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북 리뷰, 문단 이야기

(장편) 고독한 자의 행로 심사평 및 줄거리

원평재 2011. 2. 18. 04:17

단편 중심의 등단 절차에 익숙해 있는 우리나라 문단의 관행상, 신인 소설 작가의 다양한

면모를 파악해 볼 수 있는 장편으로 등단을 하는 경우는 오히려 희소하다.

외국에서는 출판사에 아예 상설로 리뷰어와 위원회를 두고서 좋은 작품, 특히 장편소설

작품을 수시로 접수하고 평가하여 출판을 하는 과정이 보편적이다.

이번에 역사 깊은 계간지, "문학과 의식"에서 역량이 엿보이는 신인 작가를 발굴, 등단시키고

그의 장편 작품을 단행본으로 출간하게 된 것은 신예작가 본인의 영광은 물론이려니와,

전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출판계와 문단 전체에도 좋은 본보기가 되리라고

자부한다.

작품 소개는 단행본이 곧 출간되기에 여기에서는 그 개요의 일부만 소개하여 작가의 역량을

품평하고 심사위원들의 의견을 모아서 심사평을 달기로 한다.

줄거리 요약도 작가의 역량을 달아보는 의미에서 고치거나 압축하지 않고 원문 그대로의

글을 이야기의 줄기에 맞게 생략된 부분만 설명하면서 이어가는 형식을 취한다.

그러니까 다이제스트 판 형식과는 다른 방식이라고 할 수 있고 서구는 물론 가까운 일본의

유명 S출판사, 국내 굴지의 영어 전문 S사 등에서 대역 본을 만들 때에 원문을 살리는

방향으로 이미 시도하여 좋은 반응을 받은 바가 있다.

 

장편 소설 <고독한 자의 행로>는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킬러에 관한 이야기이다.

스릴과 서스펜스에 가득한 출발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문학적 함의에 대한 분석은 나중에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킨다.

미국과 한국의 이중 국적자인 전문 킬러이자 저격수는 미국 정부 산하 특수조직의 직속

상관으로부터 북한의 국방장관을 살해하라는 밀령을 받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중략>

 

목표물을 향하여 확인 사살의 방아쇠까지 당긴 이제 킬러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고 할 수

있다.

동작주(agent)의 행동결과가 대상물(object)에 영향을 주었으면 이야기는 일단 종결

부분으로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말하자면 대단원의 막을 내릴 순서(denoument)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고독한 자의 행로>에서의 이야기 진도는 이제 겨우 전체의 절반을 넘었을

뿐이다.

물리적인 셈법으로 보아도 전체가 7장으로 되어있는데 킬러의 저격 성공 장면은 4장의

중간 정도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이야기는 아직 반이나 남아있는 데 말이다. 이와 비슷한 구조가 단편 소설이지만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The Killers"이다.

올 앤더슨이라는 대상을 죽이러 온 두 명의 킬러는 그날따라 정해진 식당에 매일 저녁

6시면 나오던 저격대상이 그날따라 나오지 않자 묶어두었던 식당 종업원 세 명을

풀어주며 철수하고 만다. 이들 젊은 식당 종업원들은 끔찍한 사건이 자기네 식당에서

일어나지 않은 "행운"에 만족하고 다시는 그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말자고 한다.

그러나 "닉" 만은 그런 자세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앤더슨이 기숙하고 있는

집으로 찾아간다. 위험을 늦게나마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앤더슨은 그런 상황을 미리 알고서도 "벽을 대면하고" 꼼짝 없이

누워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죽음에 노출되어있는 자신의 상황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이려는 나약한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소년 닉은 그런 인간의 자세에서 많은 충격을 받는다.

죽음을 대책 없이 받아들이는 자세라든지 홀로 고독하게 면벽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은 협의이든 광의이든 인간소외의 모습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고독한 자의 행로>에도 인간의 소외와 고독의 모습이 표출된다.

제목 자체에 "고독"이라는 어휘가 나오는 것은 메시지가 너무 설명적이라는 면에서는

"덜 문학적", 극단적으로는 "비문학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만도 하다.

그러나 "스릴과 서스펜스"의 미학을 이미 전제하고 시작된 다소 "대중적" 내용으로

상위 개념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전략을 채택한 바에야 제목이 감내해야할 다소

억울한 수준의식 같은 것도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 시대의 문학(contemporary literature)"에서 거대담론과 대중 문학을

이분법적으로, 다시 말해서 대립이항으로 구별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미국의 대표적 서점으로 일컫는 "반즈 앤 노블"에 들어가면 이제는 순수문학이니

대중 문학이니 하는 구분이 사라진지 오래이다.

팬터지, 뉴 팬터지, 로맨스, 뉴 로맨스라는 이름의 분류항 속에 찬란하게 빛나는

수많은 저술들이 그리스 로마의 고전이나 우리시대의 고전과 나란히 눈높이를

자랑하고 있다.

포스트 모던한 시대상에 맞추어 정전과 주변부 문학이 따로 없이 모두 해체의

자유로움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댄 브라운이나 조앤 롤링, 존 그리샴, 다양한 메디컬 소설들, 우리나라의 김진명과

그 유파들이 써낸 다양한 팩션 소설들이 모두 이러한 흐름과 연계가 되어있다 할

것이다.

한편 이러한 작품들의 특징은 특수한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놀라울 정도라는

것이다.

<고독한 자의 행로>를 쓴 제임스 클락이 보여준 킬러 세계및 지리상의 인문, 자연적

지식은 어지간한 전문가의 뺨을 칠만한 수준이라고 해도 과찬은 아니리라.

최근 소설의 트렌드가 이토록 전문화 되고 있는 현상을 두고서 오죽하면 소설이

쓰여졌다기 보다 제작되었다는 표현이 나오고 소위 "글 공장", "소설 공장"의 존재가

존재 유무에 관한 논란 단계는 이미 지났고 존재의 윤리성에 대하여 시비가 붙을까---.

 

제임스 클락은 인간 소외의 문제제기에 관한 은밀한 전략 구사에도 능숙함을 보이고

있다.

세븐틴 마일즈 도로상에서 히치하이킹으로 만난 한국 처녀와의 조우라던가 그중에서도

산타크루즈에서 식사를 하게되는 영희를 통하여 그녀가 어학 연수를 온 이유는 멋진

해안에서 자살을 하려는 것이었다는 인간 소외 의식의 발로 장면이 또한 그러하다.

이런 작품구성이 너무나 눈에 띄는 전략의 구사에 다름아닌지 치밀한 작가 정신인지는

독자 반응 비평에 맡겨보고 싶다.

 

이제 작가로서 입신하려는 제임스 클락에게 끝으로 주문하고 싶은 필수 요소가 있다.

꼼꼼하게 쓴 매우 재미있고 잘 짜여 진 소설 작품이 그만큼 높은 수준의 노력을 기우린

점에 비해서는 사상과 철학과 휴먼한 정서가 다소 미흡함을 느낀다.

물론 그리스 로마의 신화 이래 사람 사는 방정식이 제신의 거동에서 한 치도 더 나아갈

수가 없는 것 아니냐는 반론을 제기한다면, 이 작가가 이번에 공을 들여서 쌓은 작품의

품질에서 한걸음도 더 나아가는 모습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제신의 사유와 행적을 훌쩍 뛰어넘어 새로운 경지를 가꿀 작가가 도래하였다는 기대를

품어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