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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40년만의 외출

원평재 2011. 2. 18. 02:19

 

첫사랑과의 40년만의 해후에 실패한 얼마 후에 내 친구는 다시 
부산의 그 긴가민가하는 전화번호로 연락을 취했다고 합니다. 
전화 번호를 알게된 데에는 또 다른 친구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는 
내용은 아래쪽 글에서 이미 밝힌 바가 있지요. 
전화 속의 남자 목소리에 지난번에는 주눅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그럴 경우 어쩌면 아들일는지도 모른다는 배짱 내지 분별력도 
생겼고---. 
우리 나이가 얼마입니까---. 
마침내 재 시도, 역시 남자 목소리, 어머니 바꿔다오, 
전화가 여자의 목소리로 바뀌면서, 
"누구심니꺼?" 
"나, 40년전의 아무개요? 기억 나시오?" 
"아이구, 오랬만이네. 가만있자---, 그때 40년전에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고 사라지더니 이제 연락한걸 보니 마누라가 죽었거나 정수기 팔아
먹을려고 하는거지?" 
과연 사랑스러운, 그리고 자랑스러운 여인상이었군요. 
만년을 풍파없이 조용히 지내고 있는 내 친구의 가슴에 물결이 
일렁이었지요. 
물론 사건같은 것이 발붙일 풍경화는 아니구요. 
부산 광안리의 언덕배기인가에 있다는 전망대 카페에서 
해후는 이루어졌고 서로의 주름살 깊이 패인 얼굴 저너머에서 
총각, 처녀적을 되살려내는 것도 눈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졌고---. 
실망이니 연민이니 하는 것도 다 삼류 감정이고, 
이 사람들은 40년전에 남자가 왜 도망갔느냐는 화두로 갑론을박하며 
전망대 밖의 바다 절경을 감상했다는군요. 
"그래 왜 그때 그만두고 내뺐어?" 
내가 물었지요. 
그가 그 질문에는 서면 답변하겠다고 능청을 떨며 좀 난감해 하더니,
"사실은 이미 유명을 달리한 아무개하고 그녀를 서로 다투는 입장이었
는데, 천신만고로 그녀의 마음을 돌려놓고나니 그 순간부터 맥이 
빠지더군. 그 친구로부터 좀 기분나쁜 소리도 들었고---." 
그런 솔직한 답변이 나왔어요.
요즘 유행하기 시작한 저녁 7시 결혼식의 피로연회장도 서서히 
문을 닫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지요. 
천신만고 끝에 40년만의 해후를 이룩한 내 친구가 다시 그 일로 
부산 가는 일은 없을듯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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