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일스의 카디프 성에서 일어난 이야기
영국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가 찬미해 마지않았던 와이(Wye) 강을 건너서 웨일스
지방의 남쪽 지역으로 내려갔다. 카디프 성이 있는 웨일스의 수도 카디프 항구를 목적지로
삼았기 때문이다.
카디프 성은 원래 1세기경 로마인들이 쌓았으나 그들이 물러가고 나서는 웨일스 지역
켈트인들의 민족적 구심점이 되었다. 근대사에 들어와서 카디프는 대서양 항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여 특히 미국과의 교역이 왕성했었는데 지금은 많이 쇠퇴하였다.
미국 극작가의 원조 유진 오닐의 최초 단막극의 이름은 "동으로 카디프를 향하여"였는데
20세기 초 양국 간의 빈번한 왕래 항구라는 배경이 내재해있다. 뉴욕에서 출항한 배의
영국행 방향은 바로 "동으로 카디프를 향하여"였고 그 항해는 세찬 파도와 해무로 인하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닐은 이 항해를 인생의 고난과 극복의 여정으로 삼아서 작품을
썼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시절 연극운동을 하면서 오닐의 이 단막극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우선 감당하기가 쉬운 단막극에다가 구하기 힘든 여배우가 이 극 중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여성 선원은 드물 것이다.
카디프로 향하는 고속도로의 톨게이트가 주말이라 너무나 붐볐다.
와이 강상에도 고압 철주가 지나가서 무덤 속 19세기 낭만파 시인들의 심기는 편치 않을
것이다.
강을 건너오자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웨일스어가 영어와 병기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영어의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웨일스 어를 아는 사람은 60 퍼센트도 되지 않고 영어가 기본적으로 통하는 지역인데도
이곳 사람들의 고집이 대단하다. 인구는 유입인구의 증가로 약 300만 명이라고 한다.
이렇게 불편한 언어생활도 기꺼이 감내하고 살아가는 이들의 고집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열 수
있으랴
카디프 시청이 나타난다.
서둘러 카디프 성으로 향하였으나 시간이 넘어버렸다. 정말 1분밖에 넘지 않아서 사정을
하였으나 “바위 돌에 대침”이라는 우리 속어가 생생하다. 그것도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을
했는데도 말이다.
결국 성내를 다 보지는 못하고 입구에서 내부를 일별할 따름이었는데 그럭저럭 눈요기는
되었다. 앵글로 색슨 족에게 아무리 압제 당한 DNA가 남아있다 할지라도 멀리서 온 손님을
이렇게 박대하는 건 좀 지나친듯하다.
고집퉁이들이다. 환영 간판이 무색하다.
이제는 성 앞, 하이 스트리트와 세인트 메리 스트리트에서 눈요기나 하는 수 밖에 도리가 없다.
“오닐 술집” 앞에 선다. 워낙 켈트 족들에게는 “오닐”이라는 성씨가 많아서 유진 오닐을 염두에 둔
작명인지는 모르겠다. 원래 “O’”는 “of”의 준말로서 닐 가문의 아무개라는 뜻이라고 한다.
프랑스에서 샤를르 드골의 “De”가 골 가문의 샤를르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간판의 웰시 Welsh는 웨일스 인을 뜻한다. 헤밍웨이의 마지막 아내 이름이 메리 웰시였다는
사실이 문득 생각난다. 그녀는 웨일스 혈통이었다.
택시 표지도 이렇게 이중적이다.
식당 간판을 "The Prince of Wales" 영국 왕세자라고 달았다. 영국이 고집스러운 웨일스
지방을 함락하고 평정한 것이 얼마나 힘들고 또한 기쁜 일이었으면 왕세자의 이름 앞에 이런
명칭을 병기했을까 쉽게 이해가 가는 이날의 체험이었다.
마침내 좋든 싫든 카디프 시내에서 일박을 하고 카디프 항 인근 홀리헤드 항구로 이동하였다.
타고 갈 페리 이름이 여기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율리시즈”였다. 제임스 조이스가
율리시즈를 쓴 아일랜드의 더블린으로 이제 항해할 참이다.
(기행 시) 동으로 카디프를 향하여
웨일즈의 수도 카디프 항구로 왔어
유진 오닐이 쓴 첫 단막극 제목의 그곳 말이야
때 묻은 거리에는 해묵은 오닐 술집도 있더군
카디프 항으로 향하는 배는 해무에 갇히고
젊은 선원은 절망을 겪지
삶은 언제나 해무에 갇힌 듯 보여
오닐은 신산한 해양 단막극들을 쓰고
금방 이름을 날리지만
끝내 해무 속에 갇힌 영혼으로 살아가지
여관에서 나서 여관에서 죽지
그래도 삶은 쓸만하고 살만해
차를 타고 카디프 항으로 오며
뜬금없이 리버풀 길 표지를 보았어
비틀즈의 고향 말이야
뉴욕에 온 존 레논은 가슴에 총 맞기 직전에도
헤이 주드를 불렀지
극복하고 참아내자 인생을
그런 희열 절규 말이야
해무에 갇힌 게 삶일지라도
표지만 간직하면 끌고 갈만할 거야
레논을 펄럭이며 오노 요코는 시방도 항해중이야
필자; 국제펜 국제교류위원장, 현대시인협회 국제문화위원장, 서초문협회장, 건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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