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간에 걸친 아일랜드 피압박 역사는 어떤 면에서는 우리와 닮은데도 많다.
특히 항거와 독립정신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항에 도착하였다. 잠시 이 나라의 약사를 역사 위주로 살펴본다.
정식 명칭은 아일랜드공화국(Repubilc of Ireland)으로 게일어로는 에이레(Eire)라고 한다.
대서양 상 영국과는 아일랜드 해를 사이에 두고, 동북쪽에 북아일랜드와 접하는 도서국가로,
해안선의 길이는 1448㎞이다.
면적은 7만 273㎢, 인구는 489만 2305명(최근 출산과 인구 유입이 많다고한다).
주민은 아일랜드인이 87.4%를 차지하며, 언어는 게일어와 영어를 사용하고, 91.6%가
가톨릭교를 신봉하고, 성공회가 3% 정도이다.
아일랜드는 기원전 4세기부터 국가의 형태를 지닌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16년에 영국의 지배에 반발하는 폭동이 일어나고, 독립공화국을 수립하겠다는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어서 1919년 1월 21일 아일랜드국민의회의 성립으로 새로운 공화국의
독립이 재확인되고 영국과의 무장투쟁은 1921년까지 계속되다가 그해 12월 6일 독립하였다.
1949년에는 국명을 ‘아일랜드’로 바꾸고 1926년 이래 가맹해 있던 영연방에서도 탈퇴하였다.
리피 강변에 정부청사와 독립을 기념하여 세워진 탑이 보인다.
더블린~!
제임스 조이스의 고향 땅이라는 생각이 번쩍든다. 그가 쓴 현대판 율리시즈에 나오는 더블린
시가지를 답사하는 포스타가 아직도 나온다. 원래 유명한 정례 답사는 해마다 6월에 있다.
《 율리시스》는 제임스 조이스가 1922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그는 이른바 블룸즈데이(1904년
6월 16일) 하루를 더블린 출신 세 사람의 삶을 통해 묘사한다. 그들은 젊은 지식인 스티븐
데덜러스와 신문광고 모집인 리오폴드 블룸과 그 부인 마리언 블룸이다.
이 소설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의 모범에 따라 배열된 18가지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제임스 조이스는 현대인의 의식의 흐름으로 오디세이아를 재현하였다. 배경은 더블린이지만
의식의 흐름은 가이없는 대 서사시이다.
저 포스타는 블룸즈데이 때 것이었는지 관광철인 지금도 있는 모양인지는 살피지 못하였다.
우리가 웨일즈에서 타고온 페리 호의 이름도 율리시즈였다!
더블린 시가지를 관통하는 리피 강 위에 수많은 다리가 있다.
영어와 게일어가 공용이지만 형식상으로는 게일어가 더 우세하다. 다만 국민의 60%만이 게일어를
잘 안다고한다.
더블린 관광의 첫 걸음은 성 패트릭 대성당이다.
초록 Shamrock, 곧 클로버는 아일랜드의 상징인데 고대 아일랜드 때부터 봄의 부활을
나타내는 성스러운 식물로 여겨졌다. 그뿐 아니라 성 패트릭이 기독교를 처음 전파하면서
삼위일체의 교리를 세 잎짜리 클로버에 비유해 설명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초록색은 아일랜드 국기의 색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도 이날은 아일랜드의 상징색 초록
셔츠를 받쳐입었다.
영국이 아일랜드의 언어와 종교를 억압했을 때에는 저항의 상징으로 클로버를 달고
다녔다고도 한다.
매년 3월 17일을 성 패트릭의 날(St.Patrick's Day)이라 부르며 이날은 아일랜드의 최고의 명절로서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처음으로 전파한 선교사 성 패트릭(St.Patrick)의 사망일을 기리는 날이다. 성 패트릭은 영국 웨일즈의 한 성직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16세에 아일랜드 해적들의 습격을 받고 그들에게 끌려가 6년동안 노예로 지냈다. 이교도의 땅에서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 그는 그리스도교에 귀의하였다. 6년 후 그의 꿈속에 천사가 나타나 그를 이곳에서 달아나 집으로 갈수 있도록 도와준다. 후에 그는 약 320km이상을 걸어서 마침내 아일랜드 해협을 배로 건너게 된다. 그는 나중에 다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성직자가 되어 자신이 노예로 있던 아일랜드로 돌아오는데 이곳에서 수도원을 개설하고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으며, 마침내 온 섬을 그리스도교화 하는 데 성공하였다. 지금도 그의 이름을 딴 교회들이 60개 이상이 있으며, 그 중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이곳 더블린에 있는 성 패트릭 성당(St. Patrick's Cathedral)이다. |
원반 배경의 십자가는 달도 해도 그리스도 유일신도 하나라는 교리를 가르치며 생긴 형태라는데
이를 창시한 저 성직자의 이름은 잘 모르겠다.
더블린의 성 패트릭 대성당은 맨해튼의 성 패트릭 성당이 로만 가톨릭인 것과는 다소 달리
아일랜드 국교도의 성격을 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역사적 산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뉴욕과 피츠버그에서 살며 가톨릭 교도들인 아이들을 위하여 이곳에서 성물을 선물로 조금 샀다.
조나던 스위프트는 1713년부터 더블린의 세인트패트릭 성당 참사원장을 지냈으며 영어
풍자문의 대가이다.
유명한 〈걸리버 여행기 Gulliver's Travels〉(1726)를 비롯해 〈지어낸 이야기 A Tale of a
Tub〉(1704)·〈책들의 싸움 The Battle of the Books〉(1704)·〈겸손한 제안 A Modest
Proposal〉(1729) 등 유명한 풍자문을 썼다.
<겸손한 제안〉은 공공심이 강한 한 시민이 가난한 부모의 아이들을 부자의 음식으로 쓴다면
경제여건이 조금 나아지리라고 제안하는 섬뜩한 아이러니가 담긴 충고 편지이다.
이 글에서 그는 아일랜드 어린이를 영국 귀족의 식탁에 올리는 조리법까지 구체적으로 설명
하여 영국 조야를 발칵 뒤집어 놓기도 하였다.
겉보리 한 말 얻어오기 보다 입 하나 줄이는게 낫다는 우리 속담이 생각난다.
여담이지만 몇 십 년 전 주한 미국 문정관의 부인이 우리 영자신문에 같은 제목으로 글을 썼다.
중등학교 제도가 바뀔때였는데 "기생학교"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술따르는 법, 애교법, 등등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면 취업에도 좋고 외화 벌이도 되고 기타 등등 일거양득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기생관광이 문제되던 시절이었다.
정부가 발칵했다. 조나단 스위프트 류의 풍자문학에 무지했던 분위기 속에서 이 문정관은 귀국
할 수 밖에 없었던 작은 사건이 생각난다.
데니스 존스턴의 〈스위프트 연구 In Search of Swift〉(1959)에서는 스위프트의 아버지가
윌리엄 템플 경이 아니라 템플 경의 아버지여서 스위프트와 스텔라는 숙부와 조카 사이이며,
그들은 결혼하지 않았고, 스위프트와 바네사는 친구 이상의 사이였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풍자문학 〈걸리버 여행기〉의 초판이 이미 1726년 10월에 출판된 뒤였다.
스위프트는 알렉산더 포프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작품의 의도가 "세상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것이 아니라 화나게 만들려는 것"이라고 했다.
기원의 나무 아래에서 몇가지 소망을 적어서 넣었다.
성 패트릭 성당의 뒤쪽 정원이 참 아름다웠다.
기네스맥주는 아일랜드에서 나오는데 로고인 하프는 바로 아일랜드의 국가상징물의 하나라고
한다. 회사 나이가 256년이라고 하는데 처음 시작할 때에 버려진 폐습지를 9000년간 임대하기로
해서 맥주공장이 들어섰고 10년 뒤에 영국으로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계약서가 아래에 있는데 라틴어로 되어있어서 읽기가 어렵다. 아마도 9000일로 읽고 국가와
계약을 맺었는가보다.
기네스의 성공은 맥주 맛 때문만이 아니고 가업 계승에 따르는 장인정신,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과감한 혁신, 진정한 문화예술 후원, 박애주의, 신앙심 등에서 나온다고 한다.
유명한 교회 건물(성 패트릭 성당이 대표적)을 복원하고, 세계대전 중엔 전장의 군인들에게
맥주를 배달했다. 창의적이고 발랄한 맥주 광고의 힘도 이 같은 기네스 정신에서 나온다.
기네스 가문 자제들은 노동자와 함께 일하면서 양조 기술을 익혀 명장이 되는데, 상속자들은
수습생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세계 최고 기록을 모은 기네스북도 마찬가지인데, 술자리에서 무엇이 세계에서 제일인지
이야기 꽃을 피우던 것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혹은 사냥 중 날쌘 물새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자 가장 빠른 새를 찾아보자며 시작했다는
일화도 있는 기네스북은 1955년 초판 5만부가 순식간에 팔려 한 달 만에 다시 찍었고,
1984년에는 5000만부, 2004년엔 1억부를 돌파했다고 한다.
SNS 전자 시대에는 어떤 혁신을 꾀할지 궁금하다.
7층에서 시음을 하였는데 주위 경관을 둘러보며 마시는 흑맥주 맛을 어디에 비유할까 망설여
지더니 결국 찾지 못하였다.
맨 왼쪽은 따룬 후에 아직 조금 덜 숙성하였다.
이제 두드리니 탱 소리가 나고 색갈도 진해지며 다 익었다.
이제 트리니티 대학과 시내 구경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여름날의 마지막 장미 - 아일랜드민요
The Last Rose of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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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의 마지막 장미 - 아일랜드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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