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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리와의 여행> 처럼--문학 강연 전후의 단상

원평재 2010. 5. 12. 14:15

다음 글은 5월 초, 오렌지 카운티의 "글 사랑" 모임에서 글 쓰기 관련 강연을 하며

우선 제 감상의 일단을 피력한 내용입니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대한 감상이 제법 깊숙히 배어있는 내용이라고 자평하며

저린 마음 함께 갖고자 올려봅니다.

 

 

 

 

 

 

LA는 제가 자주 방문하는 편입니다만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하는 데에 원동력이 되어주신

배기호 문우의 댁을 방문하고 그 댁에서 며칠간 폐를 끼친 일은 꽤 오랜만이었습니다.

그 사이에도 제 친우이자 문우인 배 장노 내외분과는 이곳에서 혹은 서울에서

간간히 만나서 회포를 풀며 서로의 얼굴에 서린 세월의 흔적을 시시때때로 확인하고

지내는 형편이라서 그리 큰 변화를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오랜만에 들린 애너하임의 마당 넓은 집도 의구하였으므로 만상이 모두 의구하다는

편한 마음이었습니다.

 

주인의 손때가 묻은 정원을 내다보면서 부인께서 조리에 애를 쓴 킹크랩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다가 내가 문득 외쳤습니다.

"아, 개는, 아니 강아지는, 아니 애완견은 어디갔지?"

개 혹은 애완견을 키우지 않는 나는 사실 pet에 대한 깊은 인식이 없어서 그렇게 소중한

뜻의 질문은 물론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햇수로 보아 이제는 내다버린 처지의 동물이 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는 정도의

생각이었습니다.

 

"아, 촬리 말이구만. 거기 의자 밑에 있다네."

아니 그 영악하게 짖어대던 애견이 벙어리가 되었는지 아무 말도 없이 내 의자 아래에

있다니---.

지난번 왔을 때만 해도 조금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내방객에게 적의를 표하던 그 충직스런

모습의 강아지는 그간 급속도로 나이를 잡수셔서 이제는 눈과 귀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 촬리. 이름이 촬리였고 우리는 그때 존 스타인벡이 써낸 '촬리와의 여행'이라는

미국 국내 여행기에 대해서도 조금 이야기를 나누었던것 같네.

나도 그때 존 스타인벡의 문학 세계에 대한 책을 막 내던 때여서

촬리라는 이름의 저 영악했던 애견이 매우 인상적이었어."

 

 

우리는 애견 촬리로 인하여

금방 문학의 영원한 주제 중의 하나인 시간문제,

세월의 흐름에 대한 상념에 빠져들어

갔습니다.

 

 

내일은 이 문학 강연회가 있어서 조금 일찍 자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물리치고 우리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로 자정까지 열을 올렸습니다.

존 키츠의 "Ode to a Skylark"이던가요. 사과즙을 압착하여 뽑아낸 액즙 한방울에서

정지된 시간을 발견한 시심이라던가,

"Ode to a Grecian Urn"(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에서는 천년이 지나도

항아리 속의 좇고 쫓기는 젊은 남녀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 절대 간격임을 또 이야기 하였지요.

하여 저 끝없는 추구의 모습에서 다시 영원성을 느껴보는 시심도 이야기 하였습니다.

 

 

또한 거기 수금(lyre)을 타는 장면을 노래하면서는 '들리는 멜러디도 아름답지만

들리지 않는 멜러디는 더욱 아름답다'라고한 만고의 절창도 되새겨 보았습니다.

과연, 제 친구는 갑자기 lyre, 요즘말로는 크로마 하프, 혹은 오토 하프라는 작은 하프를

꺼내어서 뜸북새로부터 시작하여 고향의 봄으로 이르는 종횡무진의 레파트와를 제게

선물하는 것입니다.

 

'놀랍네!'

내가 경탄하였더니,

'이게 모두 지상에서의 pass away를 준비하는거라네~. 하하하'

그는 철학, 아니 다분히 문학적 답변을 불쑥 내뱉는 것입니다.

'아이구, 문학 강연은 자네가 해야겠네.'

내가 가감없이 느낌을 피력하였습니다.

 

유한한 삶에서 무한성을 추구하는 것은 종교와 철학의 배타적 경지인가 하겠지만

보다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우리 문학의 세계에서

절절하게 추구해 나아가야할 영원한 주제가 아닌가 합니다."

 

친구와의 만남의 이야기로 서두를 튼 이날의 강연은

그래서 먼저 수백년에 걸쳐 내려온 영미 문학사의

유장한 도정을 오신 분들과 함께 산책하였고,

이어 근대 산업사회에 걸맞게 도래한 정기 간행물과 더불어

장르로서의 자리매김에 성공한 산문문학,

특히 수필 문학에 대하여 깊이 천착하는 기회를 가져보았던

것입니다.

 

이날 나누어 드렸던 두 종류의 유인물은 여기에 올릴 계제가 아닌듯 합니다.

다만 제가 쓴 졸저, 스타인벡 문학의 이해와 감상을 잠깐 아래에 소개합니다.

 

 

 

 
 
스타인벡(문학의 이해와 감상 104) e-Book
 
김유조 지음 건국대학교출판부 1997.09.30 책본문 』(America and Americans)을
‘미국 존 스타인벡학 회’ 주선으로 발간.
1968 『촬리와의 여행』,『생쥐와 인간들』,『분노의 포도』 등이 TV용으로 제작됨.
『에덴의 동쪽』중의 일부를 토대로 한 같은 이름의 영화도 제작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존 스타인벡 평전을 출간하면서 "찰리와의 여행"에도 나의 관심은 쏠렸다.
그가 애견, 찰리와의 미국 여행기를 쓴 것은 1960년대 초였다.
65년 우리말 번역서도 출간되었다. 
2006년에는 개정 번역본이 나왔다. 그 사이 존 스타인벡과 첫 한국인 역자는 모두 세상을 떴다.
세월은 이토록 흘러갔지만 정지된 시간에의 욕구는 관념화 되어 우리의 기억 속에 상존한다. 

         스타인벡은 주거가 가능한 커다란 캠핑용 차를 직접 몰고 애견 한 마리와 함께 술과 커피를
가득 채운 채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들어가 대륙을 이동했다.
여러가지 평가가 있지만 내가 이 제목에서 영감을 얻은 것은 내 친구의 집에서 이제 세상
하직을 두고있는 애완견 찰리와 스타인벡의 동반견 찰리가 같은 이름을 갖고 있다는 우연이었다.
 
아, 내 친구와 이책의 작가가 모두 캘리포니아 사람들이라는 것,
오렌지 카운티 강연날의 청중도 모두 캘리포니아 사람들이라는
우연도 가볍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가장 큰 의미는 촬리가 이 세상에서 소거해 가듯이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흘러가지만 우리 문인들은 정지된 시간(still point)을 포착하기 위하여
이토록 땀을 흘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친구는 나무와의 대화에 이른 아침 시간을 보냅니다.

예년같지 않게 성장이 신통치 않은 나무에는 걱정과 격려를,  

올해 새롭게 힘찬 모습을 보이는 나무에게는 경탄의 박수를

보내는 데에 인색치 않습니다. 

 

 

 

LA에서의 한일(閑)에 우리 두사람은 코리아 타운, 윌셔가, 베버리힐즈,

로데오거리 등등을 드라이브 했습니다.

해변가로 나간 낮과 밤의 기록은 다음에 올릴까 합니다.

  

 

 

 

옥스포드 호텔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낯이 익은 이 곳에는 추억이 많습니다.

자매학교의 졸업식에 참석차 왔을 때에도 이 곳에 머물렀는데 

우연히 도산 안창호 선생의 출판 기념식과 마주친

기억이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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