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보고다닌 투어

아, 아드리아 해의 두브로브니크 (크로아티아)

원평재 2012. 9. 16. 08:03

 

유네스코 인류의 문화유산 두브로브니크가 국내 관광객들에게도 크게 어필하고 있다.

예로부터 풍광이 이름 났지만 발칸 내전이 끝나니 다시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다.

 

모스타르를 떠나서 크로아티아의 아름다운 성채 도시, 두브로브니크로 가려면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영토를 다시한번 들어갔다 나와야했다.

아드리아해로 나가는 보스니아의 회랑지역이 가로놓여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크로아티아가 내전 때에 보스니아에 필사적 공격을 퍼붓고 많은 피해를 준 모양이다.

하지만 결국 회랑을 내주고 말았다. 나누어 갖는 지혜를 미리 터득하기란 어려웠으리라.

국경을 두번 들락거려 다시 들어간 크로아티아 공화국,

‘프라뇨 투지만 (Franjo Tudjman)’ 사장교가 보인다.

 

 

크로아티아의 초대 대통령 ‘프라뇨 투지만 (Franjo Tudjman)’의 이름을 가진 높고 거대한 사장교,

크루즈 선이 들어와 있다.

 

 

아름다우면서도 위용이 돋보이는 두브로브니크 성채 도시는 조금 더 지나서야 시야에 들어온다.

우선 크로아티아 공화국부터 따져보면, 면적 56,500㎢, 인구는 450만 정도이며, 수도는 자그레브이다.

역사상 1242년 타타르족의 침략으로 크로아티아는 황폐화 되었고, 1867∼1918년까지 헝가리의 지배를 받았다.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이 낯설지 않다).
1918∼1990년까지 유고슬라비아의 일원이었으며, 1991년 6월 25일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여

세르비아와 전쟁을 치루고 1995년 12월 평화협정으로 내전은 끝난다.

크로아티아는 현지음으로 ‘흐르바츠카’라고---.

 

보스니아가 차지하고 있는 아드리아 회랑은 Neum이라는 지역인데

영어로는 New라는 뜻---.

 


두브로브니크는 원래 도시국가였다.

역사 상, 서기 614년 슬라브족의 폴랜드 침입으로 그 지역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이곳으로 이주

했다는 기록으로 나타난다.
7세기 때 이 도시는 '라구사 공화국'이 되었으며, 베네치아와 경쟁한 아드리아 해안 유일의 해상무역

도시국가였다.
9세기부터 발칸과 이탈리아의 무역 중심지로 막강한 부를 축적했으며, 11∼13세기에는 금, 은의
수출항으로 번영하였고, 십자군 전쟁 뒤 베네치아 군주 아래(1205~1358년) 있었다.
이후 헝가리-크로아티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으며, 이때 도시는 요새화되었고, 15∼16세기에 무역의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1667년 큰 지진으로 도시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다가 나폴레옹 전쟁 때 다시 옛날의 번영을

누렸다.
1815년 빈 의회에서 오스트리아 제국(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에 합병되었다가 1918년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왕국에 편입되었다.
1945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일부가 되었으며, 1991년 10월 유고연방으로부터 독립 할 때 세르비아가
3개월 간 공격하여 도시의 30%가 파괴되었다.

1994년 구시가지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으며, 1999년부터 역사적인 건물들이 복원되고 있다.

7월 10일부터 8월 25일까지 열리는 여름 축제도 다시 개최되어 지중해의 '코스타 델 솔(Costa del Sol)'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스페인과 남미 해안을 달리며 즐겨보았던 저 '태양의 해안' 풍경이다.

요새로 들어가는 성문과 수호성인

 

 

현재 사용되고 있는 필레 성문은 해자 위에 놓여 있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1667년 대지진 후 재건된 문루에는 이 시의 수호성인 '성 블라호' 상이 있다.
이 성문을 열고 닫은 사람은 이 도시 최고 권력자인 렉터였다.

 

 

플라차(Placa Stradun) 거리


작은 운하를 사이에 두고 육지에는 오크나무의 작은 숲이 있던 곳에 크로아티아인들이

마을을 형성하였는데 이 ‘오크나무 작은 숲’이 크로아티아어로 ‘두브라바(dubrava)’라고---.
두브(dub, 오크 나무) 라바(rava, 숲)가 두브로브니크 도시의 어원이 되었으며,

10∼11 세기경 두 마을 사이에 있었던 운하를 메운 것이 지금의 약 280미터 플라차 거리이다.

 

 

시계탑, 종탑


'성 블레즈 광장'에 1444년 건설되었으나 파괴되어 1928년 다시 건설되었는데

종탑은 높이가 35m이고, 종은 건설당시의 것으로 무게는 2톤.
종탑 아래에 있는 시계탑은 요한 바오르 2세가 다녀 간 것을 기념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시계탑 옆에 있는 입구로 나가면 배를 타는 선착장이 나온다.

 

 


 

 

지중해 문화와 아랍 문화에서 반드시 보이는 중앙 광장의 분수 풍경에 다시 접한다.

오노플리안 분수

 

 

이탈리아 나폴리의 건축가 오노플리오의 이름에서 나왔는데

그는 1438년, 20km 밖으로부터 수로를 통해 물을 끌어와서 온 시민이 사용할 수 있도록

예술성 높은 둥근 돔형의 물탱크와 분수를 만들었다.

 

 

스폰자 궁

 

이 궁전은 왕이 살던 곳이 아니며, 당시 모든 상인들이 드나들던 무역거래를 하던 장소로

세관과 14세기 화폐를 주조하던 조폐국 등, 모든 상업센터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현지 가이드 아가씨

오를란도, Orlando의 기둥 (왼쪽)

 

 

1418년 건립된 이 기둥 앞의 사람은 드브로브닉의 평화와 독립의 상징인

중세기의 유명한 기사.

프랑스어로 룰랑이며, 이탈리아어로 오를란도인데 오페라 ‘룰랑의 노래’(Chanson de Roland)의 주인공.
그가 들고 있는 검은 칼이 트로이의 장군 헥토르가 사용하던 전설의 검 ‘듀랜달’.

현재 오를란도의 기둥 꼭대기는 국기게양대로 쓰이고 있다.


성 블라시우스 교회(St. Blasius Church)


두브로브니크의 도시의 정신적 지주인 수호성인 블라호((Vlaho)를 모신 교회이다.
블라호는 크로아티아 어이고, 블라시우스는 라틴어

7세기경 건립

 

 

렉터(Rector) 궁전


렉터는 이 도시를 통치했던 ‘최고 통치자’의 뜻으로 1435년 분수를 만들었던 오노플리오가 건축한 후
여러 번 개보수를 한 고딕-르네상스 양식의 건물.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병사의 얼굴이 있는 육군과 해군 합참의 직무실도 있고,

가장 중요한 성단이 있는 주교자 성당도 있으며, 귀족, 상인, 평민을 위한 홀도 있다.
귀족은 18세 이상이 되면 원로원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다.

권력의 독점 폐해를 막기 위해 40세 이상의 귀족 중에 12명의 렉터를 뽑아

한달씩 돌아가며 통치를 했다.
한 달 동안은 가족과 격리되어 이곳을 나갈 수도 없었다.


음악 홀에 있는 모차르트 시대의 피아노인데 건반의 색깔이 지금과 반대로
일반건반은 검은 색이고, 반음건반은 흰색이었다.

재미있는 형상이었으나 실내라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현재는 박물관인데 내정은 여름 축제 때 공연 장소로 사용된다고.

 

지하 감옥

 

 

 

궁전에서 선착장으로 가는 문 앞에 배의 앞머리 모양 데스크가 있다.

예전에는 선원증의 검사, 세관 업무 등 매우 종요한 포스트였다.

 

 

 

이제 아드리아해 유람선을 타러 성 밖으로 나왔다.

 

 

 

 

이날도 크루즈 선이 몇척 들어와 있다.

 

두브로브니크가 해안 무역 도시이자 철옹성임을 금방 알수 있었다.

 

 

 

 

 

 

 

 

 

 

 

 

 

 

 

 

 

 

 

 

 

 

두브로브니크 성채 지붕위 올레길로 올라간다.

 

 

 

 

 

 

 

 

 

 

 

 

 

 

 

 

 

 

 

 

 

 

 

 

 

성채 중간에 민체타 요새가 있다. 카메라 우먼 오른쪽으로 큰 바위 하나를 뚫어서 만들었다던가---.

 

 

 

아까 광장에서 본 분수대와 다른 또하나의 분수 시설과 그 주변

 

오디오 설명 헤드세트를 빌리거나 반납하는 곳, 우리말을 비롯하여 동양 3국은 없었지만

곧 나오리라~~~.

백조를 길에서 만났다.

바쁜 걸음걸이라서 말은 붙이지 못했다.

 

 

두브로브니크를 떠나서 비포장도로를 따라 스플릿, 트로기르, 플리트비체를 찾아나선다.

사이프레스가 울창하게 자라는 풍경이 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르를 생각케한다.

스플릿까지 네시간, 플리트비체까지 다시 네시간이 걸리는 여정이다.

 

 



Franz Liszt(1811 - 1886)-
Hungarian Rhapsody(헝가리 광시곡)No. 2 C# Minor / 관현악 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