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트리와 캐럴로 서두를 장식합니다.
미세먼지, 혹은 초 미세먼지의 날들입니다.
캐럴 송이 사치스럽군요.
한남대교를 건너는데 미세 먼지가 멀리 남산을 가로막았습니다. 멀쩡한 하이야트 호텔도 오리무중입니다. 시내 35층 홀에서 본 도심의 미세먼지 풍경 며칠전 맑았던 날의 조망 아래 위가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밤은 위대하여서 미세먼지를 모두 빨아들이고~~~
멀리서 보내온 크리스마스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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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초단편 소설 형식이 유행이랄까 주목을 받습니다.
원래 초단편 영상-영화(extreme-short image & film)에서 유래하였달까,
미세 먼지 시대에 30매 내외의 미세한 이야기가 새로 각광을 받습니다.
혼욕
시고꾸(四國)에 있는 "다카마스(高松)"에는 잘 알려진 데로 "세토 대교(瀬戸 大橋)"가 있어서 그
운영은 평소 나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었다.
나는 서해 대교를 관리하는 회사의 중간 관리자로서 원래 그 다리를 짓는 일에도 참여하였다.
지금은 세토 대교가 십 여 년 먼저, 그리고 서해 대교가 나중에 모두 완성되어서 건설 공법
보다는 다리의 운영 체계가 나의 관심을 끌고 있다.
마침 삼일절 연휴가 다가와서 나는 현지 탐방의 목적이 뚜렷한 공식 출장으로, 그리고 아내는
자비로 하여 부부가 오랜만에 주마간산 격이나마 해외여행을 하기로 일정을 짰다.
우리 서해 대교는 건설에서부터 유지 보수까지 모두 내가 근무 하고 있는 한국 도로 공사에서
맡고 있다. 이 다리를 건설할 때 교각을 세우는 공사, 소위 우물 통 박는 일에서부터 나는
머리통을 박고 지내다가, 완공이 가까워지자 고속도로를 짓는 다른 데에로 전출이 되었는데,
요즈음은 유지 보수 때문에 다시 고향에 불려온 기분으로 대교 중간에 있는 행담도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세토 대교는 1988년에 완공 되었는데 공기는 한 10년이 걸렸으며 우리가 서해 대교를 짓는
데에 교과서적인 역할을 많이 하였다. 특히 바다 위에서 하는 난공사가 비슷하였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도 나는 세토대교로 몇 차례 견학을 갔었고 그래서 현장 수업도 많이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공된 모습과 유지 보수에 관한 견문도 넓힐 겸, 해외여행에 굶주린 아내에게
다카마스의 유명한 온천욕으로 다소나마 봉사하자는 못난 남편의 충정도 다분하였다.
마침 비용이 아주 싼 그룹 투어의 상품이 나와서 옹색한 월급쟁이에게 쾌재를 부르게 하였다.
다행히 내 공무 출장도 거기에 합산하고 영수증을 받을 수가 있었다.
내 생활을 고백하자면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시인을 꿈꾸던 허랑한 청년이었는데,
타락을 한 건지,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은 건지, 광고 업무와 인연이 되어서 한국 도로공사라는
든든한 국책회사에 특채가 되었으니 지금도 가끔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물론 아직도 꿈은 남아서 언젠가 때가 되면 이런저런 생활 속의 기록들, 예컨대 다리를 지었던
일과 끝없이 고속도로를 닦아나간 국가적 대역사 속의 개인사를 대 서사시, 감동적인 로망으로
승화시킬까 야망은 야무지지만, 현실은 서해 대교를 가르는 황해 바람보다도 더 매섭고
날카로웠다.
우리가 항공사에 단체로 짐을 부치고 가이드를 따라서 출국장으로 가는데 앞서가는 다른 단체
관광객들 속에 꽤 익숙한 여인의 뒤태가 보였다.
키가 크고 몸매가 좋은 그녀는 어떤 영감쟁이의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 해변 시인 학교에 여고
때부터 나오던, 그래 "나오미"였다. 내가 존경하던 시인이자 선배이며 당시에는 대학의 시간
강사인 어떤 시인을 무척 좋아했던 여학생이었다. 그 시인은 천년 된 신단수 같아서 세속이나
비키니 수영복에 끄떡도 없었고 정작 해변을 휘젓고 다닌 것은 우리 젊은 대학생들이었다.
그녀는 당시 대학에서 주최한 고교생 백일장에 단골 장원 급제자였고 대학 진학은 문학 쪽에
장학금을 풍족하게 주던 A 대학 쪽이었다. 우리는 다음해 신춘문예에서는 반드시 그녀의
이름을 보리라고 기대했으나, 여대생이 된 그녀는 문인들과의 설익은 염문만 뿌리더니 자취를
감추었다. 이제야 잊고 잃어버린 그녀를 기이한 장소에서 만난 꼴이었다.
비행장에서 내가 이런 식의 남녀 조우를 경함한 것은 이번으로 두 번째였다. 여러해 전에 미국
출장을 가는데 대학 다닐 때 연극 패에서 알았고 입술이 닳도록 키스 연습을 했던 후배 여자아이
가 남편과 함께 출국 심사대에 서 있는 게 아닌가. 나와 그녀는 눈도장을 은밀하게 찍고 비행기
화장실 입구에서 만났었다. "임마누엘 부인"이라는 성인영화에서 보면 비행기가 기우뚱 하도록
화장실에서 정사를 나누기도 하고, 요즈음 인터넷 글방에 나오는 어떤 재능 있는 젊은이가 쓰는
연재소설을 보면 유럽의 고속철 속에서도 후위를 감행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당시 우리는
시시한 안부만 나누었을 따름이었다. 하긴 이럴 때 여자가 좀 더 용감하긴 하였다,
그녀는 자기가 묵을 콘도미니엄 연락처를 알려 주었지만 나는 몸이 떨려서 아무런 시도도 하지
못했었다. 전화 한 통화도---.
후에 당시의 처신에 관하여 후회 비슷한 생각도 가졌지만 그건 다만 가정법의 수준이었다.
그런데 또 이런 기적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다니---.
비행기를 타고나자 내가 나오미를 화장실 입구에서 잡았다.
"나오미야, 어딜 가?"
"아이구, 형! 기적이네. 근데 여긴 모두 다카마스 온천욕 가는 우리나라 여행객들 아니던가요?"
"그건 그렇지만 나오미가 거긴 왜?"
"형은 왜?"
"야, 요즘은 형이 아니고 오빠라고 한다."
"우리 때에는 형이었잖아---"
나는 그녀와 비행기 화장실 입구에서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어째 비행기에서 조우한 여자와 나는 맨 날 화장실 입구가 대화의 장소가 되나---.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그녀는 나이 차이가 많은 부자와 "원조 결혼"을 했는데 흔한 청소년
소설에서처럼 남편은 중풍을 맞고 투병중이라고 짧게 신상 보고를 했다.
"농담을 써서 미안하지만 열녀 났구나."
"내가 모질지 못하잖아요. 이러구 살아요."
"내가 다카마스 온천에 가는 건 세토 대교 때문이야. 나오미는 왠일로?"
"거기 온천이 풍 맞은 사람에게 좋고 또 그 곳에 있는 흥법대사의 젠쯔지 절에 시주를 하면
중풍에 효과가 있다나요---."
"한국 사람이 무슨 일본 절에---?"
"남편이 재일 교포라서---. 하지만 이 양반은 온천은 못할 거 같네요. 이젠 둔부에 욕창이 나기
시작했어요."
비행기는 다카마스 행 관광전세기였지만 우리는 각각 여행사가 달랐다.
한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비행시간이 눈치를 보며 대화를 나누는 두 중년 남녀에게는 아쉬움
이었다. 그러나 다카마스라는 시골 공항에서 호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두 사람을 조금 더
묶어 주면서 또 다른 인연이 속편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나오미 소속 쪽의 키 크고 씩씩한
여자 가이드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이렇게 외쳐대기 시작하였다.
"이곳에는 아직도 남녀 혼욕이 남아 있답니다. 다만 우리 호텔이 아니고 바로 옆에 있는
‘야치요 호텔’ 7층 옥상에 있는데 무료로 모든 팀이 함께 쓰는 유명한 곳입니다.
남녀 함께 이용 시간은 새벽입니다. 저녁에는 시간대 별로 남녀가 따로 들어가야 하지요.
하여간 그곳에 가실 때에는 속내의를 호텔 룸에 미리 다 벗어놓으시고 간편하게 유가타만 입고
가시는 겁니다. 호호호. 다만 탕에 들어가실 때에 너무 민망하면 거기에 걸려있는 원피스
비슷한 걸 걸쳐 입어도 좋으시겠지만 일본 사람들이 모두 벌거벗고 들어오는데, 궁색하게
보이지 마시고 한번 벗어보세요. 요즈음은 체험 관광 시대가 아닙니까."
그 쪽 부인네들은 물론이거니와 이쪽에서 그 소리를 듣던 부녀자들도 “으악”하고 내숭을
떨었으나 나와 나오미는 빛나는 눈동자를 은밀히 맞추었다.
호텔에 짐을 푼 첫날 관광은 젠쯔지 절을 올라가는 일정이었다.
태반이 중도에서 탈락하고 호텔로 돌아오는 그 높고 긴 계단식 산행 길을 나는 나오미의 모습을
좇아서 강행군하였다.
나오미는, 아, 나오미는 산의 맨 아래쪽에 대기하고 있는 영업용 가마에 남편인 그 늙은이를
태우고 돌로 된 산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몸이 부실한 사람들에 대한 이런 등행 방법이랄까,
관행 때문에 풍 맞은 사람들이 절 밑에서부터 벌떡 일어나서 산을 올랐다는 전설이 생겨
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거나 내가 이 모습을 본 것은 천추의 한이 될 듯싶었다.
보지 말았어야할 장면이었다. 나오미가 포함된 그 광경에 내 가슴이 아렸다.
아내도 열심히 나를 좇아 올라왔건만 나는 손 한번 잡아줄 수가 없었다. 모두 그 처연한 광경
때문이었다. 첫날 관광이 강행군이라서 다소 불평들이 있었으나 저녁 밥맛은 꿀맛이었다.
다다미 방에서 나와 아내는 몸을 안았다. 그러나 딱딱한 다다미 탓도 있었지만 나는 이내 몸을
풀었다. 그리고 내일 새벽을 고대하는 청년의 심정으로 잠을 청하였다.
새벽에 눈을 떠보니 빗소리가 요란하였다.
"당신도 남녀 혼욕 어때? 체험 관광이라는데---."
아내를 깨워 내가 권유해 보았다.
"아이구, 끔찍해요. 혼자 재미 보고 오세요. 암스텔담에서 처럼---."
아, 그랬지. 암스텔담에서 남녀 혼욕이 있는 호텔에 든 적이 있었지. 오래 전, 건설 업체에서
보내준 부부 위로 관광이 있었다. 물론 건설 현장 견학이 주요 일정이었다.
하여간 같이 간 일행이 엄두를 못 내는데 나 혼자 갖고 간 소주 팩 하나를 다 뜯어서 마신
만용으로 지하에 있는 혼욕 사우나를 들어갔었다.
말만한 북 유럽의 바이킹 여자 둘을 좌우에 앉히고 뜨거운 돌이 깔린 방에서 땀을 뽑은 기억이
순전히 삶의 밝은 쪽에 해당하는 뮤지컬이었다면, 어두운 새벽에 일본의 차가운 봄비를
맞아가며 옥상에 있는 노천 혼욕을 찾아 올라가는 모습은 희비극적 오페라에 다름 아니었다.
그래도 나오미같은 관능적 여신이 있지 않은가라고? 저 뜯어갈 수도 없는 이교도의 성전에
있는 여신의 부조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봄비를 맞으며 어둠 속에서 나오미는 이미 발가벗고 탕 속에 앉아 있었다.
키 큰 그녀의 벗은 모습은 정말 잘 깎아낸 그리스의 여신상이었다.
"날 기다렸어?"
"날 좇아왔네요."
그녀의 체모가 일렁이는 온천의 물결을 뚫고 내 시선 쪽으로 빗겨 올라왔다.
"타월을 갖고 들어올걸 그랬어요---."
그녀가 내 시선을 의식하며 말했다.
"사람도 없는데 뭘---."
"형은 사람이 아닌가, 뭘."
"근데 요즘 말로 진짜 몸짱이네, 나오미야."
"자꾸 그러면 난 나갈래."
"아니 미안해. 내가 물결, 그러니까 일본말로 나미를 만들어 줄게, 나오미야."
내가 물을 휘휘저어서 물결을 만들었다. 그게 어이 차단막이 되랴만 우리는 그렇게 감각상의
차단장치를 마치 시골집에서의 한지 창호지처럼 두어서 감정을 격리시켰다.
"왜 열녀가 되었어? 돈 때문에?"
"삼류 소설 쓰지 마세요."
그녀가 남편을 만난 건 한일 관계가 단절 직전이고 일본 신문사의 특파원들이 모두 퇴거 명령을
받았던 시절이었단다. "요미우리 신붕(讀賣 新聞)"의 한국 특파원으로 온 재일 교포 출신의
남편을 프리랜서로 신분 변화를 하게하고, 첫 부인과 이혼시킨다음 재혼을 하여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것이 "그녀의 일생"이었다.
남편이 풍을 맞은 것은 이혼한 첫 부인이 일본에서 목을 매고 자살한 직후였다.
두 연인이 혼례식을 올리고 밀월 시절을 채 삼년도 즐기기 전이었다.
"내가 첫 부인과 대면하여 남편 관리, 간수 좀 똑똑히 하라고 눈을 치뜨고 소리 질렀거든요."
부인이 쓰러지더란다.
"아마도 그 순간, 그 부인은 이미 자살을 생각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후업이랄까, 죄짓고
해원 굿 하는 게 제 나머지 삶인 것 같아서 끈기 있게 병 수발하며 잘 지내고 있어요. 세월이
흐르고 해가 바뀌어도 나는 안타깝지도 당황하지도 않아요. 그렇다고 죽음을 기다리며 사는
삶도 아니고---. 설명키 힘들어요. 주로 일본에 살았는데 요즈음은 다시 서울에 와서 정신대
할머니들을 돕는 사업에 손을 좀 대고 있어요. 일본 언론 재단에서 펀드를 조금 내 놓았는데
마침 남편과 인연이 닿아서---. 인터넷 사이트와 일반 신문에 광고도 하고 있으니 관심 갖고
적은 돈이라도 내시고 참여하세요."
비가 후두둑 세차게 내렸다.
내가 얼른 알몸으로 일어나서 입구에 걸어놓은 베트남 식 고깔모자를 두 개 갖고 와서 하나는
내가 쓰고 또 하나는 나오미에게 씌워 주었다. 그러면서 몸을 낮게 한 탓에 내 남근이 탕에 몸을
담그고 있는 그녀의 얼굴 근처에 위치하였으나 그녀는 얼굴을 비키지 않았다. 그 순간 우리는
남녀라는 의식이 거의 없었다. 차가운 비 탓만은 아니었으리라.
"그 때 그 해변 시인학교 시절에 우리가 밤중에 몸을 섞었나?"
"아이구, 형이 너무 취하셨지."
그건 긍정인가, 부정인가, 나는 감히 따질 수가 없었다.
"국문학을 하던 내가 광고업계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이제는 도로 공사에서 월급쟁이를 하고
있으니 도대체 세상사에서 내 배역이 무언지 궁금하고 갑갑하다가 이제야 겨우 역사성 같은 걸
깨닫게도 되고 개발 연대를 꿰뚫는 서사시 같은 걸 좀 써볼까 싶기도 했는데 나오미는 벌써
저만치 앞서 가고 있구만. 부끄러워. 내 친구 하나가 유니세프에 다니는데 오랫동안 아프리카
소년 소녀 돕기에 나서라며 집요하게 도네이션하래도 내가 몸을, 아니 주머니를 사렸는데---,
나오미 이야기 듣고 보니 당장 그 할머니들 돕기에 나설까 싶어. 농담같지만 이 친구 녀석이
이제는 아예 도네이션을 돈네이션이라고 한다니까, 하하하."
"내게 해준 돈네이션 약속은 정말로 고마운데, 사실 형은 원래 여자에게 관대했잖아요."
"남자로 미녀에게 관대치 않은 사람 있을까?"
“하하하”.
우리는 오랜만에 함께 크게 웃었다.
동녘이 밝아오고 있었다.
어둡던 하늘도 점차 구름이 빗겨지나가고 푸른색을 띄며 영혼을 손짓하여 유혹하는 듯하였다.
나오미가 낮은 음정으로 무슨 노래를 흥얼거렸다.
"귀천이구나?"
귀천을 낮게 부르는 해맑은 그녀의 등 뒤로 검은 날개 같은 것이 보인 것은 바로 그 때였다.
그녀는 비상하여 승천하는 것처럼 보였다.
갑자기 바깥이 조금 시끄러워졌다. 일본인 남녀가 몇 사람 들어서는 사이로 내 아내도 비닐
원피스 같은 것을 뒤집어쓰고 들어왔다.
"본전 뽑아야겠어요, 호호호."
아내가 웃으며 민망하게 탕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정작 시끄러운 원인은 다른 데에 있었다.
혼욕 탕 입구에는 아직도 무슨 크고 불편한 덩어리가 계속 소란을 떨며 존재하는 것 같았다.
찬찬히 살펴보니 장애자를 위한 리프트 시설을 이용하여 어제 본 나오미의 나이든 남편이
올라와 있었다.
"아니, 비 맞으시면 어쩔려구. 큰일나요."
나오미가 대리석 같달까, 아니 백옥 같은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우며 입구 쪽으로 달려갔다.
잘 발달한 둔부가 아름답게 율동하였는데 그 뒤 배경으로는 대머리에 침통한 느낌을 주는 검은
옷의 영감님이 초점 흐린 실루엣처럼 서성거렸다. 나는 시커먼 괴물과 백옥 같은 조각상이
뒤엉키는 두 피사체를 내 심안에 이중인화 시키며 방금 들어와서 엉거주춤한 아내의 손을
잡아끌고 탕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비는 그쳤고 뻥 뚫어진 구름 사이로 하늘빛이 푸르렀는데 거기로부터 나오미의 목소리,
귀천이 풀풀 흘러 내려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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