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람들과의 우연한 회식 장소에서 처음 통성명한
매우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자신을 Q라고 소개하고,
나이로는 선배임을 자처하면서 불쑥 물었다.
"사주 팔자나 육갑에 대하여 좀 아시오?"
경계심없이 덕담이나 하는 자리인줄로 방심한 나에게
그가 느닷없이 달려들듯 질문을 하자 나는 당황했으나,
알고보니 사람을 끄는 그의 묘책이랄까 습관이었다.
내가 진실로 대답을 망설이자 그는,
"뭘 모르시는군요?"
라고 의문형으로 단정을 내리면서,
"사주팔자를 믿긴 하시오?"
라고 말을 바꾸어 물었다.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솔직한 나의 대답.
"그래요? 저는 솔직히 사주가 있다고 봅니다."
그의 서두는 단호하고 목소리는 격정을 담으며 떨렸다.
그리고 격정을 담아 떨리는 목소리가 묘한 설득력을 지속
하였다.
아, 이렇게 사람의 주목을 끌 수도 있구나, 나는 탄복하였다.
그는 사주팔자 당위론을 주장하며 실예로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여섯사람을 셋씩 두 그룹으로 나누어 묶어서
구체화하였다.
우선 먼저 든 그룹의 트리오는 현승일, 김중태, 김도현
제씨였으며,
또 한 그룹은 김영일, 박철언, 김기섭 제씨였다.
위의 여섯사람과 Q씨는 막역지교였고 나도 한두번 이상씩
이분들과 밥을 먹었던, 술을 마셨던, 하여간 세교가 있어서
우리 사이에 "사주 풀이"의 실제적 예를 들기로 한다면 이보다
더 적절할 수는 없었다.
이 여섯 사람들의 현 주소는 이미 세인들이 익히 아는 바이고
살아온 이력도 거의 공공연하다.
그러나 들은 바를 여기에 다 옮기기에는 이날 나의 경청 태도에
다소 문제가 있어서 기억이 소상치 않았고
어쨌거나 여섯 사람들의 사생활 보호권이라는 미묘한 문제도
따른다.
이럴 경우 미주알 고주알 까발리기 보다는
우선 세인들에게 알려진 부분만을 축으로 하여
사주팔자 원리로 검증해 보는 것도 피차간 좋을듯 하다.
"6/3 사태"의 주역이었던 첫번째 세 사람은 모두 군사법정에서
사형을 언도 받았다.
이후 특별사면에 이은 우여곡절은 상당부분 우리 대중의 몫이
되었고,
마침내 그 중의 한 분은 대학 총장을 거쳐 현역의원이 되었다.
그 이전에 이미 또 한사람은 양식있는 정치인으로 현실에 참여해
왔는데,
그러나 이 해맑은 귀공자 타입의 저항 정치인은 한번의 차관과
정부 주도 기관의 짧은 보스 역할을 끝으로 의원 출마에서는
번번히 낙방하며 언제부터인가 지성적 야인 거사 노릇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셋중 가장 언변도 좋고 역동적이며 Q씨의 말에 의하면
"체 게바라"를 연상 시키는 마지막 한분은,
미국으로 가서 "리커 스토어"로 생계를 유지할 때에도
수많은 우국지사들을 주위에 모으는 열혈남아였으나
일종의 금의환향 비슷한 귀국을 해서는
종교에 심취한 조강지처와의 이혼과 현실 세계와의
불협화음으로 아직도 독거생활에 만족하고 있다고 한다.
아니 독거생활도 제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다.
작년 어느 때이던가 이 양반이 남도 자락의 대흥사 뒤쪽
암자에서 책읽고 저술하며 독거하는데,
큰 산불이 나서 불속에 갇혔다고 한다.
그의 산불 탈출은 극적이어서 옷가지 등으로 몸과 얼굴을
휘감고 불속을 뛰고 계곡을 점프하여 구사일생했으나
옷가지가 불에 타는 바람에 심한 화상을 입고 석달간
병원에서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지금은 퇴원을 했는데 천만 다행으로 얼굴은 상하지 않았다.
세사람 모두 뛰어났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빼어났다고
Q씨가 보는 이 사람은 환갑이 넘어서도 아직도 불 속에
갇히는 딱한 생애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암자도 타버렸나요?"
옆에있던 어떤 사람이 아깝다는 듯이 물었다.
"모르긴해도 타버렸겠지요. 움직이는 사람이 견디지
못했는데---"
Q씨의 답변.
"책도 모두 탔겠네요."
따라와서 함께 밥을 먹은 어떤 대학생 타입의 젊은이가
시의적절한 반응을 보였다.
"그 불판에 책이 뭐요!" 누군가 핀잔을 주었다.
그 불판에 책이 뭐겠는가 만은 "세상아, 잘있거라 나는 간다"
하고 책 한 배낭 메고 산사로 떠난 사람에게 불벼락은 너무
심한 운명의 날벼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로 엮어진 트리오, 삼총사도 사주팔자의 설명으로는
설득력이 있는 사례였다.
같은 고향, 같은 나이에 한국 최고의 대학엘 거의 함께
들어가서 고시의 관문을 뚫은 다음, 한때 모두 청와대의 특보와
안기부의 중핵 자리에 앉아서, 나는 새도 떨어뜨린 정도가
아니라,
새들도 모두 아침마다 문안을 들이러 왔다던가---.
"지금은 내가 5선인데도 전화에서 콜 백 안해주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지만---"
예전 청와대 특보 할 때에는 이쪽의 전화가 닿지 않으면 나중에
당사자가 즉시 "콜 백"하는 정도가 아니라 당장 "몸 백"으로
찾아와서 대령했단다.
나머지 두 사람도 모두 예전의 상태는 비슷하였다.
하여간 세사람이 모두 권력의 중핵에 있다가 가장 잘 나가던
세칭 황태자와 안기부 핵심 자리의 사람이 각각 영어(囹圄)의
몸이 된 장면은 영상 매체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미 이미지화
되어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 하게도 세사람 중에서 가장 비정치적인
캐릭터를 갖고 있는 한 사람만이 탈없이 5선 관록의 국회의원이
되어서,
가장 중요한 상임뮈원장 자리까지 굳건히 지키고 있지않은가---.
국회의원의 관록은 언필칭 선수(選數)인데 그는 벌써 5선이다.
이 양반이 스피치가 서툴러서 웅변 개인 강습을 받았다는 사실은
의원회관에선 하나의 전설이다.
능력이 빼어난 이 세 사람이 각자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것은
불문가지일 것이다.
언론에 포장이 잘못되어 셋중에는 과장과 거품으로 왜곡된
인간형도 생겼으나 사실은 특별히 돈키호테도 없었고,
삼총사의 달따냥같은 신화적 인물도 또한 따로 없었다고
Q씨는 힘주어 말했다.
그럼 이들의 운명을 가른 변수는 무엇이었을까.
Q씨에 따르면 그 변곡점에 바로 "사주 팔자"가 에헴하며
기침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사주팔자를 믿는다는 말씀이군요?"
내가 물어보았다.
"믿다마다요. 사실 아까 그 5선 의원은 저와 존이종 관계인데
내가 모든 면에서 유리하였으나 K중학교 입학 실패부터 시작하여
항상 그 양반을 못따라갔어요. 팔자라는 말 밖에 달리 설명이
불가능해요."
"이 분 어른이 엄청난 부자이셨고 이 양반도 항상 반에서는
일등을 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는 학운도 따르지 않았어요.
결국은 S대를 들어갔지만요. 인간적 결함이나 큰 바람을 피운 적도
없고 투기나 투전을 한 일도 없는데 그 5선 의원보다는 항상
한 수 아래라는 것이죠."
함께 왔던 그 분 친구가 덧붙였다.
"아이구, 한 수 아래가 아니라 바둑으로 치면 열 수 아래네요."
그가 펄쩍 뛰며 이제는 친근해진 그 강조법을 사용하였다.
"사주팔자를 미신이라고 여기지는 않지만 너무 그렇게 자성예언처럼
하고보면 될일도 안되거나 무슨 일을 도모하기도 힘들잖아요.
선생님은 이미 인생의 패자라는 사주팔자 운명론 속에 자신을 묻어
버렸으니까요---. 지금이라도 그거 털어버리시지요."
그 분의 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은 말 값은 해야될 것 같아서
내가 위로사 비슷한 말로 그를 좀 나무래자 그가 펄쩍 뛰었다.
"난 사주팔자 신봉자이자 예찬론자 입니다!"
"---?"
"제 외손주가 최고의 사주팔자를 타고 얼마전에 태어 났어요. 얼마
전이라면 말띠 겨우 면했겠다고 하시겠지만 이 사주는 운명철학계
에서는 정말 알아주는 출생일이랍니다.
모두 이론(異論)이 없는 최고 사주라고 하지요."
"---?"
나는 계속 입을 다물었다.
마음에 집히는 이런저런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건 기우였다.
"하하, 갑자기 입을 다무시는걸 보니 근심이 생기셨군요.
제왕절개 수술이나 출산 촉진제를 쓰지 않았느냐구요?
천만에요. 무통분만 과정에서 조금 시차는 났겠지만 거의
천시(天時)였지요."
거의 천시라---.
요즈음 천시는 제왕절개 수술에도 적용된다고 누가 옆에서
덕담을하였다.
나도 이제 걱정없이 얼른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페이퍼 컵에 셀프 커피를 모두 채우고 건배 제의를 하였다.
"손주의 빛나는 사주팔자를 위하여!"
내가 선창하였다.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모두 세번을 소리쳐 화답하였다.
누가 "사관학교 식 건배로군" 하며 알은체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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