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서 사진을 많이 남기면 자식들에게 부담만 된다고 극구 사양하는 분들을 본다.
지혜로운 말씀으로 공감이 간다.
그런데 카메라를 들고 설치는 "진사"의 입장으로 보면 사실 자신을 피사체로 남길 일이 별로 없다.
타인의 사진만 주로 찍어주게되고 근경과 원경으로 촛점을 맞추다보면 정작 자신의 사진은 하루 행사에
한두 컷 남기기도 힘들다.
보라, 스틸 사진이 맹위를 떨치던 라이프 잡지 시대의 거장 로버트 카파가 전장의 스러지는 병사들의 비참,
처절한 얼굴은 수도 없이 남겼지만 자작의 자화상은 어디 변변히 남긴게 있기나한지....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자신의 인물이 들어간 사진 남기기에 있는게 아니라 마침내 찍어낸
각각의 영상에 깊이 묻어있는 당사자의 체취와 버릇, 잊을 수 없는 습관의 입사각, 예각, 둔각,
총체적으로 이름하여 부르는 "화각", 보이지 않는 환호와 절규와 탄식이 배고밴 "만고의 화상"들을
남겨놓고 이 지상을 떠난 후 그 후손들이 겪을지도 모를 마음고생에 관한 것이리라.
더구나 나처럼 생활 터전조차 계절따라 이리저리 옮겨살며 지내는 신 유목민의 생활 족적들에
이르르면, 농경민 습관으로 한 곳만의 생활터전을 고수하는 주위 친구들의 시선이 따갑다.
물론 나라고 그런 입장을 고민해 보지 않은건 결코 아니다.
아니 몇가지 작정을 해 두고 살아간다.
우선 사진 관련의 입장을 정리해보자,
내 친구 한사람은 사진술이 거의 어떤 경지에 도달하고 있다. 그의 부인 역시 이에 못지 않다.
하지만 그 내외는 나중에라도 결코 사진전 같은건 열지도 말고, 참여도 하지 말자, 오로지 인터넷
사진 발표만으로 즐거움의 최대치를 확보하자.... 그런 맹약을 전제로 사진에 몰두하였다고 한다.
그럼 시시각각으로 추수하는 저 수많은 명작들은 나중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분들이라고 애착이 없을까, 자신의 작품들을 외장하드로 정리하고 있다는 정도는 들어알고 있다.
그러나 그게 후손들에게 큰 부담을 주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사실 전자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수십만장에 이르는 작품 사진도 그저 큰 케이스 하나 정도로 정리가
되는것으로 알고 있다. 막말로 그 케이스 하나 적당히 처리하면 되지 않겠는가. 예전 아날로그 시대의
사진처럼 누렇게 변색이 되어 수십권의 앨범을 장식하고 있는 고통스런 유품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인터넷에 발표된 작품들이야 클라우드에 올라가 있으니 문자 그대로 구름이 되어 떠다니다가
때로 단비처럼 보는이들에게 기쁨을 준 다음 마침내는 우주 공간으로 소멸되어 버릴 것이다.
포털 사이트의 운영진들도 세월의 흐름 따라 인터넷 제1세대의 종언을 예측하면서 디지틀
기록 자료의 폐기와 존엄사를 논의하고 있다는 소식에도 접한다.
내 경우는 이분들 부부처럼 외장 하드에 정리하는 단계도 거의 생략하는 수준이다. 작품, 혹은 리포팅
화면을 찍으면 일단 인터넷에 올린 후, 모든 자료는 버린다.
클라우드에 올라간 내 자료들은 자연사 박물관의 시간 기준으로 보면 찰나에 불과한 기간동안 지상을
떠돌다가 조만간 소멸될 것이다. 혹시 천재일우의 기회로 후세인들이 필요를 인정한 자료가 있다면
마치 로제타 스톤같은 대접을 받을 수도 있으렸다. 내 소박한 꿈과 무가치한 허영이 타인에게 폐가 되지
않는 전제라면 무슨 꿈을 꾸지 못하랴,
이제 생활 유품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사는 자리를 옮겨다니다 보니 일상 생활의 필수품들이 전 세계적으로(이건 좀 과장된 표현이지만) 산재하게
된다. 크게 사치를 즐기지 않는 입장에서 이런 필수품을 똑같이 여기저기 서너벌씩 마련해 두는 데에는 큰
부담이 없으나 이런 품목들 역시 유물이 되어 어느 때인가 따따블로 자식들에게 폐가 되지는 않을까?
다행히 몇군데 국내외로 옮겨다니는 곳에는 내 권리를 주장할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니 살아생전에야 눈치 볼
이유는 없다.
하여간 그건 그렇고 이런 저런 사찰을 사진을 찍느라 다니다보면 때때로 천도제를 지내며 고인의 유품을
태우는 의식을 본다. 그 절차와 과정은 오랜 전통적 의식, 거기 걸맞는 경전의 음유 속에서 슬픔과 그리움의
간절한 마음을 녹여내기도 하고, 또 많은 경우 참을 수 없는 안도의 미소 감추기와 중첩되는 장면들도
적지아니 발견한다. 진사의 눈치란 그렇다.
파파라치라는 말이 거져 나온건 아니다.
그런데 그 소각의 번거로움이 무거운 짐이 되어 후대를 괴롭혀서야 되겠는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불가에서도 이런 소유물(belongings)을 태우기 보다 지상에서의 재생의 업으로
남기는 경전도 찾아보면 있지 않을까.
리사이클링이 생활화된 서구의 경우, 쓰다남은 유품들은 깨끗이 세탁이 되어서 교회나 심지어
개스 스테이션 같은데에서도 수집함이 시스템화 되어있는 모양을 본다.
요즈음은 우리나라도 아파트 단지마다, 그리고 생활 센터마다 그런 장치가 되어있지 않은가.
표현이 좀 가벼운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하면 선대와 후대가 평소 윈윈 게임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한꺼번에 슬픔을 모아 태우기 보다 평소에 일구는 보시와 윤회의 실천적 모습이 아니겠는가~.
후대에게도 부담이 되지 않고.
사진 찍기는 이제 모름지기 오천만의 기호가 되어가고 디지틀 카메라는 오천만의 기호품이 되기 시작
하였다. 적당한 무게의 카메라 중량은 산책길에 들고 나가던 "아령"을 대치하여 국민 보건 체조화 되고있고,
나처럼 카메라 교범을 무시하여 그 방면 무식한채로 지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오늘날 사진찍기 교범은 마치
국민 보건 체조 교범처럼 실천이 된다.
바람직 하기로는 사진을 잘 찍는 방법 설명은 물론이려니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이두박근" "삼두박근"
"할배근"을 아울러 단련시키는 방법도 거기 첨언 되었으면 좋겠다.
이번 초여름에 뉴저지의 아들네에 들렀더니 내 서재에 문예지 <미래시학>의 지난해 겨울호가 와있어서
반가웠다. 내 졸시도 두편이 들어있다.
또 피츠버그의 딸네에 이르니 미리 알려둔대로 여름호도 내 졸시 두편을 담고 내 방에 먼저 와서 반긴다.
여름호는 시의적절하게 도착하였기에 별일은 아닌데, 지난 겨울호가 여름에 손에 들어온건 기이감이랄까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미래가 과거에서 낮잠을 잔 셈인가.
우리에게 시제란 무엇일까
어떤 언어에는 실재한 시간, 즉 과거와 현재 시제만 있고 미래시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과거 시제도 오래된 과거와 방금 우리의 손을 막 떠난 현재와 다름없는 과거가 있다는 현실을
반영하여 "완전 과거"와 "반 과거"를 구분하는 큰 언어권도 존재한다.
미래는 시제라기 보다 희망과 꿈을 나타내는 철학적 사유의 산물로 치는 언어계통도 있다.
멀리서 인터넷 신문을 보면 고국의 미래는 너무나 과거에 매몰되어있지 않은가 싶다.
나처럼 과거는 길게 흘러갔고 미래는 짧게 남은 세대들도 미래를 희망으로 관조하고 지향하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현재의 가치만 붙드는 "수구꼴통"으로 비아냥을 받고, 반대로 미래가 정말 구만리같은
젊은 세대들은 과거에 매몰되어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여름 방학중 큰 손녀가 다니는 아트 센터에서 수료식을 가졌다.
창의력이니 재능 개발이니, 그런건 잘 모르겠고 조손간에 함께 섰다는 기분만~.
피츠버그 대학, 핏대 정문
|
|
|
Blue Bells Of Scotland Romance(Weber) 크리스티안 린드베리(Christian Lindberg) '겨울'을 트롬본으로 연주해내는 놀라운 비르투오시티뿐만 아니라 독특한 무대 매너로 청중을 사로잡는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가 트롬본의 ‘파가니니’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투표에서 20세기 최고의 관악기 연주자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된 바 있는, 크리스티안 린드베리(Christian Lindberg)는 20~21세기를 대표하는 트롬본 연주자 중 한 사람으로서, 바로크, 고전, 낭만, 현대 음악을 두루 섭렵하는 폭 넓은 레퍼토리는 물론(이미 80곡 이상의 협주곡을 세계 초연한 바 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비르투오시티, 청중을 사로잡는 카리스마와 독특한 무대 매너로 인류 역사상 최고의 '브라스 엔터테이너(Brass Entertainer)'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58년, 스웨덴의 예술가 가정에서 태어난 린드베리는 17세 때 트롬본을 연주하기 시작한 이후로, 레너드 슬래트킨, 사카리 오라모 등 세계적인 지휘자뿐만 아니라, 로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필하모니아,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 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등 연간 100회 이상의 연주회 일정을 소화하는 동시에, 스웨덴의 음반 레이블인 BIS와 린드베리 시리즈를 녹음해오고 있다. |
'에세이, 포토 에세이, 포엠 플러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오는 날의 흐린 스케치와 뉴스 (0) | 2013.07.08 |
---|---|
불꽃놀이 (0) | 2013.07.06 |
나미나라 / 남의 나라 / 우리나라 / 풍경 모음 (0) | 2013.06.10 |
두 도시 이야기 (0) | 2013.06.07 |
북녘이 지척인데 (떠나기 전날 평화 전망대에 올랐다) (0) | 2013.0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