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바위 얼굴 --러쉬모어 대통령상과 인디언 추장의 석상--
(시) 큰바위 얼굴
러시모어 관광길에 나섰어
네명의 미국 대통령이 양각된 사우스 다코타의 블랙힐즈 높은 산록
록키의 지맥을 깎고 파서
조지 워싱턴, 제퍼슨, 링컨, 루즈벨트를 얹고
북미주 대륙을 멀리 조망하니 대평원의 인디언 수족들도 기를 못 피는가
아니야 거기서 불과 24킬로 떨어진 곳에서는 60년이 걸려
얼굴 하나 겨우 일구었다는 거대한 크레이지 호스 추장이
상기도 한치 한치 마상의 형상을 다듬고 있으니
땅주인의 원혼은 광야에서 말달릴 날을 곱고있나보네
러쉬모어 대통령 조각이 14년이 걸렸다는데
백인과 맞싸워 땅을 지키던 추장의 형상은 백년이 걸려도
조급할게 없다나보네
이곳과 맛닿은 네브라스카에는 윌라 캐더가 그려낸 개척민들의
피어린 이야기도 있지만
진정한 땅의 주인은 누구인가 어디있는가
러시모아에도 크레이지 호스의 대형 얼굴에도
큰바위 얼굴은 없어
내더니엘 호손이 글 바탕으로 삼았다는
뉴햄프셔의 화이트 마운튼에 있던 자연산 대형 얼굴에서도
2003년 뇌우 따라 코가 떨어져나갔지만
진정한 큰바위 얼굴은 그래 우리의 마음 속에 있어
환경을 파괴해 마지않은 조탁의 얼굴들이 아니고
오래 심성을 닦아내어 얼굴에 피어낸 피그말리온 효과
아, 마음 영그는 여정
미국 중서부 대평원을 탐방하던 발길은 이제 사우스 다코타 주, 러쉬모어의 저 유명한 미국
대통령 석상을 향한다. 록키산맥의 지맥에 있는 4명의 대통령 석상은 위대한 미국을 만든 대표적
인물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거대하게 양각된 모습은 장관을 이룬다.
하지만 입장과 말을 바꾸어 보자면 원래의 땅 임자 인디언들에게는 가장 원수같은 존재일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곳으로부터 24킬로미터 쯤 떨어진 곳에는 백인들과 가장 처절한 전투를 벌였던
수족 인디언 추장 크레이지 호스의 석상도 지금 공사중이다. 미국 연방정부나 지방 자치단체의
보조도 거부하고 오로지 성금에만 의존하는 이 거대한 구조물의 완성은 기약이 없다.
크레이지 호스의 얼굴만 파는데에 60년이 걸렸다고 한다.
네명의 대통령 석상이나 인디언 추장 크레이지 호스의 구조물들은 모두 큰바위 얼굴이라고
불릴만하고 또 그렇게도 불린다. 하지만 원래 나다니엘 호돈이 쓴 단편 "큰바위 얼굴"의 배경
인물상은 뉴 햄트셔 주의 화이트 스톤에 있는 자연석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2003년도에 뇌우를
맞아 코가 떨어져나가서 예전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위용을 자랑한다. 아니, 단편 소설에
나오듯이 큰바위 얼굴은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 꿈을 간직하는 한 우리
모두는 각각 큰바위 얼굴이 아니고 무었이랴.
아무튼 네브라스카에서 사우스 다코타로 가는 중간에 우연히 찾은 개척자 소설가 윌라 캐더의
고향을 여정의 시작으로 하여 위에서 말한 모든 일정을 파노라마로 엮어본다. 글의 끝에는
이 노정에서 얻은 기행시도 한 편 달아본다.
네브라스카와 사우스 다코타 등, 중서부 대 평원지역에는 바람도 많이 불고 또 동굴도 많다.
사우스 다코타에서 인디언 추장 "크레이지 호스"의 조각상 제작 현장과 러쉬모어의 미국 대통령
석상을 찾아가는 도중에 뜻하지 않게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미국 여류 소설가로는
파이어니어 였던 "윌라 캐더"의 소설 작품을 기리는 안내판을 마주하게 되었다.
정말 뜻밖의 소득이었다.
윌라 캐더는 원래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에서 이민을 온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조실부모한다.
특별히 아버지는 꿈이 많은 사람으로 준비없이 낭만적 삶을 추구하여 대평원 지대로 이민을
왔으나 바람많은 이 지세를 이길 역량은 없었다. 버지니아로 가서 성장한 윌라 캐더는 어린
시절을 보냈던 네브라스카의 대학으로 스칼라쉽을 받아서 다시 오게 되고 졸업 후에는 교직과
언론에 종사하다가 전업작가가 된다.
오늘날 물질 문명으로 인간의 삶의 터가 파괴되는 현실 속에서 윌라 캐더가 그린 대평원의
개척자들의 삶, 특히 대지의 지모신 같은 여성 주인공들은 이제 <에코 페미니즘(환경 여성주의)>
의 전형으로 재조명되고 다시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아이러니컬 하게도 이 땅을 오래 간직하고
오래 함께 호흡을 한 진정한 주인들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이었다.
백인들은 이 땅에 들어오면서 초기에는 물소, 버팔로로 부터 단지 장신구용 뿔을 채취하기
위하여서 인디언들의 양식을 절멸시킨 죄를 지었으나 집단적 저항에 부딛치자 여러차례의 패전
끝에 강화조약을 맺고 화해한다. 하지만 곧 골드 러쉬가 터지면서 인디언들과의 약속은 휴지
쪽이 되고 그들을 내몰아 절멸시킨 땅 가운데의 하나가 바로 이 중서부 대평원 지대이다.
그 개척시대의 가장 큰 상징적 희생자가 "크레이지 호스"였고 오늘 날은 약 24킬로 미터
가까이에 있는 러쉬모어에 백인 대통령 네명의 얼굴이 자연을 파괴하며 양각되어 있는 데에
저항하듯, <크레이지 호스>의 대 기마상 공사가 정부의 도움없이 진행 중이다.
지금 얼굴 하나를 겨우 깎아냈는데 약 60년이 걸렸다.
대통령 얼굴이든 크레이지 호스 얼굴이든 모두 록키 산맥의 준령을 깎아 만들었으니 모두 자연
파괴에 다름아닌데, 이 일대의 땅들은 <블랙 힐즈 대 산림지대>로 불리워진다.
크레이지 호스가 저 유명한 인디언 토벌대장 커스터를 죽인 곳도 여기이다.
"크레이지 호스"의 얼굴을 파내는 작업이 멀리 바라보이는 캠핑 그라운드에 들러서 사진을 찍었다.
얼굴 상 앞 면만 겨우 깎아내는데 60년이 걸렸다는게 아닌가---.
다이너마이트 등의 폭약을 쓰는 데도 말이다---.
공사의 상세한 진행사는 자료가 너무 많아서 이 곳에서는 생략하고 "러쉬모어"와 대비하여 그
의미만 잠시 명상하며 지나가고자 한다.
생각해 보자,
윌라 캐더가 바람 많은 대평원에서 평생을 수고하는 가운데 있었던 촌부 '안토니아'를 고난과
성취라는 양면 가치로 아무리 예찬했더라도 이 땅은 원래 인디언의 땅이었다.
지금은 또 이 땅에서 비육 가공된 쇠고기가 우리의 식탁을 넘보고 우리는 이 중서부 대평원에
현대와 기아의 자동차를 쏟아붓고 있다.
또 '크레이지 호스'가 아무리 거대한 규모로 블랙 힐즈에서 양각 되고 있어도 백인들의 자연 파괴
에 대항하는 또다른 자연파괴의 행위가 되어 인류사의 처연했던 한 시대에 대한 씻김 굿이 될는지
---, 보상이나 회복될 수 없는 슬픈 전설이 귓전에 바람 소리가 되어 잉잉거릴 따름이다.
이 사진은 뉴 햄프셔 주, 화이트 마운튼에 있는
큰 바위 얼굴의 코가 떨어져 나가기 전 모습이다. 그때 찍은 사진이다.
전날 저녁, 멀리 러쉬모어를 바라보는 즈음에서 개스가 거의 다 떨어져 조심조심 운전하여
찾아온 '키 스토운'의 언덕 위 호텔에서 일박을 하고 아침에 나가보니 밤새 비가 온 뒤끝의 록키
산맥 삼림 공기는 청정하고 시야도 좋았다.
산 중턱의 괜찮은 호텔이라서 멀리 대통령을 새긴 돌 산 경치도 쉽게 눈에 들어왔다.
대통렬 얼굴 아래 동네, 키스토운 거리~~~.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루이지아나를 사들인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3대), 남북전쟁를 승리로 이끌고 흑인 노예제를 혁파한
에이브럼 링컨(Abraham Lincoln 16대), 파나마 운하 구축 등으로 미국의 지위를 세계적 위치에
올려놓은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velt 26대) 등, 4명의 대통령 초상이 산정의 거대한
바위에 새겨져있다.
이 지역의 지질은 10,000년 동안에 1인치 정도 밖에 마모가 되지 않는 단단한 화강암이어서 이런
조각이 가능하다. 1924년 착수되어 1930년 워싱턴의 흉상이, 1936년 제퍼슨, 1937년 링컨의
얼굴이 완성되었고, 마지막 루스벨트의 얼굴을 조각하던 보글럼은 1941년 세상을 떠나 그를 이어
그의 아들인 링컨 보글럼(Lincoln Borglum)이 마무리를 하였다.
돌 산 뒤쪽에 인디언 마을이 있어서 빨려들어갔다.
인디언 핏줄의 이 레인저는 은근히, 아니 아주 명백하게 백인의 인디언 지배사를 비판하는
시각의 설명을 하여 주었다. '버팔로'도 인디언 표현이 아니고 아프리카의 어떤 물소 호칭에 덧댄
것이라서 분노한다 하였고 '인디언 캠프'는 원래 호칭이 '티피(Ti Pi)'라고 종이에 적어주기도
하였다. '남북-다코다 주'도 원래 라코다, 나코다 등등의 인디언 표현 중의 하나인데 아무튼 왜곡
되었다고 하였다.
인디언이 몽골 반점 때문에 아시아에서 왔다는 학설도 맞지않으며 구태어 시원을 따지자면 이 곳
어디 신성한 장소에서 자연스레,어떤 정령(High Spirits)에 의해 탄생한 것이 올바른 역사관
이라고 하였다.
러시모어 정상에서 내려와 이제 키스토운을 떠나서 래피드 시티로 방향을 잡는다.
배드랜드라고 하는 황량하여 더욱 매력이 있는 지역을 탐방하려는 여정이다.
(다음호에는 희안한 땅 배드랜드로 안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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