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계간 문예지, <문학 마을>과 <삼정 문학관>에서 주최하는 김동길 교수 초청 강연회에
좌장을 맡게 되었다.
워낙 잘 알려진 인물이고 명강으로 공인되는 분이어서 약력 소개도 상세하게
하는 것이 미안할 지경이었다.
청중들은 문학, 더 나아가서 예술을 사랑하는 수준 높은 딜레탄트들이어서
마음의 부담은 오히려 덜어놓고 진행을 맡았다.
강연 장소는 문우 중의 한분이 제공한 문학관이었는데 약 반년전에 개관하여
예술 모임에 공간을 제공해 주는 곳으로 기흥의 경희대 근처, 솔 향기가
그윽한 지대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름은 <삼정 문학관>이다.
시간이 될 때까지 묵상 가운데에 있던 그 분은 자신에 대한 나의 소개가 과분
하다고 말문을 연후, 달변가 답지 않게 눌변으로 강연의 서두를 시작하여서
나를 비롯하여서 듣는이들이 처음 조바심을 일으켰다.
특히 청중의 대부분이 인생의 후반과 종반에 들어서서 이제 지나간 날을
반추하고 자성하며 유종의 미를 모색하는 사람들이라 이런 유형의 강연에는
이골이 난 사람들인데, 저 이름난 연사께서 초반에 서성거리는 언변을 보이자
저으기 실망하는 빛까지 얼굴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김교수는 그런 데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여러분들을 뵈니 삶의 격조는 천정에 닿아있는 분들 같지만 나이를 따지자면
가을도 늦가을에 도달한게 아닌가 생각된다"라며 말문인지 포문인지를 열었다.
물론 연사인 김 교수의 나이도 그런 비유라면 초겨울 쯤은 되었는데 오랜만에 뵌
모습은 정정하기 그지없었지만 강연의 내용과 형식은 그 사이에 어쩌다 저렇게
눌변과 침체 그 자체가 되었나,
문학관에는 얼핏 근심의 분위기도 감돌아서 건물 안팎으로 가득한 솔 향기가
무색하게 되는 지경이었다.
1928년 생인 그분은 오래 전에 유행했던 유머도 내놓았는데, 철지난 유머라서
분위기만 썰렁하게 만들었다.
그 썰렁 유머를 소개하면 이렇다.
어떤 40대 여인이 배꼽을 목에 붙이고 돌아다녀서 사람들이 물어보니 얼굴의
주름살을 싸잡아 매다가 이제는 배꼽이 그렇게 위로 올라 붙었더라는 것이다.
중년이 넘은 여인들에게 "나이와 주름살"이라는 참으로 건드리기에 위험한 유머를
표면으로 들고 나와서 그는 "나이" 혹은 "나이 먹음"에 관한 아픈 진실을 쏟아내는
것이었다.
우선 그 진실의 잠정적 결론으로는 나이를 먹으면 김성태의 노래처럼
"아, 너도 가고 또 나도 가야지" 그렇게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또한 나이란 무엇인가?
알프레드 테니슨의 싯귀처럼 "눈물이여, 속절없는 눈물이여(Tears, Idle Tears)"가
바로 나이의 본질이라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오늘의 한국사회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는 어디로 가고
강연의 실상은 <나이에 대한 진실, 혹은 독설>로 변질 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우리 시대의 현상인 장수와 수명의 연장이라는 이 축복된 현상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건이 좋아져서 우리나라에도 100세 이상 노인이 이미 168명이나 되었다는 사실을
그는 화두로 던졌다.
하지만 그 다음의 언급이 놀랍고도 의미심장하였다.
"여러분, 그 노인들의 반수 이상이 누워서 지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까?"
그의 언변에 힘이 붙었고 이제 신바람 강연 본래의 가속도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아래 인용은 모두 그 분의 힘찬 포효였다.
--"노익장!?"이라니---, 정신나간 소리 말라고 하라.
--나이는 속이지 못한다는 잠언은 진리이다.
--60-70대에 보이는 오래 살려는 본능은 가련하다.
마치 시카고의 대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떼들이 발버둥 치는 것처럼 가련하다.
그 소떼들도 무슨 본능인지 하나같이 도살장 앞에서는 발버둥을 친다고 한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의 발버둥치는 본능을 웃긴다고 생각한다.
--"나, 김동길은 연천에서 달빛도 없는 논두렁 길을 따라 삼팔선을 넘어올 때
무슨 생각을 했으며 내려와서는 지금껏 무얼 이루었는가?"
제대로 이룬건 없지만 잘난체 하는 사람들 보다는 의미있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진솔하게 전제하여서 청중의 탄식이나 분노를 미리 차단하면서
이야기를 계속 전개해 나아갔다.
--인생을 놓고 볼때 나는 돈도 못벌었다.
내가 이병철 회장을 젊을 때 만났는데 그는 골동품을 보는 안목이 있다면서 '단계연'
벼루를 아파트 10채 값을 주고 샀다고 하더라.
하지만 그는 모두 두고갔다. 애중하게 여기던 골프채 하나 관속에 후손들이 넣어
주었다고 하더라.
--김우중씨, 세계는 넓고 할일이 많다고 했지만 병원과 감옥은 좁았을 것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90 넘어 하와이로 망명하였더니 영어도 다 잊고 한국말만
기억에 남아있더라고 한다. 프란체스카는 영어만 남았고---.
공보관하던 오재경 씨의 술회에 나와있다.
늙으면 배운 것도 다 까먹고 유창한 외국어도 다 날아가고 오직 모국어로 되
돌아가 버린다.
--'박통'의 이야기는 일러무삼하겠는가---.
--전두환, 노태우 씨는 큰집에 갔는데 말만 큰 집이지 좁더라고 하더라.
--나, 김동길 부총장은 총장을 할 단계였는데 쿠데타가 일어나서 붙들려 갔더니
공표는 않겠으니 사표를 내라고 해서 버티다가 그리했더니 그 날 밤 사이에
대학 이사회에서 사표를 수리토록 하여서 결국 총장도 못해먹고 아까
소개처럼 맨날 부총장이다---.
이 대목에서 좌중의 웃음이 터졌다.
거침없이 터뜨리는 "나이" 관련의 직설적 표현에 가을 바람이 스산하게 불던
문학관 실내에 아이러니하게도 모처럼 웃음 꽃이 피었다.
--전두환씨가 통은 큽디다. 얼마전에 우리집에 와서 냉면 좀 먹고싶다 하여서
몇명이나 오겠소? 물었더니 60명은 되리라 했는데, 결국 100명 이상이 와서
먹고 가더라.
장세동, 안현태 다 데리고 왔다---.
자, 이제 그는 이야기의 반환점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러면 그렇지, 이제 그의 강연은 더욱 활기를 찾았고 눌변은 언제부터인가 완연히
열변으로 바뀌었다.
약속된 시간을 넘길 것 같다고 강연 도중에 걱정을 하여서 내가 주최측과 의논도
없이 얼마든지 늘려도 좋다고 하였다.
내 옆에 앉아있던 문학관 관장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우리 문학회 모임 자체의 스케줄이 또 있기 때문이었지만 좌장의 특권으로 엿가락을
늘렸다.
아니 중간에 제지한다고 들을 양반도 아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선지자이자 현인께서는 청중들의 기선을 제압한 것이었다.
내가 미리 소개했듯이 이 청중들은 수많은 연설과 독서와 명상과 대화로 무장된
딜레탄트들이 아니던가.
지적 청춘이고 사유의 곳간이 가득한 부자들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아직도 여름 소나기를 일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계절의 추이를 알려주고 찬바람과 낙엽이 찾아올 것임을 경종하는 머릿말
순서를 이 선지자이자 달변가는 서두에 장치하여두고서 사뿐이 즈려밟고
나간 것이었다.
구약 전도서에 나오듯이 모든 것이 헛됨을 상고케하고, "가치의 무가치화"를
새삼 깨우치게 한 것이었다.
이제 그는 "가치의 교환"을 강연의 반환점에서 역설하기 시작하였다.
인간은 무엇을 찾아서 살아가야하는가---?
이 시대의 선지자이자 현인인 김박사께서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추구해야할
가치관을 "개인으로서의 가치"와 "인류로서의 역사적 가치",
두가지 차원의 가치 체계로 적시하여 주었다.
개인으로서 추구해야할 가치를 그는 "사랑"에 두었다.
사랑은 거창한 관념의 표적이 아니라 그저 남녀간에 사랑하고 자식을 낳고
사랑으로 잘 키우는 것이 그 근본이 아니겠는가,
결혼도 하지 않은 그의 말씀이었다.
굳이 종교적으로 보면 소망을 갖고 사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역사적 가치 추구"로는 더도 덜도 말고 자유에의 추구가 구극적 목적이라고 하였다.
역사의 주제는 자유이다.
정말 인류 최고의 높은 가치는 자유라고 그는 여러차례 부르짖었다.
인류는 파라오와 같은 압제로 부터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 대헌장에서 처럼
다중의 자유로 이행을 하였고 마침내 미국의 패트릭 헨리가 부르짖은
'자유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명제에서 만인의 자유 시대로 성큼 넘어 온 것이라고
그는 갈파하였다.
미국이 인류에게 준 것은 노예제도의 허물을 숙명으로 간직하면서도 자유에의
희구라는 희망의 등불이었다.
그들도 이제는 국가 흥륭 200년 주기설에 맞춘듯 최고봉의 정상에서는 서서히
내려오고 있는듯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가 최고의 덕목임을 인류의
가슴에 심어준 공덕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럼 이제 인류 문화와 문명의 포텐시아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아마도 빛은 동방에서~!라는 타고르의 시가 아니어도 이제 분명 역사의
수레바퀴는 동방으로 돌고 있는듯하다.
국가의 흥망도 개인처럼 탄생-성장-몰락-죽음의 사이클을 밟는 것은
필지의 사실인 것같으니까 이제 오리엔트의 시대가 다시 오는듯 싶다.
그럼 역시 중국이?
천만의 말씀이다,
그럼 일본?
그것도 천만 부당!
다음 문명과 문화의 중심지는 한글 문화의 발상지인 대한민국일 것이다.
똑같이 올림픽을 치룬 세나라지만 멜라민이 판치고 티벳의 자유를 억압하는
중국에게 차례가 갈리 없고 천황신앙과 그 이름아래 아시아 인들을 노예로
부려먹었고 수만의 잡신을 모시는 일본에게도 기회가 오지 않으리라.
그 두나라들은 또 한자를 이상하게 자르고 고쳐서 새로 만드느라 원래의
의미소가 사라진 허껍데기 언어와 문자를 쓰고 있으니 이런 연고로도
진정한 문화 대국이 될 수는 없으리라.
한글은 수많은 과학자들이 말하듯이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음표 문자이자
의미가 쉽게 내재할 수 있는 특징이 있으며
특히 이 컴퓨터 시대에 가장 과학적으로 자음과 모음이 착탈하는 문자이다.
지금 24자를 쓰지만 세종 창제때의 정신대로 28자를 다 갖다 쓰면 세계
어느나라 말도 표기치 못할 말이 없으니 이런 문자가 세상에 어디있는가.
아울러 두 나라가 성공하지 못할 큰 장애물로 그는 종교가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했음을 내내 적시하고 강조하였다.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모두 신념과 기회에 따라서 세상의 큰
종교를 고루 섭취하고 가장 모범적으로 믿는 나라라고 그는 강조하였다.
개신교의 뿌리깊은 신앙인인 그가 결코 기독교, 특히 개신교의 가치만 내세우지는
않았다. 오히려 종교간의 갈등을 편향되지 않은 시각으로 염려할 따름이었다.
과거에는 우리나라에 종교적 갈등이 있었다 하여도 같은 종교 내의 내분양상
이었다고 그는 지적하였다.
불교 종단의 내분, 개신교 내부의 종파 갈등 등등은 존재했으나 지금처럼 종교
전쟁의 양상은 아니었는데 어떤 불순 세력의 농간인지 지금 세태가 묘하게
돌아가지만 시간이 지나면 갈등이 해소되리라고 그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만약 그리하지 않는다면 민족 공멸이 와서 이 천재일우의 역사적 소명을
우리민족이 담당하지 못하리라고 그는 우려하였다.
시간은 약속된 한시간을 훌쩍 넘어서 두시간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는 강연을
멈출줄 몰랐다.
주최측이 내 옆구리를 찔렀다. 그것도 여러번!~~~.
마침내 내가 일어나서 사인을 보내고 안달을 냈으나 한번 터진 김 교수의 달변은
그칠줄을 몰랐다.
두시간을 꼬박 채우고 나서야 우리는 다음번에 한번더 기회를 갖자고 하면서
아쉬운 시간을 마쳤다.
질의 응답의 시간이 있어서 다시 위에 언급한 내용의 음미와 재확인의 시간을 갖고
솔향기 그윽한 아름다운 시간은 석양 속에서 차츰 잦아들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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