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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희망봉 (Out of Africa)

원평재 2016. 2. 6. 18:41










남아프리카 4개국 여정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희망봉"이었다.

희망봉 여정의 기록과 감상에는 만감이 따르나 세가지 정도로 생각을 정리해보고싶다.


첫째, 희망봉은 Cape of Good Hope로서 "희망의 곶"이라는 표현이 보다 정확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곳은 Cape Point라고 하는 등대언덕과 함께하는 지형이어서 두 지역을 묶어

희망봉이라고 애초에 일본인들이 번역한 것을 굳이 틀렸다고 보고싶지는 않다.

또한 오류이건 어쨌건 우리세대의 뇌리에는 남아프리카의 최 남단에는 희망의 산봉우리,

희망봉이 존재한다라는 개념이 일찍부터 자리잡고 마음을 사로잡았거늘~.


둘째, "희망의 곶"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바로 이 케이프 포인트, 등대언덕이었다.

그래서 먼저 등대 쪽으로 후니쿨리를 타고 올라가서 일단 내린 다음에 다시 더 등대까지

걸어올라가 아래쪽으로 멀리 희망곶을 내려다 보는 코스가 되었다.

등대 언덕에서 희망곶을 바라보면 한쪽은 대서양, 다른 쪽으로는 인도양이 광활하게

바람 속에서 전개되는 광경은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셋째, 희망봉은 나라가 암울하던 시대에 학창을 보낸 세대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로

작용한 키 워드가 아니었을까,

적어도 나에게는 그러하였다.

미래에 대한 어떤 희망도 없이 숙제로 받은 백지도 노트에 희망봉의 해안선을 색칠하던

시절, 그 곳은 심리적 마스타베이션의 황홀경에 다름아니었다.

그때의 감상이 참으로 오래 심리의 저변에 깔려있다가 이곳을 밟으며 불현듯 떠올랐다.




유년과 학창시절은 나라나 개인이나 모두 힘든 때였다.

조숙한척 목을 쑥 빼고 거창하게는 국가의 장래를 내다 보아도,

그리고 개인의 장래를 근심해 보아도 별로 뾰족한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주위에는 어둡고 음습한 시공간이 형성될 따름이었다.

이럴때 우리나라는 떠나야할 곳, 버려야할 곳이었으며 피항지는 내 책상머리에

붙어있는 로렐라이 언덕의 사진이거나 그 아래 펜으로 써놓은 "희망봉"이었다.

로렐라이 언덕 사진에는 흑백 사진의 백인 처녀가 앉아서 라인강을 바라보는 가운데

하인리히 하이네의 싯귀가 세로 글씨로 흘러내렸다.

사진의 아래로는 뜬금없이 내가 파란 잉크로 두겹 세겹 써놓은 희망봉 세글자가 있었다.


아 희망봉,

500년도 더 전, "대 항해시대"에 바틀로무 디아스가 발견하고 바스코 다 가마가 대선단으로

항해한 이래 수도 없이 많은 선원, 상인, 병사와 이주민들이 희망을 품고 지나갔던

희방봉,


그런데 이제 인생의 황혼녁에 밟아본 그곳은 세찬 모래바람이 어린이 주먹만한 돌들을 날리고

심지어 사람의 몸까지 넘어뜨리는 황야에 다름아니었다.

로렐라이 언덕이 그저 평이한 한 지점이었던 것 처럼.

















케이프 곶 표지 앞에서 인증 샷을 찍느라 사람들이 몰려있다.

나는 선착순으로 일찌감치 인증을 "박고" 나왔다.












희망봉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의 아굴라스곶의 북서쪽 160km지점에 있는 케이프타운에 가까운

케이프 반도의 맨 끝이다.

1488년 포르투칼의 항해자 바톨로무 디아스가 발견 하였으며, 당시에는 폭풍의 곶으로

불렸다. 그후 1497년 바스코 다가마가 이 곶을 통과하여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한데서

연유하여 희망의 곶이라고 개칭하였다.

룩 아웃 포인트라는 등대가 있는 전망대로 가면, 반도의 최남단인 케이트 포인트가 내려다

보인다. 반도의 남단부는 자연보호지구로 지정되어 있으며, 비비를 비롯하여 많은 동식물이

보호 되고 있다.



케이프 포인트를 먼저 올라가서 아래로 희망곶을 내려다 보게된다.

정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후니쿨리를 이곳에서 타고 산정의 2/3 지점까지 가서

다시 걸어올라가야한다.




후니쿨리를 타고~



후니쿨리를 타고 올라가서 다시 한참 등산을 하였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곳이 희망곶, 어디라없이 바람이 온통 세차게 불었다.







대서양과 인도양으로 갈라지는 해역을 가르킨다고 포즈를 취했던 것 같다.








내려올 때는 걸어서 이쪽으로 왔다.




OECD 국가의 일원답게 태극기가 희망봉에서 휘날리고 있었다.



투 오션스 식당에서 바다 가재 요리와 이곳의 와인을 곁들여 들었다.



이곳 바다가재는 애초에 찌깨가 없다.

찌깨살이 맛이있는데 아쉬웠다.



돌아올 때는 카타르의 도하 공항을 거치는 항로였다.





                   


                             

Dana Winner... out of af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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