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맥 문학회 제1회 발표회가 성료 되었습니다.
지난 3월 20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7시 30분까지, 종로 3가 국일관 별실에서
개최된 행사였습니다.
작품 발표회는 작년 준비 위원회, 창립 총회, 송년회 등에서 항상 60명 내외의
경향 동문 문인들이 모여서 성황을 이루었는데, 정식 발표회는 이번이
처음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었습니다.
식은 남순대 동문(50회)의 사회로 진지하게 시작되어서 주제발표 (김유조, 이수화)와
8인 시 낭송회(40회 정무수 시인 외)가 이어졌습니다.
안동 "지레 마을" 촌장을 맡고 계신 김원길(41회) 동문도 바쁜 중 참석하여
강평을 해 주었습니다.
만찬과 친교의 시간까지 문학 한마당이 자못 경맥혼을 고취, 고양 시켰습니다.
제가 발표한 졸문, "근-현대 문학의 생성과 발전"을 여기 싣습니다.
문학의 미래 전망이 담긴 결론 부분을 중심으로 상념의 시간이 되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근-현대 문학의 생성과 발전
먼저 영문학을 전공한 제가 여기에 내건 발제의 방향이나 내용은 결코 “우리나라 근-현대
문학의 생성과 발전”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저야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문단 지도에는 어둡기도 하거니와 근-현대 문학이라는 말 즉,
modern과 contemporary의 개념 규정이나 시대 구분에서만도 수많은 복병을 만나게
되어있는데 그런 수풀 속을 헤치고 들어갈 만큼 무모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제목을 내 건 속셈은 무엇인가.
인류사에서의 일반적인 문학 생성의 과정을 한번 훑어보고 현존의 모습도 역시
주마간산으로 진단해 보면서 미래상도 한번 짚어보자는 소박한 뜻에서입니다.
주어진 시간이 또 질의 응답까지 포함하여 30분 내외라는 것도 주마간산의 좋은
핑계가 되고 있습니다.
시간을 맞추려는 노력으로 간단한 파일을 만들어 왔으니 많은 부분 카피를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류사에서의 최초의 문학 형태라고 하면 암각화나 수렵도 같은 것을 떠올리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언어로 된 문학이라고 하면 잘 아시다시피 음유 암송의 방식이 선행하고
이를 받아서 운문의 형태가 자리합니다.
기록 도구가 없거나 희소하던 당시의 조건이 첫 원인일 것입니다.
기록이 암송에 의존할 때에는 산문보다 운문이 훨씬 용이하겠지요.
덧붙여 오랜 기간 언어문화의 목적에는 주술적 효과를 꾀함도 있었다고 할 때에
집단의 혼을 빼앗기에는 산문보다 운문의 기능이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입니다.
일상의 산문적 의사 표현 형식보다 운문 스타일은 “낯설게 하기”의 특성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리스 로마 시대에도 희비극 대 로망은 운문인 대 서사시였고 칙령이나
역사서들도 운문에 가까운 특징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운문 문학은 그것이 갖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인지가 발달하고 인간의
삶이 복잡다기해 지면서부터는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데에 한계를 노출하게 됩니다.
운문이 갖는 불명료한 상징계와 상상계는 그에 따르는 비효율과 부정확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게 됩니다.
활자 문명이 꽤 발달되기 시작한 14세기의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
1343년경~1400년?)의 작품도 물론 운문이고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상징이자
영문학 최고봉을 자랑하는, 지금부터 400년 전쯤의 위대한 세익스피어
(1564년 4월 26일 ~ 1616년 4월 23일)의 희곡도 아직 전부 운문입니다.
진정한 산문 문학은 르네상스 시대가 퇴조하던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에세이
문학을 일구어낸 프랜시스 베이컨에서 시작합니다.
그의 초기작은 라틴어로, 후기작품은 영어 산문으로 쓰여 졌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아무튼 베이컨의 전성시대부터 영국 드라마(운문체)의 퇴조가 오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물론 청교도 혁명이라는 정치적 요인도 있었지만 이제 영국은 운문의 시대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근대 산문의 시대가 시대적 요청이었습니다.
왕정복고로 프랑스에서 돌아온 왕가는 곧장 망명지에서 섭렵한 형식주의와 고전적
지식을 영국의 시대정신으로 만듭니다.
신고전주의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이러한 정치 사상적 변화 보다는 이때부터 산문 문학이 영문학에서
크게 비약하며 아울러 그런 시대를 근대 영문학의 시작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매우 중요하게도 이때부터 영국사회에는 정기간행물을 중심한 저널리즘이 자리를 잡기
시작합니다.
저널리즘은 산문의 시대이며 곧장 다가올 산업혁명과 맞물려서 문학적으로는 근대
산업사회의 명암을 모두 속속들이 묘사할 소설문학의 대두가 필연이었습니다.
Daniel Defoe(1659-1731)는 1719년에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을 내 놓고, 이어
Jonathan Swift(1667-1745)의 걸리버 여행기가 나옵니다.
이윽고 진정한 의미의 근대 소설이라고 하는 Samuel Richardson(1689-1761)의 "파멜라",
Henry Fielding의 "톰 존스"가 등장하면서 소설 문학은 자리를 굳힙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이 소설들의 내용에는 이동의 심상이 많았고 배경은 모두 자기가
사는 땅을 떠나 있습니다.
여행이 지금도 그러하지만 소수에게만 향유될 수 있는 특별한 일이기에 관심과 가독성을
넓히고 늘리는 전략이었습니다.
인간은 한곳에 머물기에는 너무나 동적인 DNA를 갖추고 있는가 합니다.
또 그런 DNA의 소유자들이기에 진화의 과정을 견디고 살아남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장소의 문제에 한정하지 않고 관념에서도 마찬가지인가 합니다.
그래서인가 이제 왕정복고기의 신고전주의적 형식주의와 고전적인 체계에 기반하여
안주하던 당대의 사람들은 서서히 그런 구조에 염증을 느끼고 감성의 발로
(spontaneous overflow)를 꾀하게 됩니다.
낭만주의의 대두가 그것입니다.
낭만주의는 그러므로 주제나 배경에서 시공을 초월하는 상상계를 중요시합니다.
Byron이 쓴 장시 Chide Harold's Pilgrimage(1812)에서도 보다시피 주인공 해롤드는
유럽 제국을 만유합니다.
이 시대에 특기할 만한 일은 정기 간행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The Spectator니 The Quarterly Review(1809), 그리고 월간지 The London Magazine 등이
이때 나왔으며 이런 그릇에 담을 글들은 Charles Lamb, Thomas De Quincey등의 이름난
에세이스트로부터 나옵니다.
민주주의와 과학의 세기인 20세기 직전까지의 영국사
는 빅토리아 여왕(1837-1901)의 시대였습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는 영국의 국력이 세계를
지배하던 태평성대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전반부만 그러한 영광의 시대였고 후반부는
누적된 사회적 모순이 드러나면서 산업사회, 도시문화의 어두운 측면이 점철하던
시대였습니다.
Mimesis 이론, 문학이 현실의 반영이자 모방이라는 주장이 아니더라도 이 시기의 문학
성향은 짐작할 만합니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1859)이 나온 것도 이때였습니다.
이제 정기간행물이라는 그릇에는 영광과 좌절, 희망과 낙담이 교차하는 당대 지성인들의
무겁고 우려에 가득한 목소리들이 에세이의 이름으로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토마스 칼라일과 존 러스킨, 매듀 아놀드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가로는 월터 스콧, 찰스 디킨스, 토마스 하디 등이 모두 당대의
모순과 비관주의를 작품 속에 투영하고 있으나 여기에서 언급하기에는 너무나 시간과
지면의 한계를 느낍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 20세기는 이어서 대공황과 양차대전을 맞습니다.
정치적 격변뿐만 아니라 문단에도 오랜 낭만주의의 전통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모더니즘이
새로운 문학전통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관심을 갖고자 하는 것은 문학사조사 그 자체보다도 사회 변동에 따른
문학 형식의 반영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을 후기 모더니즘이냐 탈 모더니즘이냐 하는 해묵은 논쟁도
여기서는 피하고자 합니다.
다만 오늘 논의의 한 축을 문학의 미래 예상에 두고 있는 만큼 포스트 모던한 현상의
추이만은 일단 음미해 보고자 합니다.
19세기 사실주의(Realism)에 대한 반발이 20세기 전반 모더니즘이었고 다시 이에 대한
반발이 포스트모더니즘입니다. 사실주의는 대상을 그대로 옮길 수 있다는 재현
(representation)에 대한 믿음입니다.
말하자면 저자가 객관적인 실재를 그릴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이런 사실주의는 20세기에 들어와서 베르그송의 시간의 철학,·실존주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등, 단 하나의 재현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면서 도전을 받습니다.
대상은 보는 자의 주관에 따라 다르다는 전제가 생성되면서 저자의 서술 대신 등장인물의
서술인 독백(‘의식의 흐름’)형식이 나옵니다.
모더니즘은 혁신이었으나 역설적으로 보수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재현에 대한 회의로 개성 대신에 신화와 전통 등 보편성을 중시했고 프루스트, 포크너,
조이스, 미술에서의 피카소 등 거장을 낳았으나 난해하고 추상적인 기법으로 대중과
유리되었습니다.
개인의 음성을 되찾고 대중과 친근하면서 모더니즘의 거장을 거부하는 다양성의 실험이
포스트모더니즘이었습니다.
따라서 철학에서는 모던과 포스트모던 상황이 서로 반발의 측면이 강하지만 예술에서는
연속의 측면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탈 모더니즘과 후기 모더니즘이라는 뜻이 합일합니다. 비록 이성과 보편성에 의지했지만
이미 재현에 대한 회의가 모더니즘에서도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등장인물의 독백이 사라지고 다시 저자가 등장하는데 더 이상
19세기 사실주의와 같은 절대재현은 못합니다.
작가가 자신의 서술을 되돌아보고 의심하는 자의식적 서술(메타 픽션), 현실과 허구의
경계와해, 인물과 독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열린 소설, 보도가 그대로 허구, 픽션이 되는
뉴저널리즘, 작가의 권한을 최소화한 미니멀리즘 등이 쓰입니다.
영화와 연극 역시 사실주의의 패러디로서 환상적 기법, 자의식적 기법을 사용합니다.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포스트모더니즘 까지는 대략 문학의 흐름이 그 앞 시대에
대한 반동이거나 포용이거나 적어도 재해석이 가능한 맥락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는 주제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맥락을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담을 그릇이라는 측면에서는 무어라고 예측, 예상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왔다고 하겠습니다.
우선 플롯의 전개 자체에서부터 작가는 곤혹스럽게 되었습니다.
픽션보다 더한 팩트가 우리의 주변을 매일 실시간으로 어슬렁거리고 있습니다.
독자나 시청자들은 꾸며낸 이야기 보다 더 현실에서 스릴과 의외성을 만나고 실감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묶어서 새로 나타난 장르가 이제는 듣기에도 흔한 “팩션” 소설로 자리를
잡기도 하였습니다.
앞으로의 문화, 문학 현상은 어떻게 자리를 잡아 나아갈 것인가.
산업혁명으로 근대 사회가 격동을 치루면서 처절한 사회현상을 우리의 의식계에 불러내기
위하여 자연주의, 사실주의의 산문문학이 개화하였고, 산업사회의 안과 밖을 파헤치는
정기간행물의 등장과 함께 저널리즘 문학이 생성되었다고 한다면 이후의 문화,
문학 현상은 어떻게 생성될까.
“종이와 활자”의 문화가 진화하여 앞으로 책으로는 텍스토어에 접속되는 e-book의 시대,
신문이나 잡지 등 정기간행물로는 아이폰, 스마트 폰을 통하여 앱 스토어와 역시 텍스토어에
연결되는 세상에서 우리 문필가들은 어떤 대비책을 강구해야할 것인가.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벌써 4-5년 전에 e-book을 출간한 바가 있습니다.
따로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고 학술 진흥재단에서 우수도서로 표창을 받은 졸저를 어떤
출판사에서 다시 시험적으로 e-book으로 만들어 본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영광이었지만
그 후 별로 팔려나가지는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새로운 인터넷 시대에는 문체부터 손을 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저도 구세대가 되어서 현학에 가득한 유장한 문체를 선호하는 편인데 이런 문장 갖고는
이 시대, 인터넷 세대의 독자 몇 명을 붙잡을는지 자신이 없습니다.
앞으로는 아마도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서 향유하였던 음악과 영상이 들어간
e-book 소설책이나 시집, 수필집이 아니면 그 책이 내포한 주제나 내용이나 사상이
제 아무리 빼어나다고 할지라도 승산이 없을 듯합니다.
그렇다고 이런 시대적 추이에 아첨을 하며 좇아가야하는지 참 같잖은 생각이 문득문득
솟아오르기도 합니다.
이런 걱정, 저런 푸념을 나누기 위하여 오늘 이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각주 참고
1)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년 1월 22일 - 1626년 4월 9일)은 영국의 철학자, 정치가이다. 영국 경험론의 비조이다. 데카르트와 함께 근세 철학의 개척자로 알려진다. 종래의 스콜라적 편견인 '우상'을 배척하고 새로운 과학과 기술의 진보에 어울리는 새로운 인식 방법을 제창, 실험에 기초한 귀납법적 연구 방법을 주장했다. 정치가로서 대법관에 취임했으나 수뢰죄로 실각했다. 저서는 《수상록》, 《학문의 진보》 등이다.
2) 신고전주의는 넓게는 그리스 로마의 문학을 새로운 열의를 갖고 읽기 시작한 르네상스 시대로부터 낭만주의가 일어나기 이전의 유럽문학 전반을 가리키기도 하나, 좀 더 집약적으로는 왕정복고기 이후부터 1744년 알렉산더 포프( Alexander Pope)의 사망 에 이르는 시기인 18세기말까지를 가리킨다. 'The Restoration'(1660)부터 Wordsworth와 Coleridge가 'Lyrical Ballads'를 출판한 1789년까지의 기간.
3)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어 세계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는 프랑스의 학자들이 가장 먼저 사용했지만 처음으로 일반화된 것은 영국의 경제사가 아널드 토인비(1852~83)가 1760~1840년의 영국경제발전을 설명하는 과정에서였으며 토인비 시대 이후 이 용어는 보다 광범위하게 적용되어왔다.
4) 낭만주의(Romanticism)는 산업 혁명에 힘입어 18세기 중반 서유럽에서 발생한 예술사조이다. 18-19세기 계몽주의에 반대하여 나타난 낭만주의는 Romanticism 이라는 단어의 기원에서 알 수 있듯이 비현실적인, 지나치게 환상적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으며 이성과 합리, 절대적인 것에 대해 거부한 사조였다. 느낌과 감정을 강조하였으며, 계몽주의들이 설파 했던 이성에 대해 강한 회의를 품었지만, 결코 이성이라는 것을 무시하거나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과거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의미로 파악 되었던 이성을 역사적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으로 수정하여 고려하였다.
5)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 1795년 ~ 1881년)은 영국의 평론가·역사가이다. 이상주의적인 사회 개혁을 제창하여 19세기 사상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저서로는 《의상철학》,《프랑스 혁명사》, 《영웅 숭배론》.
6) 화려한 예술비평가의 길과 험난한 사회사상가의 길을 차례로 걸었던 19세기 영국의 저명한 지식인. 뛰어난 재능으로 당대 예술평단의 일인자로 명성을 떨치던 중, 어두운 사회경제적 모순을 목도하고 불혹의 나이에 사회사상가로 변모한다.
7) 아놀드는 <교양과 무질서(Culture and Anarchy)>를 저술하면서 세계사나 세계문화를 다루려는 거창한 입장을 취한 것이 아니고, 단지 영국의 사회현실이나 문예사조를 문제 삼은 것이었다.
8) 넓은 의미로는 권위 또는 봉건성에 반항, 과학이나 합리성을 중시하고 널리 근대화를 지향하는 것을 말하지만, 좁은 의미로는 기계문명과 도회적 감각을 중시하여 현대풍을 추구하는 것을 뜻한다.
한국 문학에서는 주지주의라고 일컬었다. 김기림(金起林)이 시의 낭만주의적 요소를 배격하고 모더니즘 시운동을 벌였으며, 그 특징은 ① 정서적 우세에서 지성적 우세로, ② 현실에 대한 초월적 태도에 대하여 비판적 적극성을, ③ 청각적 요소에 대하여 시각적 요소를 강조하였다.
10)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합성한 신조어로써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사실을 재창조하는 문화예술 장르를 가리킨다. 주로 소설쓰기의 한 기법으로 사용되었지만, 영화, 텔레비전드라마, 연극 등으로도 확대되는 추세이며 문화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03년 3월 미국에서 출간된 뒤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브라운(Brown, Dan,)의 소설《다빈치 코드 The Da Vinci Code》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부터이다. 출판계뿐 아니라 영화와 텔레비전드라마 등에도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가미한 작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2003년 개봉된 영화 《황산벌》과 《실미도》 2005년 개봉된 《그때 그 사람들》 《역도산》 등이 팩션 형식의 작품들이다.
'에세이, 포토 에세이, 포엠 플러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촬리와의 여행> 처럼--문학 강연 전후의 단상 (0) | 2010.05.12 |
---|---|
어떤 인터뷰 (0) | 2010.04.09 |
동지사 대학에서의 단상 (0) | 2009.12.08 |
폭우 속의 산중 시낭송과 작품 발표회 (0) | 2009.07.18 |
<말 찾아 빛 따라> (언어학자 김동소 교수 지음) 소개 (0) | 2009.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