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의 글라스고우에서 웨일즈의 수도 카디프로 향하며 도중에 쉐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래트포드 어펀 에이븐"을 다시 한 번 재회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특히 올해는 쉐익스피어 서거 400주기가 되는 뜻깊은 때가 아니던가.
고향 이름이 "스트래트포드 어펀 에이븐"이라고 길게 된 것은 원래 "스트래트포드"라는
지명이 영국에 많아서 이곳을 특히 "에이븐 강가의 스트래트포드"라고 하게된 때문이다.
Stratford는 물론 미국에도 많다. 쇠나루(牛津), 그러니까 Oxford가 많듯이~.
쉐익스피어가 위대한 만큼 그에 따르는 전설과 미스터리도 수만가지이다.
우선 탄생일부터 1564년 4월 26일 혹은 23일이라고 하는데 이는 교회의 세례부에는 26일로
되어있으나 통상 출산 3일후에 세례를 받는 관행상 23일이 탄생일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렇게 보면 서거일과 탄생일이 똑 같다는 우연도 묘하다.
쉐익스피어는 18세에 26세의 여인, 앤 헤더웨이와 결혼을 한다. 그때의 관행으로 여성 26세가
과년한 편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연상녀이다. 그런데 당시 혼례일은 보통 약혼 교무금을 물고
1년이 지나서 치루어지는 것과는 달리 그는 몇달 후 결혼식을 부랴부랴 치룬다.
첫 딸의 출산이 아마도 속도위반, 과속이었던가 싶다.
아무튼 그는 잘 살던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 초등학교(이때는 "그래머 스쿨"이라고 하여서
라틴어 문법을 필수로 가르치는 생애 최초의 교육기관으로 우리의 서당 성격과 비슷하달까)
까지도 중퇴한 쉐익스피어가 연상의 여인과 눈이 맞은 과정도 또한 미스터리하다.
여러모로 천재성이 농후하였던가보다---.
처가는 부유하였다.
첫딸에 이어 아이 둘을 더 갖은 후, 쉐익스피어는 런던으로 혼자 올라가서 극작가로 성공
하지만 그 사이 오래동안 가족과는 이산상태로 지낸다.
우선 쉐익스피어의 처가와 생가부터 구경하고 나서 좀더 따져 볼 일이다.
"Lake District" 곧 "시인들의 호반 지역"에서 내려오다가 만난 쉐익스피어 고향 마을에서는 그의 처가 쪽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부유한 티가 역력하다.
처가 쪽, 그러니까 부인 앤 해더웨이의 집을 들러보고나서 쉐익스피어의 생가와 만년에 지냈던
집이 있는 시내로 들어서니 허물고 새로짓는 건물들이 눈에 띈다.
서거 400주년을 전후하여 관광객 맞기에 바쁘고 2만 7천명이 산다는 마을 전체에 활기가 넘친다.
폴스탑의 동상이 또한 그럴듯하다.
바보는 자신이 현명한 줄로 생각하고 현자는 자신이 바보인줄을 안다. (뜻대로 하셔요)
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564년 4월 26일~1616년 4월 23일
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시인 겸 극작가. 16세기 중반 영국 남부의 작은 마을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에서 태어났지만 정확한 생일은 물론 그의 생애 대부분이 의문투성이다.
그는 처음에는 배우로, 다음에는 옛 희곡 작품의 개작가로, 그리고는 독립된 극작가로 단계적인
발전 과정을 밟아간 것으로 보인다. 정확하게 언제부터 작품을 쓰기 시작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3부작 ‘헨리 6세’ 제1부를 내놓은 1590년경으로 짐작이 가능하다. 이로부터 그는 2편의
장시와 38편의 희곡과 154편의 소네트를 완성하였고 소재는 당시의 경향에 따라 역사·신화·전기,
옛 희곡, 중세의 로맨스 등에서 따왔으며 희곡의 종류도 당시의 유행에 따라 희극·사극·비극을
고루 시도했다.
셰익스피어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중세의 연극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평면적이고 진부한 인물
대신 햄릿, 이아고, 맥베스 같은 입체적이고 사실적인 인물을 창조함으로써 일대 혁신을 이룬
것을 들 수 있다.
쉐익스피어 미스터리
쉐익스피어는 실존 인물인가?
쉐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쉐익스피어가 쓰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제대로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사람이 그토록 위대한 작품들을 써냈다는 것은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뛰어난 학식과 글쓰기 능력을 가진 정체가 밝혀지기를 꺼려한
누군가가 ‘윌리엄 쉐익스피어’라는 이름으로 작품들을 쓴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진짜’ 쉐익스피어는 누구일까?
첫째로는 영국의 자연철학자로 ‘아는 것이 힘이다’ 등의 명언을 남긴
프랜시스 베이컨이다. 쉐익스피어의 희곡 속 철자들의 위치를 바꾸면 베이컨의
이름이 나온다는 주장도 있다.
또 다른 후보로는 그와 동갑이었던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다. 촉망받는 인기 작가였던
말로는 술집에서 사소한 다툼 끝에 결투로 사망했다고 알려져있다.
‘말로 작가설’ 지지자들은, 말로가 국가와 트러블을 일으키자 죽은 것처럼 속이고는
윌리엄 쉐익스피어라는 가명으로 계속 작품 활동을 해왔다고 주장한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쉐익스피어가 지혜롭고 영리하여 그 동안에 존재하였던 대본
들을 보완하고 각색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처음 런던으로 갔을때 극장 밖에서 귀족들이 타고온 말을 받아서 챙기는 역할, 즉
발레 파킹부터 시작하여서 마침내 극장 안으로 진급하여 들어가 대본 관리하는 역할
까지 승진을 한다. 이후 그의 천재성이 발휘된 것으로 보인다.
낡은 대본, 찢어진 대본, 망실된 부분, 배우들이 멋대로 개칠한 부분을 보충하다가
마침내 전면 개작, 창작의 수순을 거치지 않았겠는가.
우리가 읽은 것은 진짜 쉐익스피어일까?
너무나 유명한 쉐익스피어, 하지만 쉐익스피어 희곡 원작은 읽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에는 은근히 외설스러운 표현들이 많다. 욕설, 강간, 오쟁이진
남편, 상스러운 유머들, 잔혹한 살해방법 등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읽어온 많은 쉐익스피어 작품들은 적당히 순화되고 위생처리된 셰익스피어다.
먼저 저기 보이는 쉐익스피어 센터를 통해서 들어와 전시품과 영화를 보고 이어서 생가로
들어온다.
초기 방문자들이 창에 낙서를 했는데 월터 스콧 등 유명인들이 많다.
서까레가 우리 시골집과 닮았다.
엘리자베스 조의 이 사람들과 기념 촬영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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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 관람을 마치고 거리로 나왔다.
튜더식 건물이 인상적이다.
이 마을의 부유한 상인이었던 토마스 로저스의 손자 존 하바드는 미국에서 하바드 대학을 세웠다.
채플 스트리트에 위치하고 있는 뉴 플레이스는 런던에서 돌아온 셰익스피어가 1597년부터
1616년 사망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1623년 셰익스피어의 아내 앤이 죽음을 맞이한 것도
바로 이곳에서 였다.
1597년 셰익스피어의 주요 활동 거점은 아직 런던이었지만 스트래트포드의 아름다운 이
저택을 60파운드에 매입했다. 그가 이곳에 완전히 정착해 살게 된것은 1610년에 이르러서
였다.
그 당시 뉴 플레이스는 스트래트포드에서 두번째로 큰, 유일하게 벽돌로 지어진 저택이었다.
거처였던 곳은 거의 파손되어 있는 등 지금에 와서는 당시의 웅장했던 저택의 모습을 다 찾아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과거에 그려진 그림을 통해 앞뜰과 뒤뜰에 펼쳐진 정원과 과수원, 헛간
등을 포함해 얼마나 화려한 저택이었는지 짐작해볼 수는 있다.
원래 서거 400주년에 맞추어 복원을 마칠 계획이었으나 현재도 공사중이었다.
오른 쪽으로 공사장 가림막이 조금 보인다. 400주년 해에 마칠지 못할듯 싶다.
현재 남아있는 내부는 주로 도서 중심으로 기념품을 팔고있었다.
쉐익스피어가 다니다 중퇴한 초등학교
그래머스쿨은 라틴어 문법을 주로 가르친 당시의 초등학교, 우리의 서당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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