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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 비팔에 서다 (라 마르세예즈와 함께)

원평재 2015. 11. 19. 07:47

 

 

 



인류사가 심상치않다.


얼마전 아름다운 단풍으로 가을이 무르익었을 때 찾아간 몽촌토성 올림픽 공원,

나무들은 비탈에 서 있으면서도 그 뿌리는 깊었고 자태 또한 미끈하고 건강하고 평화로웠다.

그때 찍은 사진들을 그때 그냥 올릴 것을~.

며칠이 지난 지금 비탈에 선 나무들의 모습은 달리 보이기만 한다.

 

사실 우리의 자부심 올림픽 공원의 비탈에 선 가을 나무들은 참 아름답다.

그 모습을 낭만적 배경음악과 함께 소개할 기회를 찾던 중, 갑자기 프랑스 파리에서 들려오는

피비린내 나는 소식,

평화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님을 체득 한다.


생각해보면 "나무들 비탈에 서다"라는 황순원의 작품 속에 나오는 인물들도 그렇게 건강한  

젊은이들이 아니다.

작품을 읽었던 그 청춘시절이 지금 아름답게 낭만화 되어있을 따름이다.


아름다운 배경음악으로 어여쁜 곡선의 비탈에 선 단풍나무들을 올리고자 했던 생각을 접고 

끝내 저 전투적인 "라 마르세예즈"와 함께 미태와 난장을 혼합해본다.

같은 날 도심에서 일어난 난장도 마음을 무겁게한다. 

"라 마르세예즈"를 받아들이는 의미와 감상도 진영에 따라 다른 것이 못내 아쉽다. 


장편 "나무들 비탈에 서다"는 치유하지 못한 이 땅의 잔혹사를 몸으로 앓던 젊은이들에 대한 

기록에 다름 아니었다.

세상은 이제 국지적 갈등에서 문명 충돌로 치닫는가.

비탈에 선 나무들의 모습이 착잡하다.

































































































 


나무들 비탈에 서다.


황순원(黃順元)이 지은 장편소설. 1960년 1월부터 7월까지 7회에 걸쳐 2부로 나뉘어 ≪사상계 思想界≫에

연재되었고, 같은 해 사상계사에서 단행본으로 간행하였다.

(이 때 연재 작품을 약간 개작한다).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을 겪은 젊은이들의 전후(戰後)의 정신적 방황과 갈등을 통하여 인간 구원의 문제를

다루었다. 이 작품은 1950년대에서 1960년대에 이르는 시기의 전후문학사의 한 지표로 간주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순수를 추구하는 이상주의자이며 결벽주의자인 동호는 휴전협정을 앞둔 1953년 칠월 열 사흗날 밤 중부

전선의 한 전투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동호는 살인에 대한 죄책감보다

생존하였다는 사실에서 희열을 맛본다.

정작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는 것은 술집 색시인 옥주에게 동정을 더럽힌 뒤 애인 장숙에 대한 순수가

더럽혀졌다고 느꼈을 때이다.

가책과 후회로 고민하던 동호가 피동적인 관계를 능동적 욕구로 바꾸면서 죄책감을 잊으려 하던 중 다른

남자와 자고 있는 옥주에게 총을 난사하여 살해하고 부대로 돌아와 자살한다.

현실적이고 행동적인 현태는 전쟁 중의 의도적인 살인에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제대 뒤 아버지가 경영하는 회사에 다니며 현실에 충실하다가, 수색 중에 자기가 죽인 모녀를

연상하게 된 어느날 폭음을 하며 무위와 권태 속에서 방황한다.

이 무렵 현태와 윤구 앞에 나타난 동호의 애인 숙은 함구하려던 현태에게서 끝내는 동호의 자살 원인을

알아내고 만다.

현태의 입회 아래 유서를 읽고 싶어하는 숙을 따라간 현태는 송도의 호텔에서 숙을 범한다.

그 뒤 평양집의 어린 계향의 자살을 방조한 죄로 현태는 형무소에 수감된다.

숙은 현태의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자신이 마지막 감당하여야 할 일이라며 몸을 돌린다.

 전쟁이라는 상황이 빚는 죄악과 그로 인한 죄의식이 빚는 인간의 파멸 과정이 동호와 현태라는 대립적

인간상을 통하여 그려져 있다.

Hymne des Marseillais (La Marseillaise)

Arrangement: music and text by Rouget de Lisle
Version I (H51A): for double chorus and orchestra


베를리오즈 / 라 마르세예즈 (프랑스국가)


Louis Hector Berlioz 1803∼1869


Daniel Barenboim, Cond /

Chicago Symphony Orchestra





La Marseillaise
Dutch Radio Choir & Radio Symphony Orchestra / Jean Fournet, Cond


프랑스 혁명 당시 1792년 4월 24일 밤 혁명군 공병대 장교이자 아마추어 음악가였던 클로드 조제프 루제 드 릴(Claude-Joseph Rouget de Lisle)이 작곡했다. 프랑스가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한 후 스트라스부르(루제 드 릴도 이곳에 주둔했음) 시장 P. F. 디트리히가 프랑스군이 부를 행진곡이 필요하다고 요청하자 루제 드 릴이 작곡한 곡이 바로 〈라 마르세예즈〉이다. 원래 제목은 〈라인군의 군가 Chant de guerre de l'armée du Rhin〉였는데, 마르세유 출신 의용군들이 즐겨 불렀기 때문에 〈라 마르세예즈〉로 통하게 되었다. 그런데 루제 드 릴이 가사를 쓴 것은 확실하나, 음악도 정말 그가 작곡했는지는 분명치 않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랬으리라고 그냥 믿고 있을 뿐이지요.

이 노래는 어딘지 한 나라의 국가답지 않은 면이 있어서 선율은 슬프고 쓸쓸하며, 가사는 매우 끔찍합니다. 혁명군이 전쟁에 나가면서 부르던 노래니 그럴 수 밖에 없지요. 모두 7절까지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잔인함 일색이라, 이제는 가사를 바꾸어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도 매우 자주 나옵니다.


혈기가 넘치고 위풍당당한 이 노래는 강렬한 효과를 발휘하여 혁명 기념행사에서 항상 불리게 되었다. 1795년 7월 14일 국민의회는 이 노래를 프랑스 국가로 제정했으나 나폴레옹 제정 당시와 루이 18세의 제2왕정 복고 당시(1815)에는 혁명과 연관되었다는 이유로 금지되었다. 1830년 7월 혁명 후에 다시 공인되지만 나폴레옹 3세에 의해 다시 금지되고 1879년에야 다시 등장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6절로 부르다가 나중에 다른 사람이 쓴 7절 가사가 덧붙여졌다. 공식행사에서는 1절과 6절만 부른다. 두 절은 다음과 같다.

"가자, 조국의 아들들이여/영광의 날은 왔나니/압제가 앞에 있지만/피의 깃발이 올려졌나니/피의 깃발은 올려졌나니/들판을 함께 가자/야만적인 적군을 무찌르자/적은 다가오고 있다./우리 아들, 우리 조국의 목을 치기 위해.

(후렴)시민이여! 무기를 들어라/무장하라 전사들이여/전진하라! 전진하라!/적의 더러운 피가/우리 들판을 흐를지니/조국의 신성한 수호신이/우리 복수심에 불타는 군대를 보살피고 지켜줄지니/자유, 사랑하는 자유의 신이여/적과 싸우자/적과 싸우자/우리 깃발 아래서, 승리의 노래가/힘차게 울려퍼질지니/쓰러져가는 적들도 그대의 승리와 영광을 보리라!/우리 군대와 시민의 승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