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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의 상념

원평재 2018. 9. 2. 15:24






두어달 나갔다 들어왔더니 출판물들이 과장하자면 산더미같네요.

이미 시간을 놓친 글들도 딩굴지만 욕심에 겨워 하나씩 올려볼까합니다~~~^^.




팔월의 상념

                                                                                                                                                                                     

팔월은 광복절의 달이다. 일제 강점기 36년의 질곡세월을 보내고 독립을 쟁취한 달이다. 독립은

나라안팎의 독립투사들과 3-1 만세 운동으로 다진 민족정기가 승화하여 이룬 민족사의 승리

기록이지, 자다가 굴러들어온 떡은 결코 아니다. 지속적인 독립운동과 독립투쟁, 그리고 독립군의

존재가 없었더라면 열강이 우리의 독립을 인정하였을까. 슬그머니 중국과 러시아의 변방

자치주나 위성국이 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민족이 있다고 반드시 국가가 성립되지는

않는다. 중동의 쿠르드 족이나 팔레스타인의 역사가 이를 명증한다.


우리가 독립을 얻은 것은 이토록 선열들의 피나는 노력의 결실이었지만, 거대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맞부닥뜨리는 국제 정세에서 국토가 양단되며 해방을 맞게 된 것은 땅을 치고 통탄

일이다. 이 부분에서 소련군은 해방군으로 들어왔는데 미군은 점령군으로 들어왔다고

그들의 포고문과 군령의 용어풀이로 왈가왈부하는 일은 모두 부질없다. 중남미와 중동에서의

미국의 패권적 행태나 동유럽에서의 구소련의 만행, 그리고 최근 중국의 팔방공정을 보면 자강

밖에는 민족적 번영추구에 다른 길이 없다. 자강은 이제 강력한 군대를 조직하는 일이 아니라

첨단 기술력의 끊임없는 개발과 혁신, 친환경적 국제 서비스업의 구축과 운영 등등, 앞서고

뛰어난 발상의 전환이라는 점도 통찰해야겠다.


근세사에서 우리가 한 순간 방심한 사이, 열강의 각축장이 되었고 교활한 일제의 동아시아

세력판도 형성에 휩쓸려버렸지만 통일대업의 조건은 여러 군데로 부터 나온다. 좀 느닷없이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중의 하나가 한글이라는 존재이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 반포하고

이후 끊임없이 말글살이(언어생활)로 전승 되지 않았더라면 남과 북은 벌써 남남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틀림없이 북쪽은 동유럽이 주로 쓰는 키릴 문자를 채택했을 것이고 우리는 서유럽의 라틴

문자를 쓰게 되었을 것이다. 동유럽 슬라브 민족의 판도를 보면 이런 상상이 터무니없지 않다.

거대 슬라브 족들은 지리적 조건 등으로 인하여 키릴문자와 라틴 문자를 지역에 따라 따로 쓰면서

마침내 이민족처럼 갈라지고야 만다. 가까운 예로는 몽골 공화국이 키릴 문자를 쓰는 반면

내몽골은 한자를 쓰면서 민족 정통성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러나 중앙아시아 곳곳에서 발간되는 고려인들의 한글신문, 남북미주의 방방곡곡에서 문득

발견하는 “** 마트” “** 교회라는 한글 간판은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고 우리가 한겨레임을

자각하게 한다. 한글은 유태인들의 경전 못지않게 민족 신앙이자 그 모태가 아닌가 싶다. 작금

북한과의 평화공존 나아가서 통일에의 지향이 꿈만이 아닌듯한 기저에도 이러한 역사적 문화적

유산이 있음을 잊지 않아야할 것이다.


815일은 광복절이다. 이날의 명칭은 처음 독립기념일, 독립절, 해방절 등으로도 불리다가 최종

광복절이 되었다. 북쪽에서는 해방 기념일로 부르는데, 그 쪽 사정으로는 태양절과 구구절 등

보다 더 중점을 두는 기념일들이 많아서 의미축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우리가 독립문, 독립기념관 등을 두면서도 독립절이라는 명칭을 피한 이유는, 유구한 독립의

역사를 둔 나라가 아프리카 신생 독립국과 같은 이미지의 어휘를 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해방절은 압제자가 무슨 시혜를 하듯 자유를 준 꼴이 아니겠는가 등등이 감안된 결과라고 본다.

광복절은 광복의 뜻이 잃었던 나라와 주권을 도로 찾음”(어문각 한글 사전)이듯이 자의적 투쟁을

거쳐서 나라를 되찾은 의미에 딱 맞다. 그렇다고 독립이라는 이름이 붙은 다른 곳들을 새로 손

볼 필요야 있겠는가. 미국의 독립기념일은 인디펜던스데이라고 하지만 흔히 ”74“(July 4th)

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편하게 익은 말은 버릴 일이 아닌가싶다.


광복절과 더불어서 사할린에 유폐된 우리 동포들을 생각하게 된다. 징용으로 끌려간 4만 여명의

동포들은 종전이 되었으나 일본의 외면으로 무국적자가 되어 사할린에 남게 된다. 이분들이 양력

815일이 되면 추석날짜와 같다는 데에 착안하여 떡을 빚고 차례를 지내며 아울러 해방이 된

날이라고 하여 해방절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주정부에서도 이 행사에 보조를 하니 이윽고 이웃한

타 인종들도 참여하여 지금은 씨름과 널뛰기 등이 필수인 해방절 잔치가 되었다고 한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할지 모를 일이다. 광복절이든 해방절이든 유즈노 사할린스크와 코르사코프 두 곳에

주로 모여 사는 이 동포들을 어찌 잊겠는가.


동국세시기의 8(그러니까 음력 7)을 들여다보면 칠석과 백중이 들어있다. 칠월칠석이면

견우와 직녀가 눈물의 재회, 상봉을 하는데 아마도 이때가 되면 비가 적당히 내리는 자연현상을

나타낸 것 같다. 때로 이 눈물은 동아시아 특유의 태풍이 되어 몰아치기도 한다. 한편 백중은 백종

(百種)에서 나온 말로 민간에서는 백가지 과일을 추수하여 조상들에게 간단히 제사 의식을 지내는

행사인데, 이때로부터 팔월 한가위 추수절로 이어지는 시발이기도하다. 이 역시 태풍의 피해가

없거나 최소가 되어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잔치가 아니겠는가. 추수란 항상 그렇게 예사롭지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판 세시기를 보면 더위가 극성인 이 한 달은 귀신이 활개를 치는 달이니 멀리

다니지 말고 집을 지키라고 한다. 동양적 보신안전책 인지도 모르겠지만 서양에서는 여름 한철을

바캉스니 방학이니 하여서 성인들은 집을 비우고 휴가를 떠나며, 학생들도 새로운 모험에 도전

하는 달이다.


이슬람의 8월은 라마단이 거의 끝나가는 달이다. 필자는 이슬람에 대해서 어떤 종교적 견해도

갖지 않지만 라마단이 내건 금식의 정신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때로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즐기는 삶을 지복의 상태라고 여기지만 사실 이 지상에는 얼마나 굶주리는 사람이 많은가,

아니 절대다수가 풍요롭다 할지라도 우리의 푸른 행성, 지구는 과연 얼마나 그런 풍요를 지탱해

줄 수 있겠는가. 아니 그 풍요가 반영구적이라는 가설이 성립될지라도 풍요가 빚는 욕망, 그 과잉

현상은 억제와 조절이 필요하지 않을까.

영어로 8, 즉 오거스트(August)는 초대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죽은 달을 기려서 붙이게 된

이름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워낙 위대한 황제라서 소문자로 august라고 쓰면 장엄하다는 뜻도

된다. 신학자인 성 어거스틴(Augustinus)과는 다른 사람이다. 8월이 뜨거운 것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엄청난 에너지, 그 위대함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면 아열대 기후가 되어버린 우리나라의

여름도 다소 견디기가 쉽지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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