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이 오면 올해는 금방 추석이다. 이렇게 빨리 오는 경우는 38년만이라고 한다.
윤달 때문에 보통 때 보다 거의 한달이나 일찍 차례명절이 오는 것이다.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바탕으로 만든 음력의 일년 주기와 지구가 태양을 한바퀴
실제로 도는 주기에는 꽤 차이가 있어서 이 부분을 모아서 재 분배하다보니 음력은
윤달이 생긴다.
양력이야 워낙 해를 중심으로 만든 것이니까 달력과 실제 주기의 차이가 크지 않아서
윤달같이 긴 장치는 필요없고 알다시피 4년에 하루만 더 보탠다.
재미있는 것은 음력윤달이 이렇게 숫자 상의 셈법에 불과한데도 정상적인 달이
자신의 뒤에 썩은 달, 곧 윤달을 하나 더 이끌고 평소보다 일찍 찾아오는 해에는 모든
자연현상 자체도 빨리 오는듯 하다는 느낌이다.
봄의 씨뿌리기 날짜가 그렇고 가을걷이가 그렇고 겨울도 일찍 찾아와서 윤달이 있는
해에는 첫눈도 일찍 오는 것 같다.
농부의 아들이 아니어서 농사철은 기억에 남지 않지만 추석이 빨리 오는 해에는
추위도 빨랐던것 같다.
과연그랬을까?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다고 보아야한다.
절기라는 것은 음력이 아니라 양력에 맞추어 잘 계산해 놓았기에 사실은 실제적
자연현상과 거의 차이가 없다.
다만 절기의 이름이 모두 전통적인 한자 명칭이어서 음력을 기준한 것으로 착각
하였기에 우리는 음력만 쓴것 같았던 선조들의 지혜에 지레 감탄한 셈이었다.
물론 이런 착각과 감탄은 후손으로서 손해될 일이야 아니겠지만.
달력 만드는 셈법은 복잡하여서 천문학자들에게나 맡겨두는게 좋을 것이다.
다만 착각 이야기도 나왔으니 상식적으로 잠깐 소개를 하면 이렇다.
24절기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사실 음력이 아니라 양력을 기준하여서 1년을 15일
간격으로 24등분한 것이다.
24등분중 대한-우수-춘분-곡우-소만-하지-대서-처서-추분-상강-소설-동지를
"중기"라하고 소한-입춘-경칩-청명-입하-망종-소서-입추-백로-한로-입동-대설은
"절기"라한다.
그리고 이들 중기(12)와 절기(12)를 합하여 24절기라고 한다.
이때 음력으로 따져서 절기가 배분되어 들어가지 않는 달이 생기면 윤달을 넣어서
균형을 맞추게 된다.
그런데 추석은 절기가 아니고 음력 8월 15일,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찾아오는
명절이기에 윤달이 있는 해에는 평소보다 한달이나 빨리 올 수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추석이 있는 8월의 다음달도 윤달 8월이지만 추석은 앞에서 이미 지나갔고
자신은 썩은 달의 신세가 되고만다.
그럼 소슬바람은 왜 빨리 찾아왔고 동복도 왜 빨리 입어야했을까.
그것은 일종의 심리적 착각에 따른 기억의 매몰이었을 것이다.
윤달 든 해의 추석날에는 차례를 지내러 큰집에 가면서 일찍 신나게 입은 동복 때문에
땀을 흘린적도 틀림없이 있었겠지만 그런 기억보다는 이른 가을이면 찾아오는
아침저녁의 썰렁한 바람에 더 미혹이 되어서 "역시 음력은 신통한 것이야"라고 자기
최면에 빠졌지나 않았겠는지.
새로 지어입은 동복의 위력과 내통하며!
추석이 빨리와서 기뻐하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선 아이들도 예전처럼 그렇게 명절에 대한 기대가 없다.
어린 시절, 명절의 최고 가치는 먹는 데에 있었는데 지금은 먹는 일도 시들하고
설날처럼 세뱃돈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저 보통날에 불과하다.
청장년들도 추석이 시들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친척들이랑 만나봐야 언제 장가, 시집 가느냐는 집단 추궁이나 받기 쉽고
연봉조회에 시달린후 귀성과 상경길의 교통만 지겹다.
집안 어른의 입장이 되고보면 때아닌 조기추석 때문에 돈 문제가 버겁다.
헷 곡식과 헷 과일의 출하가 당연히 늦어져서 시장경제에 혼란이 보통아니다.
생각해보면 조상님들은 왜 이렇게 수확의 절기를 조급하게 잡아서 윤달 추석 때는
물론이려니와 해마다 첫 수확물을 자신들의 조상 신위에 갖다 대느라고 조바심을
쳤을까.
미국의 추수감사절처럼 가을걷이도 거의 끝나가는 11월 달의 만월에 맞추어
느긋하게 칠면조, 아니 닭 한마리 통째 삶고 햅쌀로 밥을 지어 올렸으면 얼마나
편했을까?
아마도 여기에는 조상에 대한 동서양의 개념차이가 있었지 않았던가 싶다.
유교 전통의 동양에서는 수확의 첫물을 조상에게 바치는 가치관에 치중을 하였고,
서양에서는 현실과 실질을 더 중요시하였으리라는 생각이다.
유교쪽이 보다 더 수직적 인간관계라는 말과도 통하리라.
다만 세계화된 지금은 각종 수입 과일도 있고 캘리포니아 산 쌀도 지천이니
비싸고 철 이른 이 땅의 수확물에 매달리는 사람들도 사라질지 모른다.
농경사회 때처럼 직접 재배하였으면 모를까
열심히 자동차, 스마트 폰 만들어 벌어들인 외화로 열대나 아열대의 풍요로운
과일을 차례상에 올리는 것도 조상 숭배에 꼭 거슬리는 행위는 아니겠다.
다만 "먹거리 주권"도 염두에 두어야 미래의 환난 시절에 후손들을 위한 대비가
될 것이다.
하긴 우리나라도 아열대가 되어가고 제주도 뿐만 아니라 남해 곳곳에서도
멜론과 바나나와 이름모를 열대과일이 생산된다니 신토불이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
구월이 오면 가을이다.
아직 과육이 속속들이 달콤하게 익지는 못해서 헤르만 헤세처럼 "여름은 위대하였으나
주여, 이틀만 더 주옵소서"라고 간구해야 할 형편이긴 하지만 가을은 벌써 뜰 앞에,
그리고 아파트 일층의 메일 박스에 청첩장과 함께 와있다.
가을은 결혼의 계절이다.
봄날 보다는 덜하지만 여기 미국 땅에도 9월은 결혼식과 함께 시작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젊은이들이 9월 1일부터 시작하는 노동절 연휴에 결혼식을
결행하고야만다.
표현이 좀 결연한 것은 젊은이들의 결혼 행진곡이 참으로 고난의 박자이기 때문이다.
젊은 남녀가 데이트를 시작한다고 결혼으로 쉽게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아무리 두 사람의 애정이 진하고 관계가 깊어도 남자가 여자에게 프러포즈를 해야
진행이 되는데 그게 영화보듯 그렇게 쉽지가 않다.
우선 반지를 하나 마련하고 프러포즈 장소를 물색해야하는데 우리처럼 부모에게
기대기 힘든 문화적, 경제적 여건 속에서 이게 쉽지가 않다.
첫 단추 끼우기가 힘드니 뜻이 맞는 젊은 정인들은 우선 낡은 카핏 위에서나마
동거를 시작하지만 정작 웨딩 카핏 위를 걷기란 요원한 가운데 감정은 어느새
고단하게 너덜거리고 이별의 순서가 먼저 찾아온다.
꽃반지나 풀반지로 이 과정을 지혜롭게 넘긴다고 하여도 프러포즈 후 대략 일년
동안에 할 일이 태산이다.
먼저 신부 중심의 소나기 행사가 있다. "브라이들 샤워"라고 하여서 신부 친구들이
원래의 전통적 의미와는 달리 이제는 장난스레 속옷같은 것을 선물하는 작은 잔치
이지만 상차림 돈이 적지 않다.
신랑측에서는 결혼식 조금 전에 "신랑파티(bachelor party)"를 열어야한다.
가까운 신랑 친구들은 앞으로 결혼식장에서 들러리를 서게 되는데 이들을 중심으로
우선 신랑 파티 때에 초청해 분위기를 띄운다. 신부와 신부 들러리들도 이때 초청됨은
젊은 표현대로 당근이다.
이 행사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신부 쪽에서도 "신부파티(bachelorette party)를 연다.
이 파티는 카니발 요소가 있어서 먹고마시며 야한 장난이 곁들여진다.
이런 비용들이 또한 장난이 아니다.
친분이 있는 토박이 피츠버거 부부의 딸 제니퍼는 이곳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여기에서 마치고 현재 맨해튼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꽤 성공한 축에 속하는데
나이는 설흔, "골드 미스"이다.
자식의 결혼에 이곳 부모들은 무심하다지만 인지상정이야 어디나 다를 바 있겠는가.
평소 언급이 없던 부모들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효녀 자랑, 그러니까 결혼 사실을
주위에 알린다.
이 아가씨의 가까운 여자 친구 하나도 맨해튼에서 일을 하는데 역시 비슷한 때로
웨딩 날짜를 잡았다.
두사람은 일년 전부터 서로 들러리도 서주고 "들러리 짱(maid of honor)"까지 맡기로
했는데 제니퍼가 그만 중간에 약속을 깼다고한다.
이유가 생각밖이었다.
그 친구와 그쪽 예비 신랑은 출생지와 학창을 보낸 곳이 미국의 50개주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는데 각종 행사를 모두 돌아가면서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당사자들이야 평생의 대업이자 인륜지 대사이니 달나라에라도 갈 수 있으려니와
맨해튼에서 짬밥을 먹고 사는 제니퍼의 입장으로서야 족탈불급,
영광의 직책도 반납했다는 것이다.
풍습이나 관행도 사람사는 경제 형편에 따라 변하기 마련 아닌가.
대략 이곳에서는 결혼 비용을 신부 쪽에서 부담하는 비중이 높았는데 이제는 각자도생,
형편에 따라 규칙은 없고 결혼때의 웨딩 선물도 이제는 물품보다 돈으로 내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다.
돈을 내는 수준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고--.
오래전 조카의 결혼 덕분에 하바드 교내의 교회에서 여성 목사님이 집전하는
결혼식에 참석하고 그날 저녁에는 대서양 상의 고급 피로연장에서 못추는 댄스 파티도
즐겼으나 대부분의 이곳 결혼식장은 좀 어설프다.
웨딩 플래너란 여기에서 생긴 말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그들이 웨딩 드레스와
카핏에 코를 박다시피하며 일사분란하게 진행하는 것과 달리 정작 여기에서는
예식과 피로연의 연결이나 시간관리들이 불연속선이다.
하지만 신랑신부와 어울려 어설픈 춤이라도 한번 추고 헤어지면 축의금만 줄을 서서
전달하고 신랑신부 얼굴은 화상으로나 보면서 밥 한그릇 뚝딱한 후 돌아오는 우리의
신 풍속도 보다는 훨씬 정겹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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