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거대한 지상의 그림들로 세상의 이목을 끌고있는 나스카 마을의 공항은 작은 시골 경비행장
수준이었으나 대합실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예약시간보다 두시간이나 더 기다려서 겨우 10인승 세스나 208 프롭기를 탈 수 있었지만
그나마 다행인가 싶었다.
이 거친 오지에 오로지 땅바닥의 그림을 보러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들다니 불가사의한 것에 대한
집착은 인간 공통의 심정인가 보다.
기다리며 내셔널 지오그라픽의 비디오를 보았다.
다른 한쪽에는 일본판 해설 비디오가 있었는데 흐릿하고 내용도 부실하였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조용히 그러나 끊임없이 꾸역꾸역 찾아와서 자기들의 비디오 앞에 꾸중듣는 학생들처럼 말없이
앉아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연간 1000명 정도 온다는데 일본인들은 그 열배나 되는 모양이다.
.
나스카는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남쪽 해안선을 따라 450km지점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1930년대 리마에서 페루 제2의 도시 아레끼빠 까지의 국내 항공이 취항하며 조종사들에 의하여
거대한 그림들은 그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
그보다 먼저 16세기 말 루이스 데 몬존이라는 스페인 행정관이 이 지역을 지나다가 지상에
그려진 그림을 발견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어쨌거나 페루 동부해안 사막지대 약 360평방킬로미터에 그려진 의미를 알수없는 수백,수천개의
그림들중 그 형태나 의미를 알수 있는 그림은 불과 수십개에 불과하고 뜻모를 형상이나 점, 선,
부호등을 합치면 그 수가 무려 9.000개 이상이나 된다고 한다.
반세기 전 황량한 무인지경에서 이 거대 그림을 발견한 사람이나 100년전 하늘에서 이 광경을
내려다보고 숨이 막힐 지경이었던 조종사들 못지않게 오늘날도 나스까의 이 장관은 사람들을
압도하고 신묘한 분위기 속으로 빨아들인다.
누가 언제 왜 어떻게 이 놀라운 장면을 연출해 놓았을까~.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어떤 거대 현상이나 존재에 대하여서는 과학적, 계몽적 해석을 하기 보다
불가지적이고도 동화같은 세계에 던져 두고 싶은 경우들이 있다.
나스카의 땅바닥에 그려진 난해한 그림들이 바로 그러하였다.
두 눈 똑바로 뜨고 가서 보면 무엇하랴. 아직도 과학적으로 완전한 해석이 내려지지 않은 이
형상들은 오래전 외계인들이 여러 목적으로 그려놓은 것이라는 신비주의에 빠지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완전치 않은 해석이라면 차라리 상상의 나래를 타고 싶은 충동이 더 실재적이지 않겠는가.
기다리며 내다 본 비행기들에 그려진 신비한 그림들이 어언 낯익다.
기다리다 지칠 때 쯤 마침내 비행기에 오를 수 있게되었다.
경 비행기는 좌우로 나누어 앉은 열명 승객들의 시야를 배려하여 각각의 그림이 있는 상공에서
한번씩 방향을 크게 틀어 몸체를 많이 기우리기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그냥 둔감하여 사진이나 부지런히 찍다가 나중에 그런 사실들을 들으며 소영웅주의를 잠시
맛보았다.
마추픽추에서나 이곳 나스까의 비행기에서 고소 고통을 경감하기 위하여 무슨 알약같은 것을
먹기도 하는데 약효는 미지수인가보다. 이곳에서는 모든게 불가지, 불확실성 같다.
사진의 왼쪽에 조금 보이는 남녀 두사람은 같은 세스나기를 탄 일본인 관광객이었는데 기다리며
내게 말을 걸었다.
노트를 들고 다니며 기록을 하는 전형적인 일본인 관광객의 모습이었다. 그룹 투어가 아니고 두
사람이 자유 투어로 같이 다니는데 부부는 아니며 여성분은 고향이 니꼬(日光)라고 하였다.
"후유노 소나타"와 "장금이"는 물론 열심히 보았고 "욘사마"의 팬이라고 하는데 경주에 이어 교토
이야기가 나오면서 내가 윤동주 시인의 교토 옥사에 대한 말을 꺼내는 바람에 조금 서먹하게
되었다. 최근 나온 영화 "동주"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언젠가 보면 눈물짓는 사람들일 것 같았다.
여성이 조금 더 나이들어 보였는데 어쨌건 남남끼리이고 성별도 다르지만 여행이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답사지역을 같이한다는 공감으로 외롭지 않게 어울리는 동행의식, 그게 바로
뉴 노마드, 신 유목인의 강령같았다.
나스까 다음의 목적지는?
내가 물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를 거쳐 갈라파고스를 가봐야지요. 마침 동행도 생겼고."
"아, 진화론의 땅!"
신 유목민 한쌍에게 경의를 표하였다.
비행기가 떠나려다가 주저앉았다.
셀모터(쎄루모다)를 돌리는 배터리의 충전이 부족하여서 그러니 잠시 기다리라고 안내 방송이
나오더니 무슨 장비가 급히 나왔다.
기겁을 할 일이었다.
"개솔린은 제대로 넣었나?(Is gas filled in enough, ha?)"
재담이라고 썰을 폈으나 썰렁한 개그가 되고 말았다. 척박한 풍경 못지 않게 분위기가
너무 썰긴장이었다. 개그가 개고생하고 말았다.
비행기가 낮게 떠오르며 동네 주변을 낮게 선회하였다. 발굴과 관광에 따른 건설이라는 바람이
불면서 천지개벽이 일어나고 있었다.
세스나기가 하늘로 올라가면서 다채로운 그림들이 윤곽을 뚜렷이 하였다.
그 중의 몇십가지는 동물과 새의 그림이었다. 그러나 더욱 많은 것은 사다리꼴, 사각형, 삼각형,
직선등의 기하학적 도형이다.
콘도르는 주둥이에서 꼬리까지 122미터나 되고 펠리컨도 비슷했고 도마뱀은 188미터,
원숭이는 길이가 122미터 폭은 91미터나 된다.
언제 그렸을까?
어느 한 순간 집중적으로 그려진게 아니라는 과학적 검증은 끝났다고 한다.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방법"에 따르면 이 그림들이 제작된 시기는 AD 100년에서 800년 까지
약 700여년에 걸쳐서 그려진것으로 추정된다.
우주인들이 어느 순간 내려와서 필요한 그림을 그리고 올라갔다는 설은 일단 억측의 수준인
모양같다.
그러면 누가 왜 어떻게 이 거대한 그림을 오랜 세월에 걸쳐 그렸을까.
의문이 꼬리를 문다. (계속)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1막
배경
이 가극은 마스카니 27세 때인 1890년에 밀라노의 음악출판사 손쵸노(Sonzogno)가 주최한
1막 오페라 작곡 현상모집에 응모하여 입상한 작품이다.
그는 당시 시골에서 음악교사를 하고 있었느데, 불과 8일만에 작곡한 이 오페라가 크게 성공하자
전세계에 그의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또한 그는 이밖에도 몇몇 오페라를 작곡하였으나, 별로 성공하지는 못하였고,
이 작품이 그의 출세작이며 대표작이다.
전주곡과 시칠리아나 Andante Sostenuto, F장조, 4/4박자
'에세이, 포토 에세이, 포엠 플러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해 수호관(천안함 전시)과 기아 자동차 공장 방문기 (0) | 2016.04.10 |
---|---|
강화의 고인돌과 고려 시대 (0) | 2016.04.05 |
이구아나와 US 버진 아일랜드 (0) | 2016.03.26 |
춘분 무등 (0) | 2016.03.23 |
혹한의 눈보라 속에 잊혀진 <장진호 전투> (0) | 2016.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