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포토 에세이, 포엠 플러스

칼바람 속에서 광교산의 상고대를 잡다.

원평재 2016. 2. 15. 22:42







강추위 속에 눈비까지 예보되어서 광교산 산행 예약은 풍전등화였으나

근심과 달리 새로 개통된 신분당선 광교산 역에는 아홉 장정들이 우뚝섰다.

유라시아 대륙을 사륜 아닌 이륜으로 횡단한 백발 성성 노장까지 섞여있으니

장정이 아니고 무엇이랴~

우리 동기가 셋, 2년 후배 동기가 여섯, 아홉 동문들이 벌판에 새로 개통되어

낯선 방향의 경기대 후문이라는 곳에서 광교산을 우러럿다.


총 동문 산우회장은 감기 칭병으로 나타나지 않았는데 엄살은 아니겠지만

일주일 후로 닥아온 시산제를 대비하여 몸의 무리를 삼가한듯하고

유명 카페 주인이자 부지런한 카메라맨 동기는 컨디션 난조라고 불참을

통보해왔는데 이 역시 다음주 시산제를 위하여 렌즈를 닦고 있으렷다.


결국 다른 동기생 하나가 스마트 폰 카메라를 꺼내서 몇 컷하더니

손이 곱아서 이내 포기한다.

나도 아예 폰 카 꺼내기를 엄두조차 내지 못하니 이날은 합동사진 한장도

끝내 남기지 못한다.

2년 후배 중에는 끝내주는 사진작가가 있으나 이 분 역시 눈 수술 후에

정양 중이라니 후일의 명작을 기약할 수 밖에 없다.


마침내 내가 폰 카메라를 꺼낸 것은 형제봉 정상에서 칼바람을 맞으면서도

아름답게 피어있는 상고대를 보는 순간이었다.

얼굴은 물론 온몸이 칼바람에 허덕이는데도 상고대 의연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니 장갑 속의 손가락들이 가만있지를 못한다.

몸의 반란이다.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는데 금방 손가락들이 얼어서 마비가 온다.

예전에 지리산 겨울 천왕봉과 태백준령 심설 속에서 셔터가 얼어버리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청춘이었다.

지금도 마음은 청춘이라고, 아니 몸이 청춘이라고 반란을 꾀한다.


고백하자면 몇년 전에 오른 쪽 손목에 "카팔 터널 신드롬"(수근관 통증 증후군,

손목 통증 증후군)을 앓다가 극적으로 회복된 이후, 다시 이번에는 

왼쪽에 똑같은 신드롬이 왔지만 내색않고 지내는데 그 아픈 손목까지

이 상고대 얼음꽃을 찍는데에 가세한다.


일행 중에서도 카메라 웍이 수준 이상인 사람들이 있는데 아무도 엄두를 내지

않는 칼바람 속에서 내가 뭐라고 용심하였는고~.

지금 내 머리가 아픈 손가락을 꾸짖는다.


칼바람 고투 끝에 드뎌 평지로 내려오니 비닐 하우스 밥집이 유객을 한다.

넓은 하우스에 사람이 한가득인데 이모 말은 다른 때 반도 아니란다.

모두 마지막 동장군의 심술 때문이라며 손님들에게 푸대접으로 반분을 푼다.

에잇, 비닐을 뒤흔드는 남은 바람에 내 심사를 보탠다.

다른 동문들도 모두 같은 마음인갑다.

다만 정구지(부추)전과 데친 모두부와 이름도 모를 부차적 안주와

막걸리와 빨간표 소주를 맘껏 양껏 향유하고도 일인당 5000원의 부담만 주는

하우스 이모의 끝내주는 마음씨에 우리도 먹었던 마음의 반분은 푼다.   


Carpal Tunnel Syndrome, 손모가지 아픔 증후군으로 글 쓰기도 조심하는데

어제의 일과가 너무 재미있어서 각중에 잡문과 사진을 올립니다.

읽고 보아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코렐리 / 합주 협주곡 제2번 F장조
Concerto Grosso in D major, Op.6 No.2
Corelli Arcangelo (1653-1713 It.)

La Petite Bande
Sigiswald Kuijken, Cond 


1악장 (Vivace - Allegro - Adagio - Vivace - Allegro - Largo andante)
 

2악장 (Allegro - Adagio)
 

3악장 (Grave - Andante largo)
 

4악장 (Allegro)


 

합주협주곡(Concerto Grosso)

바로크 시대(1600경~1750경)의 대표적 관현악 음악. 몇 개의 독주악기군(솔로·콘체르티노·프린치팔레라고도 함)과 전체 관현악단(투티, 콘체르토 그로소, 리피에노라고도 함)의 대비가 특징이다. 초기 합주협주곡 제목들에는 연주 장소를 나타내는 것이 많은데, 교회협주곡(concerto da chiesa)·실내협주곡(concerto da camera : 궁정에서 연주)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제목들은 합주협주곡에만 엄격하게 국한되어 붙여진 것은 아니다. 결국 합주협주곡은 세속 궁정음악으로 꽃피게 된다. 전형적인 악기 편성은 당대의 대표적 실내악인 트리오 소나타의 편성과 마찬가지로 2대의 바이올린과 계속저음(첼로와 같은 저음 선율악기, 하프시코드와 같은 화성악기가 담당함)으로 되어 있으며 관악기도 흔히 사용되었다.

리피에노(전체 관현악단 연주)는 보통 계속저음을 지닌 현악 오케스트라로 구성되었으며, 목관악기나 금관악기가 보충되기도 했다. 아르칸젤로 코렐리(1653~1713)를 시작으로 주세페 토렐리(1658~1709), 안토니오 비발디(1675경~1741, 합주협주곡보다는 독주협주곡에 공헌)에 이르면서 다양한 악장수 대신 빠름-느림-빠름이라는 3악장 구성을 굳히게 되었다.

빠른 악장은 흔히 리토르넬로 구조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반복부(리토르넬로)가 독주자들이 담당하는 에피소드 부분과 교대되었다. 합주협주곡은 1750년경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의 작품6(1740)에서 절정에 이른 후 쇠퇴하여 독주협주곡에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 이고리 스트라빈스키와 헨리 코웰 같은 작곡가들이 합주협주곡을 부활시키려는 시도를 했다.

 

코렐리 Arcangelo Corelli 1653~1713



Corelli, Arcangelo (1653-1713 It.)
이탈리아의 작곡가·바이올리니스트. 라벤나 근교 푸지나뇨에서 출생하였다. 1666년 볼로냐에 있는 산페트로니오성당의 바이올린 연주자인 G.벤베누티와 E.가이바라 등에게 바이올린을 배웠으며, 로마에서 활약하였다. 1670년 17세의 나이로 유명한 볼로냐의 아카데미카 필라르모니카 회원이 되었고, 1671년 로마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의 산 조반니 디 피오 렌티니성당의 수석 바이올린 주자로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1670년대 말엽에는 전 스웨덴 여왕 크리스티나의 로마궁정 소속이었고, 1681년 작곡한 《트리오 소나타집 작품1》을 여왕에게 헌정하였다. 1682~1708년 로마의 성 루이지 데이 프란체지성당 수석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하였고 이후 지휘자 및 교사로도 활동하였다.

1684~90 년 판필리 추기경의 악장이 되어 코루소궁전의 일요음악회에서 활동하였으며, 추기경의 지원아래 그의 자택에서 거주하며 작곡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1690년 예술의 후원자로 유명한 오토보니 추기경의 바이올린 수석주자와 악장으로서 교황청 추기경 주최 월요음악회에서 활동하여 전 유럽에 명성을 떨쳤다. 1706년 목자 이름인 아르코 멜로 에리만테오의 이름으로 로마의 문예 아카데미 <아르카디아>의 입회를 허락받았다. 1710년부터 우울증이 악화되어 연주활동을 중단하고 1712년 자택으로 이사했으며 이듬해 초 세상을 떠났다.

그는 소나타와 합주협주곡 형식을 완성한 12곡의 합주협주곡을 작곡하여 합주협주곡의 양식을 확립 함으로써 음악사에 큰 획을 그었다. 또한 바이올린 양식에 있어서 합리적인 연주법을 확립하였는데, 특히 12곡의 《바이올린 소나타집 작품5》는 독주 소나타로서 새로운 길을 연 것으로 음악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대표작품으로 《라 폴리아》를 포함하는 독주 소나타 《바이올린 소나타집 작품5》 《크리스마스 협주곡》을 포함하는 《합주협주곡 작품6》 외에 다수의 실내악곡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