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길" 다닐 일이 흔치 않았는데 최근 낮과 밤으로 두 차례나
그 길을 밟았다.
광화문과 서대문 사이의 옛 MBC, 지금은 경향신문사가 있는 쪽으로 들어가서
일을 보고 시청 쪽으로 향했으니 정동길로 들어가서 덕수궁 돌담길로 나온 셈이다.
토요알 낮, 정동 교회에서 초등학교 동기의 아들 혼사가 있었다.
늦게 장가를 간 친구였는데, 그 아들이 또 늦장개를 드는 모양이었다.
멋장이 친구의 아들이 또 판박이로 멋쟁이였다.
서울 사는 고향 친구들이 잊지않고 찾아왔다.
내 고향은 경상북도 구미이다.
내가 구미국민학교를 다닐 때 고향 인구는 2만명이었다.
가난한 동네였다.
고향을 떠나 대처로 나온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하여서 지금은
다들 밥먹는 데에 걱정은 없다.
거의가 은퇴를 한 나이들이지만 의사, 고급 공무원, 교수, 교사들을 지냈고
크고 작은 회사의 임원들도 거친 신분이 많다.
국민학교 졸업 때 세 반에 채 모자란 숫자의 학동들이었으면 다들 노력이 많았다고 할 것이다.
그중 한 클라스는 여학생 반이었다.
나는 중학교를 대처로 나와서 다녔지만 대부분은 구미 중학교로 들어갔다.
인근 초등학교 출신들이 모여서 중학생이 되었지만
많은 학동들이 진학을 포기하였는지 1.5학급이 되어서
남반과 여반으로 나누어 부르는 모양같았다.
(그보다 많았는지도 모르겠다.)
고향에는 고등학교가 그때만 해도 없었다.
많은 친구들의 학력이 중학교에 머문 내력이다.
가난한 똑똑이들은 대처의 상고와 공고, 철도고와 체신고, 그리고 사범학교로 갔다.
역장 아들은 아버지의 전근으로 우리와 같이 졸업은 못했지만
나중에 서울대학교를 나와서 고시에 합격하고 검찰 쪽의 높은 자리에도 올랐다.
고향에서 중학교를 나온 예쁜이들은 양재학원이나 미용학원을 나와서
열심히 삶을 개척하더니 우리보다 대략 다섯살 정도 많은
그리고 일찍이 대처로 나가서 자리를 잡은
똑똑한 고향 선배 남자들을 만나서 서울로 많이 올라왔다.
자주 나가지는 않았지만 고향마을 향우회라는게 있어서
가끔 얼굴도 보고 소문도 듣는 재미가 시골 출신들에게는 있다.
골프도 치고 사교 춤도 추고 구루마도 일찍부터 끌고다니는
미인 사모님들도 꽤 되었다.
그들이 씩씩하게 우리들의 손을 잡으면 공연히 가슴이 벌렁거렸던 기억도 난다.
다시 생각해보니 서울로 올라 온 우리 나이의 남자 동기들이 고생이랄까
살아가며 제일 수고가 많았던 것 같다.
고향에 쳐진 남녀 동기들은 대박이 났다.
그저 몇 마지기에 불과한 농토를 가꾸다가 공단이 들어오자 큰 돈을 만지게 된 것이다.
후일담들은 많지만 여기에서 그쳐야할 것 같다.
잘못 말하다가는
"그대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리"(이문열, 토마스 울프)
신세가 될는지도 모른다.
아니 서울로 올라온 친구들은 사실 고향에 잘 내려가지 않는다.
이유는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정동길로 들어가기 전 광화문에서 버스를 내렸다.
옛 터들이 여럿 눈에 들어온다.
MBC가 있던 자리에 경향신문이 들어온지도 오래되었지, 아마.
철도 파업을 주도한 사람들이 이 날만 해도 아직 여기 있다던가
카나다 대사관도 여기 있는 모양이다.
근대사의 아관파천이 생각난다.
우리나라의 왕이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을가서 일년 가량 머물렀던
우스운 사건이 여기에서 일어나지 않았던가.
정동 교회의 파이프 올갠 소리를 처음 들어본 것 같다.
신랑과 부모가 모두 인물이 잘났다.
여기서부터 행정명은 모르겠으나, 하여간 덕수궁 돌담길이다.
결혼식장에서 점심만 대접받고 슬그머니 빠져나오는데 마침 수문 교대식이있었다.
한컷하는 묘미를 누렸다.
남녀 동기들이 친구댁내의 늦은 혼사에 많이왔었다.
나이 탓에 할메들은 혼자된 이가 많거나 영감님이 치매로 누워있다고 하였다.
밤중에 누가 집으로 전화를 했다가 끊었다.
아마도 노래방에서 누군가 취중에 스마트 폰을 누른 모양같았다.
그 다음 다음날은 BBB 운동 본부에서 초대장을 주어서 정동 극장의 국악 뮤지컬을 보았다.
BBB는 중앙일보가 후원하는 외국어 통역 자원봉사 운동이다.
밤중에 자다가도 일어나서 영어 통역을 하는 경우도 있고
에피소드와 해프닝이 적지 않지만 보람을 느낀다.
국악 뮤지컬은 춘향전을 극화한 것이었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서 보기에 좋았다.
슈밸트의 겨울 나그네중 밤인사
Schubert - Lieder:Winterreise D 911, Op. 89
No. 1 ‘Gute Nacht’
'아름다운 물레방앗간집 아가씨'와 같이 빌헬름 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 모두 24곡으로 된 슈베르트 최대의 연가곡집이다.
내용은 실연을 당한 젊은이가 희망을 상실한 채 방랑의 길을
떠나면서 방황하는 모습과 감정을 묘사했다.
당시 슈베르트는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이 곡은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던 그가 자신의 심경을 표현하였다.
시와 곡이 가장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최고의 작품이자 인간
의 심리를 철학적으로 담아낸 심오한 작품.
이방인으로 왔다가
다시 이방인으로 나는 떠난다.
5월은 내게 친절하였네
피어 만발한 꽃으로.
그녀는 사랑을 속삭였고,
그녀의 어머니는 결혼까지 약속했건만,
이제 세상은 슬픔으로 가득차고,
길은 눈으로 덮혔네.
난 내 여행을
떠날 때를 정할 수 없지만;
내 길을 스스로 찾아야하네
이 어둠 속에서..
달빛에 드리워진 그림자와 함께
그를 벗 삼아 떠나리
짐승의 발자욱을 따르리
이 하얀 벌판에서.
내가 왜 기다리며 서성여야 하는가
사람들이 날 쫓아낼 때까지?
길 잃은 개는 짖게 내버려 두자
자기 주인의 집 밖에서;
사랑은 방황을 좋아하네
신은 사랑을 그렇게 만들었네
이 곳 저 곳을 방황하도록.
내 사랑 이젠 안녕!
너의 단 꿈을 방해하지 않으리,
너의 편안한 휴식을 방해하지 않으리;
발걸음 소리 조차 들리지 않도록
살며시 살며시 문을 닫고!
떠나는 길에 그 문에 적어 놓으리..
"안녕히"라고,
그러면 넌 보리라
내가 너를 생각했었음을.
Martti Talvela bass
Ralf Gothóni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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