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라지오 소리가 요란한 퀴퀴한 실내에는
얄궂은 장식의 큰 거울이 하나있고 두 사내가
첫 손님도 없는 썰렁한 분위기에서 석유 곤로에 불을
부치고 있었다.
들어가며 힐끗 본 게시물에는 "老人, 幼-- 三元"하는
구절이 있어서 일단은 유의하였다.
"얼마요?"
내가 우리말로 무조건 냅다 소릴 질렀다.
여기에서는 일단 소리가 커야 기선을 제한다.
소근거리는 문화 톤으로는 아무래도 대화에 힘이 든다.
주인인듯한 사람이 분명히 "산유안(三元)"어쩌구 한것
같은데 보조 복무원이 얼른 다섯 손가락을 펴보인다.
오원을 내라는 것이다.
바가지를 2원어치 더 써봐야 우리돈으로 650원,
그러니까 260원을 더 내는 셈이고 특별히 내가 노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보는 수준 높은 안목이 갸륵하여
우리의 계약은 쉽사리 체결 되었다.
머리를 깎는 순서나 기술이야 한-중의 차이가 있으랴.
다만 정성과 시간을 다하는 품새가 서울 보다 갸륵하였다.
조발이 끝났다는 신호에 눈을 떠보니 내 얼굴은 분명 아니고
거기 안면이 좀 있는 듯한 중국 사람 하나가 거울 앞에
덩그렇게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내가 환골 탈태가 아니라 조발탈면의 사내가 된
것이다.
"면도는 왜 안해주나요?"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줄을 알면서도 내가 손 시늉을 하며
소릴 질렀다.
"어? 면도?"
자기들 끼리 낄낄 거리며 별놈 다 보겠다는 투였다.
여기도 우리나라처럼 이제 머리칼만 커트하고 나머지는
각자 해결의 시대로 접어드나 보았다.
아주 예전에 미국이 그렇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이상한
녀석들도 다 살고있구나 싶던적이 있었는데,
이제 세계화는 이 구석까지?
그래도 내가 이 사라져가는 연변의 풍습을 이 한몸 던져
체험하고 증언키로 만방에 고하지 않았던가.
면도를 독촉하는 내 시늉에 보조 녀석이 가죽 혁대에다
크고 긴 전통 면도칼을 슥슥 갈기 시작한다.
나는 내 목을 슬슬 만져보았다.
그러나 정작 낭패를 느낀 것은 이런 상스럽지 않은 잡념
때문이 아니라 비누 거품을 내 코 아래와 턱에다가
쳐바르면서 부터였다.
고리타분한 꼬랑내가 천지를 진동하며 내 폐부에
들이찼으나 참는 일 외에 다른 방도는 천지간에 없었다.
다만 정성을 다하여 밀어대는 면도의 솜씨는 우리나라에서
이미 수십년전에 사라진 추억어린 친절과 기술 세계에
속하는 차원이었다.
대리석 조각 작품을 깎아내듯이 공들인 작업 끝에
내 얼굴은 거푸집 속에서 갓 빼낸 석고상처럼
깨끗해졌으나
꼬랑꼬랑한 냄새는 천지를, 아니 작은 "리발 점" 공간을
가득 채웠다.
까다로운 손님의 주문을 모두 받아주겠다는 듯이 머리를
씻기는 시늉을 그들이 했으나 나는 정중히 사절하고
오 원을 지불한 다음 밖으로 나왔다.
아니, 나오기 전에 나는 이 역사 박물관에나
재현해 둘만한
풍경을 디카에 담았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하던 이 사내들이 기이한 디카를
신기해하면서 렌즈 앞에 즐거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 사람도 초상권이 있겠지만 사진 찍는다는 표시에 거절하지는 않더군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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