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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거인, 잉카의 여인들 (페루 탐방 1)

원평재 2015. 11. 24. 20:43

 

 

 

 

 



 


키 작은 거인, 페루의 잉카 여인들

(페루 탐방 1)

 

잉카 여행은 바로 페루여행이고 페루 여행은 쿠스코에서 출발이다.

수도 리마에서 다시 비행기로 한시간 반 거리, 마추픽추도 이곳에서 시작이다.

쿠스코는 중남미 일대를 지배하던 대 잉카제국의 수도이자 심장이었고 태양신을 숭배하는

황금 도시였다.

쿠스코란 페루 원주민이 쓰는 케추아(Quechua)어로“배꼽”이라고하니 땅의 중심이라는 뜻이다.

 

쿠스코 관광은 중심가에 있는 아르마스(Plaza de Armas) 광장에서 시작하여 미로의 끝에서

마감한다.

혼자서 미로를 헤메다보면 이러다가 이 골목 속에서 "행불자"가 되려나 오금이 저리는 체험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저 공중 부양도시 "마추픽추"를 보고가지 않을 수 없다는 의식이 멤돌때면 다시 아르마스

광장으로 되나오게된다.

아르마스는 "병기창"이라는 뜻이다. 스페인 사람들이 마을의 중심에는 항상 병기창을 두었기에

어떤 동네라도 한가운데에는 "아르마스"라는 이름이 따라다닌다.

여기 쿠스코 광장에는 "라꼼파니아 데 헤수스 교회"가 굉걸하게 서있다.

잉카 제국 11대 황제 '와이나키팟쿠'의 궁전 터에 세워진 교회이다. 왕궁이나 신전을 헐고 교회가

올라갈 때 잉카의 인디오들은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잉카는 왕이 죽으면 새 왕궁을 건립하였다. 죽은자들의 환생을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많던 왕궁도 스페인의 침공 후

다 헐려나갔다. 지금 다시 복원에 나서고 있는 것은 관광 수입을 염두에 두기 때문같다.

 

 .

 

 

라꼼파니아 데 헤수스 교회

 

이 교회는 1650년대  대지진후에 재건되었는데 쿠스코의 화가 마르코스 사파타가 그린 벽화로 

유명하다.

성화의 맨 아래에는 인디오들의 고난에 찬 모습들이 감추어져있다. 교회 내부에서는 촬영이 금지

되어서 여기 펼쳐보일 수는 없다. 성화의 색조가 전반적으로 어두운 것도 그런 마음의 표현

이라고 한다.

하지만 태양신을 숭배한 이곳 전통 신앙과 송화가 교묘하게 연결되고 합일 될 때에는 밝은

색채였다.

 

잉카의 수난을 이야기하다 보면 키작은 이곳 인디오 여인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외세의 침략으로 위축되고 왜소화된 잉카의  상징적인 모습같다.

하지만 그래서 키가 작아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곳도 저 여인들이 특산품도 만들어 내다팔고

관광객들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도 운영하고 어린이도 키우고 하다못해 사진의 모델을 서며 돈을

벌고있다. 위대한 자태가 따로 없다.

여기서는 키작은 DNA가 우성이라고 한다. 워낙 고산지대라서 심장에 무리를 주지않고 피를 돌게

하려면 키가 낮아야 유리한 생체 조건이라서 키가 큰 DNA는 열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잉카 전체의 특성은 아니고 여기 쿠스코 여인들이 특히 키가 작고 그 DNA는 지금도 일부 유전된다.

영양 상태의 탓도 물론 있겠으나 이곳 고산의 지형이 산소 희박지대이다 보니 신체의 각 부분을

심장에 가깝게 하려는 생물 진화학적 해석이 가능하다.

 

 

 

 

마침 스페인 사람들이 잉카 제국의 '바라코챠'신전 자리를 허물고 세운 까떼드랄(성당) 앞으로

잉카 고등학생들이 행진을 한다. 이 성당 지붕에는 40km 떨어진 곳에서도 소리가 들린다는 남미

최대의 종이 매달려있다. (1659년 제작).

이들은 키도 크고 건장하였다. 유럽의 피가 섞인 탓이려니.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허무하게 무너진 잉카문명은 1년에 한 번 쿠스코에서 태양제로 부활한다.

축제가 가까워지면 페루의 주요 방송사와 해외 취재진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쿠스코 주민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태양제만 기다려왔다는 듯이 들떠 있다.

매년 6월 24일, 화려하게 개막하는 태양제가 그것이다.

태양제는 잉카문명을 더욱 신비롭게 한다.

 

안데스 고산 지대에서 400년을 이어오던 잉카문명은

하루아침에 화포를 사용하는 200여 명의 스페인 군대에 점령당한다.

제국이 몰락한 후에도 마지막 황제 투팍 아마루(Tupak Amaru)가 저항을 계속했지만,

1571년 그가 정복자들에 의해 처형되면서 잉카제국은 역사의 무대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불가사의로 꼽히는 건축물을 남겼고, 외과 수술까지 했던 잉카문명의 편린은

지금도 살아 있다.

 

 

성당 건물의 양 날개에는 벽감이 있고 그 안에는 아름다운 성체 조각들이 있다.

페루의 가톨릭 교도는 전 인구의 90퍼센트이지만 잉카 고유의 다신교 전통이 유형 무형으로

접목되어있어서 남미 가톨릭 국가 중에서도 특이한 분위기가 있다.

 잉카의 정신이 정복자의 힘 아래에서도 계속 살아있다는 해석과 맞물린다.

잉카의 건축술, 특히 돌 다듬는 기술은 유명하다. 지진이 일어나도 기초가 튼튼히 견디는 모양은

놀랍다.

 

 

 

쿠스코는 해발 4300미터에 위치하여 산소 결핍증, 즉 고산증을 겪을 수 있는 곳이다.

고산증은 원인이 규명되지 않고 있는 증상(병이 아니고)이라는데 나는 감각이 둔한지 여행이

끝날 때까지 한번도 느끼지 못하였다. 약(Diamox)을 먹어서 효과가 있었는지 몰라도 같이 간

사람들 중에는 약을 먹고도 고생 하거나 안 먹고도 멀쩡한걸 보면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다.

여성들이 대략 고생을 하였다. 코카 차를 자주 마시면 좋다고도 한다.

그런데 공기가 희박하여 비등점이 낮으니 빨리 끓고 또 식어서 뜨거운 차를 마시기가 힘들었다.

 

라마를 옆세우고 모델로 나온 아가씨들이 1달러에 흥정을 하였다.

촬영 후에는 한 사람 몫이 그렇다고 한다.

인색하게 망설일 여유가 없었다.  

그들을 보면~~~.

1달러면 빵을 20-25개 살 수가 있다고 한다.

  

 스페인 식 건축대로 건물들은 연속되어 있고 그 안으로는 내정이 있다.

내정에는 기이한 가게들이 미로를 형성하며 들어서있다.

익숙지 않은 내정으로 슬그머니 혼자 들어가면서 가슴이 좀 떨렸다.

어느 순간 2층 미로의 끝이었는데 덜컥 맛사지 집이 나왔다. 방이 여러개 있었고 잉카 여성이

모두 구경을 시켜주었다.

값은 20 달러로 들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20 솔이었다. 환율은 1:2.6인데 떨려서 계산은

해보지도 못했다.   

 

  

 

 

미로를 벗어나서 나오니 예수 성상이 가까운 야산에서 보인다. 높이는 30여 미터인데,

팔레스타인인들이 한참 어려울 때에 이곳 사람들이 지원을 해준적이 있는데 그에대한 감사의

표시라고 한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잉카의 깃발이 이곳 저곳 걸려있다.

 

 

 

저 산위의 십자가는 흔히 동네마다 있는 보편적 구조물인데 페루에서는 저 십자상에도 잉카 식의

옷을 입히고 치장을 한다.

이입된 종교와 토착 관습이 합일하는 현상, 종교적 표현으로는 "싱크로나이징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이제 마추픽추를 그려보며 발길을 옮긴다. (계속)






 

 

◆-El Condor Pasa....

◆-ESPERANZAS......


 ◆-Alturas................

◆-Ecuador Inkas......

◆-Achakachi............

◆-Kushi Sanjan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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