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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좋은 만남

원평재 2016. 12. 2. 14:23













발칸에서의 불가리아의 위치는 서진하는 동방 민족의 침략과 이슬람 종교의 물결로부터

유럽을 방어하는 최후의 보루같은 입장이었다. 그리고 그 최전선에 불가리아의 벨리코 투르노보

성이 있다. 당연히 이 성채는 역사적 유적과 이야기가 산재해 있는 곳이 되었다. 대부분은

파괴된 폐허의 형태로---.

앞선 이슬람 문명이 마침내 기독교 문명에 굴복하자 발칸 제국은 유럽제국의 필요와 요망에 따라

산산조각으로 분리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평화가 찾아온다. 그리고 부서진 성벽과 유적이 재건

되면서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고 돈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 과정은 말로하면 쉽지만 엄청난 피해

가 수반된 사건들이자 피어린 전쟁의 역사였다.

앞으로 보스니아 쪽을 다니며 더 참담한 형상을 보게 되지만 일단 이 나라 곳곳에도 전투의

상흔은 아직도 남아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불가리아는 키릴 문자를 창제한 국가이다. 불가리아 정교와 함께 키릴 문자는

수백년 동안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국가적 정체성을 유지한 원동력이었다 .

이렇게 깊고 긴 역사는 이제 관광자원으로 급속히 개편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관광 인프라 개발에는 고칠 점들이 많았다. 사실 루마니아에서 불가리아로 넘어오는

데에도 한시간 반 가량 국경에서의 기다림이 있었다. (2년전 이야기이니 지금은 개선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낭비가 있다니---.

처음에는 공포감까지 생겨서 사진 찍기도 겁이났다. 국경에서는 사진을 찍지 말라는 경고도

있었다. 일곱 나라에서 비슷한 낭비의 경험을 하면서 나중에는 국경 사진을 그냥 막 찍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내 등뒤에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불가리아 관광은 크게 수도 소피아와 나머지 지역인 벨리코투르노보 성 지역 등으로

나눌 수 있었다.


이슬람 세력을 최전선에서 막아낸 벨리코투르노보(Veliko Turnovo)성과 차르베츠 요새



벨리코 투르노보성으로 들어가려면 제1성문과 제2성문을 통과해야한다.

첫번째 성문은 죄수들을 그 위에서 떨어뜨려 죽이는 곳이라고 한다.

만약 죄수가 첫번째 낙하에서 죽지않으면 용서되는게 아니라 다시 떨어뜨렸다고---.

 



 

벨리코투르노보 지역에는 차르베츠 성이 방어진지로 구축되어있다.

 

 

13세기 불가리아왕국의 궁전을 방어하기위하여 만든 성곽이다. 주변을 얀트라강이 휘감고 돌아

자연적인 해자를 이루고 북쪽으로는 함준한 산악지형으로 되어있어 천혜의 요새였지만,

1393년 오스만제국에 의하여 마침내 점령되었다

차르베츠에서는 이곳을 다스린 차르들이 차례로 22명이나 살았다.

러시아의 차르와 같은 이 명칭은 원래 시저에서 유래하여 황제를 지칭한다.

카이사르, 체사르, 샤를르, 카를도 모두 마찬가지 말이다.

 





 

 

불가리아의 지정학적 위치가 눈에 들어온다. 

 

공성과 수성에 사용되었던 중세의 병기들

 


 

멀리보이는 자연 암벽이 일부러 쌓은 성벽같다. 고구려와 발해의 옹성과 비슷한 느낌이다.




 


 

 




성모승천 교회

 

1985년에 대대적인 보수를 마친 성모승천 교회는 차르베츠 유적 중에서 유일하게 완벽한 모습

으로 남아있는 건축물이다. 물론 오스만 터키인들의 지배와 20세기 초의 지진으로 많이 훼손

되었지만.

성당 내부의 천장과 벽에는 1393년부터 500년 간 계속된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던 고통스러

웠던 과거를 현대작가인 테오판 소케로브가 그려 1985년 기증한 그림으로 가득한데,

이 그림은 불가리아의 현대 종교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테오판은 그의 제자들과 함께 2년에 걸쳐 교회의 내부 전체에 그림을 그렸는데, 성화라기 보다는

불가리아의 역사적인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려내었다.


 


 



샘은 어떤 성채에서나 기본이다성의 오른쪽으로는 벨리코 투르노보 대학이 멀리 보였다.






 

  

 관광지를 다듬는 일꾼들

 

발칸 내전 때의 흔적들이 군데군데 있다.

 

 

 

갑자기 앵두나무 소녀가 나무에 매달려있다.

가난한 시골 소녀가 앵두를 따다가 아시아 관광객들을 만나서 한웅큼씩 앵두를 나누어 주었다.

그저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검은 머리 소녀의 얼굴이 문득 나타났는데 조금 슬프고 또 무섭게도 보였다.

손목의 색띠가 예쁘다.

옛날 한국 동란 때의 생각이 난다. 아주 어렸을 적, 미군이 후퇴하며 우리 마을에 들렀다.

트럭이 끝간데 없이 밀려있었는데 그때 처음 본 백인 병사 하나가 나무 전봇대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아미망 아미망 아마미오"하고 아리랑을 불렀다.

발칸 내전으로 전쟁의 상흔이 여기저기 남아있는 이곳에서 뜬금없이 그때 생각이 떠올랐다.

고추가 많이나고 "불가리스"는 없어도 "불가리쿠스"라는 유산균 먹거리는 유명하다는 이곳에

빨리 재건이 이루어졌으면 싶었다.



Tchaikovsky, Marche Slave Op.31

차이스키 / ‘슬라브 행진곡’

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


Mikhail Pletnev, conductor

Russian National Orchestra

2005.10.26

 

Pletnev conducts Tchaikovsky ‘Marche Slave’




러시아군은 같은 민족인 세르비아를 도와 투르크와의 전쟁에 뛰어들었다.


Mitropoulos conducts Tchaikovsky ‘Marche Slave’

Dimitri Mitropoulos conductor

New York Philharmonic

1957.11.11


불가리아 그리비차 지역에서 벌어진 투르크군과 러시아군의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