 실험에 이르기까지
석조전 미술관 안에서 팔을 걷어부치고 원색으로 씩씩대며 소리치고 있었다.
"테라 로사", 우리의 황토색 보다 더 붉은 남미의 토양이 생각났다.
이들은 한 여름 날 이 땅에 들어와서 국화와 단풍이 아름다운 "입동(立冬)" 언저리
까지 도심의 고궁을 지켰으니 참 많은 일들을 서울 도심에서 보고 떠나는가 싶다.
나는 "프리다 칼로"만 보면 된다 싶었는데 그녀는 당연히 나를 반겼고
그녀의 남편, "리베라"도 프리다 자매를 모두 품에 안고서 관람객들에게
벽화 혁명을 외치고 있었다.
아래 한국어나 English를 두번 누르면 전시회 설명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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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 조각이 난 프리다를 철판에 꿰메놓고서 또다른 사랑을 붙태운
그녀의 남편, 리베라의 정열을 윤리의 틀로 재단하는 일에 관심을 보여볼까,
(주로 그녀의 그림이 있는 패빌리언 입구에 설치된 동영상에서는 그런 개탄이
주절주절 나오고 있었다)
아니면 폭정과 수탈의 땅에서 생존의 본능을 처절하게 부르짖은 예술가들의
절규 쪽에 더욱 귀를 기우릴까---,
이번 전시회에서는 이런저런 모든 것들을 싸잡아 벌여놓아서 백화점 식이라는
핀잔도 어느틈에 듣고서 전람회의 그림들은 이제 벽에서 내려오는 모양이었다.
고궁의 담벼락을 경계로 하여 지난 여름 시청 앞 광장에서 벌어졌던 함성과
라틴 아메리카 아티스트들의 절규는 묘한 대조가 되었을 텐데 게으른 지식인은
그들이 마지막 보따리를 쌀 때에야 겨우 들어가서 감동하고 사진찍고 그리고
안도할 따름이었다.
렌즈를 피하는게 아니라 가을 날 양광이 너무 세찬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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