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맞는 친구들과 세상사 이야기하며 점심을 때운후
돌아오는 차창 밖을 힐끗보니 "디바"라는 글자가 매미 껍질의 모습으로
눈에 들어왔다.
밤이면 빛나는 모습으로 자기 몸을 태우는듯 하리라.
술집이구나
술집 이름이 "디바"라면 보통 수준은 아니네.
오페라의 "프리마 돈나"를 "디바"라고 부르고,
우리 생애 최고의 디바는 마리아 칼라스가 아닌가---.
"디바, 카스타 디바~~~"
벨리니의 노르마 중에 나오는 "정결한" 세기의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려왔다.
"저기 디바라는 술집에 가봤어?"
나를 태워준 사업가에게 무심한듯 내가 물어 보았다.
"처음 보는데. 우리 나이에 어디 새로난 술집 찾아다니게 되었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야 모두들 여기저기 기웃거렸지.
왕년의 일류 술집이라면 작가 이병주가 그의 소설에도 한참 올렸던
동아일보 뒤편의 "사슴"이 있었고 이것이 강남구청 쪽으로 와서는
"꽃사슴"으로 바뀌었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고급 비어홀이었지.
도산공원 인근의 무슨 요정도 강남에 남은 마지막 두군데 "1급요정"
(면허가 그랬다)으로 버티더니 벌써 여러해 전에 세금과 인력난으로
문을 닫고 놀랍게도 설렁탕 집으로 바뀌었었는데,
요즈음은 그나마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좋은 친구, 동료, 젊은이들 따라 이런 저런 곳을 꽤 구경하였군.
그러나 이제 함께다녔던 친구들은 은퇴하였고,
우리의 체력이나 마음도 미혹과 욕망의 꿈을 이반하였구나.
요즈음 젊은이들은 저녁나절 어디에서 무엇을 꿈꾸고 모의하는가?
룸살롱의 색채도 많이 바뀌었으리라.
얼마전에 대치동 쪽의 고급 양주집에 젊은이들 초대로 간 적이 있었다.
회오리주라고 하여서 맥주잔에 맥주를 붓고
양주잔에는 양주를 부어서 그 맥주잔에 풍덩 집어넣고
티슈를 덮어씌워서 그 위에 손바닥을 얹고 세게 돌리니
잔 속에서는 정말 회오리가 일어났다.
젊은이들은 술에 젖은 티슈를 벽에다 철석철석 집어던져 붙여놓고
회오리주를 맛있게 쭉 마셨다.
나도 몇번해보니 기분은 상쾌했으나 머리는 혼미해져서
중간에 꽁무니를 뺐다.
문제는 그런 분위기를 컨트롤하는 황진이가 없었다.
"프리마 돈나" 역할을 해야할 "돈나"가 함께 시시덕 거리며
질낮은 농담이나 따먹고---.
하긴 이렇게 볼멘 소리가 나오는걸 보면 당시 내가 그런 심사 속에서
고급으로 대접 받지못한 유감이 앙금으로 남아있나보다.
방금 본 술집 "디바"는 다를거야.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으니까.
누가 마리아 칼라스를 무시하랴---
며칠간 나의 마음에는 "디바"라는 두글자가 맴돌았다.
그러나 마침내 내린 결론은 "디바의 꿈을 접기"였다.
이 나이에 무슨 무지개를 좇으랴.
무지개 저편에는 또다른 산야(山野)만이 있으리라.
많이 겪어보았잖아---.
술집, "디바"를 마리아 칼라스가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또 칼라스도 만년에는 결국 오나시스로 부터
험한 꼴 보지않았던가---.
아듀, 디바---.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어이 그렇게 모질수가 있으랴.
어느날 저녁, 늦은 퇴근길에 나는 그 쪽으로 차를 돌렸다.
네온의 불빛은 무슨 색갈일까.
맘에 들지 않는 객석을 향하여 하이힐을 집어던진
칼라스의 그 시퍼런 쪽빛일까,
오나시스의 변심에 뜨거운 분노를 안으로 삼킨 붉은 핏빛일까,
"아, 강낭콩 보다 더 푸른 그 물빛 위에
양귀비꽃 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이고, 이 무슨 망발로 수주 변영로를 팔아먹나.
그러나 디바는 매미 껍질 상태로, 그대로 있었다.
"내부 수리중"
아듀, 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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