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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9-10월호

원평재 2016. 9. 9. 12:16

















세계 연어의 수도, 케치칸 (알라스카 크루즈 2)


 

금년 여름의 더위는 알라스카 주까지도 예외가 없어서 모두들 덥다고 엄살이다.

하지만 크루즈 선이 입항하여 빙원의 물길을 따라서 발길을 옮기는 코스는 시원하기 그지없다.

아무래도 알라스카 여행은 6월초부터 10월 초까지 연어가 산란을 위하여 회유하는 이 계절이

여러모로 제격인가 싶다.  


알라스카라는 말의 어원은 알류트족의 "Alyeshka" 즉 "섬이 아닌 땅"에서 나왔다고 한다.

면적은 151만 9,000㎢ 로서 미국의 단일 주 중에서 가장 크다. 원주민은 전체인구 70만명의

7분의 1에 불과하다. 이 땅은 1867년 미국의 장관 "윌리엄 수어드"가 러시아 제국과 맺은

조약에 의하여 미국에 양도되었다.

당시  크리미아 전쟁으로 인해 제정 러시아가 재정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불과 720만 달러라는

헐값에 미국은 이 땅을 사들였다. 수어드의 비싼 냉장고이자 바보짓이라며 의회는 맹비난했으나

1880년대∼1890년대에 금이 발견되자 분위기는 일신된다.

이후 알라스카에서는 금, 은, 석유 등을 비롯한 각종 자원과 금속들이 발견되었다. 현재 미국은

알라스카 덕분에 중동, 베네수엘라에 이어 석유매장량 세계 3위를 자랑한다.

또한 관광과 어업도 엄청난 부를 안겨주어서 해마다 주민들은 연말 보너스의 돈방석에 앉는다.

그래도 연어를 비롯, 지천으로 깔려있는 어업과 임업 자원은 남획과 남벌을 엄격히 금한다.

이제 연어잡이의 본거지 케치칸(Ketchikan)의 연어 수로를 중심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알라스카에서 태어난 연어들은 약 5~7년 간의 대양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산란을 하고

생을 마감한다. 산란을 위해 바다물을 뒤로하고 고향의 민물로 들어와서 세찬 물길을 역류해

올라가는 연어 떼의 회유 장관은 꼭 한번 직접 한번 목격하고 체험해 볼 일인가한다.

연어가 회유하여산란에 성공하는 확율은 겨우 1% 정도이다. 나머지  99% 이상은 조업선,

낚시꾼들, 곰 등에게 잡히거나 회귀 도중 역류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자연사 한다. 자연사한

연어들은 해조들의 좋은 먹이가 된다. 연어들은 그렇게 자연의 사이클에 자신을 아낌없이

종속시킨다. 욕심과 아집의 틀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묵언의 교훈을 몸으로

보여주는듯 하다.


크루즈 선상에서도 연어는 회를 비롯 여러가지로 조리가 되어서 인기를 끌었다.

고급 연어를 먹어보지 못한 내 입맛에는 연어 요리가 무조건 맛이 있었으나 사실은 연어에도

대여섯 종류가 있다고 한다.

선상 부페에 나오는 연어는 붉은색으로 중간급 정도인 모양이다. 


연어는 크게 대서양 연어와 태평양 연어로 나누어지는데 알라스카의 태평양 연어는 다시

Sockeye, Coho, King, Silver, Red, Chum 등으로 구분된다.

냉동선의 발달과 빠른 운송수단으로 케치칸을 중심으로한 연어 공장의 활력은 쇠퇴하였지만

수많은 관광객들이 크루즈 선을 타고 쏟아져 들어와서 연어의 회귀와 산란의 장면을 필수

코스로 보고 돌아가니 연어는 항상 알라스카의 보물이 아닐 수 없다.

뿐만아니라 케치칸 마을에는 연어 어업이 호황이던 시절이나 황금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이

드나들던 골드러쉬 시절에 생성된 매춘부의 집들이 남아있는데 이 또한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금도 들어가보려면 5달러를 내야하는데 물론 구경에 그칠 따름이다. 연어의 회유와 산란에

더하여 매춘집의 산란이라는 유희성 농담이 덧대어질듯 하다가 만다.

저 엄숙하고 거룩한 연어의 의지와 생명력을 뇌리에 떠올리며 잡스러운 생각이 겹칠 겨를이 없다.

이제 다음 발길은 골드러쉬 시대의 배경이 되는 스퀘그웨이와 유콘지대로 향한다.


"세계 연어의 수도"라고 자랑하는 알라스카의 케치칸(Ketchikan) 시로 들어간다.






 연어의 도시답게 큰 상징물이 수로 옆에 서있다.


 



치어를 산란하고 금방 죽은 연어의 잔해, 치어들의 먹잇감이 되고자 최후를 맞는다.

장엄하다는 표현도 과장은 아닐까 싶다.


 


무지개가 아름다운 수로 아래로는 연어가 물줄기를 역류하여 올라가고 있다.




크루즈 선이 빙원 앞에 섰다.




연어의 고장, 케치칸 마을은 1930년대만 해도 200만톤의 연어 통조림을 만드는 11개의 공장이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돌리 하우스같은 매춘의 집도 성업이었다.



 1919년에 창업되었다면 유서가 깊다. 우리나라에서는 독립만세를 부르던 때였다.


  



"돌리의 집 건물력은 대략 1905년 부터인데 실제 매춘녀 돌리 아더(셀마)가 영업을 한 기간은

1919년에서 1940년대였다고 해설이 나붙어있다.

뱅쿠버와 주노, 그리고 피터스버그에서 떠돌다가 이곳에서 영업을  시작한 것은 셀마의 나이

방년 스무네 살 때였는데 남성들에게는 미혹을 주었으나 여성들과는 결코 잘 지낼 수 없었다는

술회가 나온다. 타고난 "써시(circe)" 기질인가싶다.



연어의 계류에서, 그리고 돌리의 집 가까이에서 "만물은 유전한다"라는 화두에 접하니 감상이

생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판타 레이(만물 유전)"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 모두 강물처럼 흘러간다.


 


 



 연간 200인치 가까운 강우량을 자랑하는 케치칸은 연어의 고장이자 세상에서 가장 많은 토템

기둥(Totem Poll)의 고향이다. 우리의 장승이나 바이칼 호에서 만났던 거대 목각 구조물과는 모두 한겨례이다.

하지만 바이칼의 원주민과 이곳에서 토템을 깎은 틀링킷 인디언들은 이제 모두 떠났다.

선녀와 나무꾼 같은 애절한 전설만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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