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Essay

창덕궁 탐구 2 (연경당 까지)

원평재 2009. 11. 18. 07:39

 

창덕궁은 1405년 태종이 세운 조선왕조 제2의 왕궁이다.

경복궁에 이어 별궁으로 창건했지만 임금들이 주로 창덕궁에 거주하고 정사를 보게 되었다.

궁궐의 기와 처마에서 잡귀를 물리치는 모양으로 세워놓은 여러가지 형태는

잡상, 혹은 어처구니라고 부른다.

조선 궁궐 훼손의 국가적 주범이라면 일본인데 지금은 일본 사람들이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다.

중국 사람들도 이제 몰려오고 있다.

돈화문 바로 옆의 현대 사옥 앞에서 난장판이 벌어지곤 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사용자나 근로자나 모두 합심하여서 국격을 세울 일이다.

 

 금천교(錦川橋)를 건너서 좌로는 인정전, 선정전 등의 정사를 보는 곳이 버티었고

오른 쪽은 낙선재가 좌정하고 있다.

비원으로 향하는 마음이 앞서서 좌우의 역사적 궁궐은 나오면서 보기로 하고

우리는 창덕궁 후원으로 발길을 빨리하였다.

 금천교는 경복궁처럼 정문과 정전에 일치하여 놓여져있지 않다.

경복궁이 정궁이고 규격에 엄격하였다면 이궁인 창덕궁은 그만한 여유가 있었다. 

이 작고 둥근 석교(1141년)를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서울에서 가장 오랜 세월을 견뎌온 다리이기 때문이다.

 

 기와 위쪽으로 북촌 마을의 지붕들이 재미있게 목을 빼고 있다.

 

 

 

 

아무리 발길을 빨리하여도 왕궁의 장려한 궁궐들이 한없이 도열하고 있다.

 

 

 

일단 애련지의 애련정에 도달하여서 낙엽이 깔린 이 벤취에 앉아

밖에서 사 온 토스트를 우적 우적 씹어 먹었다.

아침 식사를 하지 못하고 나온 탓이었다.

 

 애련지 둘레에 왕과 왕자들의 도량을 닦는 건물들이 많다. 이곳은 펌우사,

  

 

존덕정은 지붕이 이중으로 되어서 특이한 건축 양식을 뽐낸다.

 

 

함께 간 또다른 사우가 구도를 보고 있다.

 

 

존덕정의 천정에 용이 그려져 있다.

 

 관람정에서 애련지를 감상하는 포인트가 일품이다.

이름 그대로 원래 관람을 위하여 지어놓은 정자이다.

 

 

펌우사의 근접 모습

 

 애련정을 떠나서 연경당을 향하는 곳곳에 궁궒문이 있다.

연경당은 솟을대문(長樂門), 바깥 행랑채, 중문(長陽門), 안쪽 행랑채, 사랑채, 안채, 반빗간(취사장),

서재(善香齋), 후원, 정자(農繡亭)등을 품고 있다.

궁궐 안에 사대부 사가를 지어놓고 단청도 하지 않은채로

사가의 묘미를 음미한 곳이다.

사가가 아흔 아홉칸을 넘지 못하였으나 이곳은 백이십칸이라고 한다.

 

담장을 따라 금마문(金馬門) 다음 불로문(不老門)은 연경당(演慶堂)을 향해가는 첫 관문,

큰 바위 하나를 쪼아서 만든 문이 아래에 보이는 불노문이다.

임금이 무시로 드나들며 늙지 말라고 하여서 지은 이름이다.

 

 

 

 

 

 

 연경당 출입은 보통 여기 장락문을 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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