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5월 15일이 스승의 날인가?
우리 민족의 영원한 스승, 세종대왕 탄일이 이날이기 때문이다.
의아한 시선도 예상은 된다.
한글날은 한글 창제 사연만큼 변동이 많았으나 이제는 고정이 되었다.
이촌 역에서 진입이 되는 중앙박물관에는 한글 박물관도 있다.
준공된지도 얼마되지 않는다.
여주에는 영릉(英陵)이 있다.
영웅 서사시를 써도 모자랄 세종 성군의 왕릉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효종을 모신 영릉(寧陵)이 있으나 한자가 서로 다르다.
광화문에는 세종대왕께서 오래전 부터 앉아계시며 세계에서 문자를
창제한 유일한 왕으로 추앙을 받고있다.
한글은 우리민족의 종교랄까, 거의 유일 종교적 역할을 하고 있다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한글이 없었으면 남북도 벌써 다른 문자를 쓰며 이간 되었을 것이다.
중앙아시아에서 남북미주에 흩어져 사는 배달 겨례를 묶고있는 끈이
한글이다.
한글이라는 표현은 주시경 선생께서 붙여주신 이름이다.
세종대왕께서는 광화문 네거리에 계시면서 세계만장의 방문객들에게
사진 촬영의 배경이 되시도록 자손들이 받들어올린 사실은 우리의 마음을
떳떳하고 자긍스럽게한다.
하지만 이분이 태어나신 곳은 멸실되고야말았다.
겨우 서촌 언저리에 작은 표지석하나만 덩그렇다.
아니 덩그렇지도 못하고 표지석이 표지스럽지도 못하다.
뒤쪽 서양 빵집까지 사 넣어서 기념관을 만들자면 천억원이 든다고 한다.
또 정확한 장소도 조금씩 달라서 큰길가가 아니라 골목 안쪽으로 꽤 들어가야
옳다는 고증도 나온다.
서촌 사람들은 서촌이라는 표현도 싫어한다.
"세종대왕 나신 마을" "세종 마을"로 불리기를 좋아한다.
스승의 날에 생각이 많다.
펜클럽 회원들이 여의도 사무실 근처에 모여 버스 두대를 타고
한글 박물관으로 향했다.
강변도로를 따라 이촌동 중앙박물관으로 달린다.
"미나리 섬"(인조섬)이 보인다.
세종대왕릉과 효종왕릉 사이의 길로 걸어서 왕복하며 두곳을 모두 섭렵하였다.
효종은 세종보다 200년쯤 후의 왕이었으나 편지글을 한글로 통한 선각한 분이다.
대왕이 탄생하신 곳은 이곳 참여연대 건물까지로 확장 추측된다.
이제 천억으로도 복원이 불가능할듯 싶다.
서촌 길에 들어섰다가 노천명 시인의 고가를 찾았다.
네번째인데 문이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서촌 복구의 흐름이 있다.
이상의 집 앞에 다시섰다.
스승의 날 노래
'에세이, 포토 에세이, 포엠 플러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락산 밑 시인 천상병 공원 (0) | 2015.05.29 |
---|---|
부처님 오신 날의 남산 시비 순례 (0) | 2015.05.25 |
여행작가 5-6월호 (카리브 크루즈-푸에르토 리코) (0) | 2015.05.14 |
황하 모친 (0) | 2015.05.10 |
공림에서 (0) | 2015.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