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힐리야, 옛땅! 연변과 만주 벌판

방천(防川) 일기(1)

원평재 2005. 4. 18. 07:34

방천(放川) 일기

 

(두만강 방천에서 본 조중 철도---. 왼 쪽은 또 러시아 땅이다. 사진은 중국 땅에서 찍었다.)

 

방천이라고 하면 어릴 적 내가 자란 "낙동강 방천"도 있고 중등학교 이후의

고향 D시에 있는 "수성 방천"도 잊을 수 없는 곳이다.

그 방천이 중국의 동북부 조선족 자치구의 동쪽 끝 훈춘 시에서도

한참을 더 달려서 중국, 러시아, 북한의 국경이 맞닿는 곳,

두만 강변에도 또한 존재하고 있었다.

 

(훈춘 해관 단체 사진에 필자도 까메오 역할로 들어가 있습니다.)

 

벌써 10년도 더 전에 유엔개발계획(UNDP)아래 중국의 훈춘, 러시아, 북한의 나진,

선봉을 잇는 황금 삼각지(Golden Triangle)로 각광을 받은 중국 쪽 지역이 바로

방천인 것이다.

 

이곳을 지난 16일 과기대의 교환학생 약 80명을 인솔하여 다녀오게 된 것이다.

중국에서 못다 해보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 다양한 음식을 다 먹어보지 못하고 넓은 땅을 다 밟아보지 못하고 엄청난

한자 한문을 다 통달해보지 못한다는데, 우루무치, 둔황까지 가보았지만 내 어이

훈춘의 방천을 가 볼 기회가 또 있으랴.

 

(중국 땅 방천에는 아직 홍매화가 피지않았다. 그 너머 두만강과  북한 땅이---.)

 

토요 아침 8시에 캠퍼스를 출발한 대형 버스 두 대에는 우리나라에서온 교환학생,

중국의 오지에서온 소수 민족 교환학생, 한족과 조선족으로 구성된 본부 요원,

그리고 마침 과기대에 1년 기한으로 연수를 온 동아일보, 문화 일보, 영남일보

기자가 합류하였다.

러시아와 동유럽, 몽골 학생들은 버스 사정으로 다음 기회를 기약하였다.

 

(훈춘 시에서는 먼저 해관, 우리의 세관 쪽을 가보고 시내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고 다시

금 삼각지라고 하는 방천으로 향하였다. 서로 방향이 다르고 거리가 멀었으나 모두 훈춘

시에 속하였다.)

 

총괄을 조선족 훈춘 출신의 직원이 맡았는데 원래 부친이 훈춘 지역 공산당 간부를

하여서 어릴 때 아무 느낌도 없이 방천으로 소풍이나 놀러 다닌 기억이 생생한데,

오늘날 세계적인 관심 지역이 되었고 한국 기업가들이나 관광객들이 동북 지역으로

오면 반드시 들러 가고 싶어 하는 명소가 되어서 얼떠떨한 느낌이라고 술회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내 고향 낙동강변의 방천이 공단으로 변한 모습이 떠올랐다.

 

원래 스케줄은 봉오동 홍범도 장군 전투 유적지, 장령자 중러 국경지대, 도문의

중조(中朝) 해관을 거쳐서 방천의 "조중러 국경 삼각지"가 하이라이트로 탐방의

끝을 장식하였으나 여기에서는 주로 이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만 소개해 본다.

 

 

대형 버스 두 대가 연길을 벗어나면서 인차 꼿꼿하게 뻗은 고속도로에 올라서니까

만주의 넓은 벌판이 시야게 시원하게 들어왔고 동서남북 야산에는 유사 이래로

사람들이 두 발로 걸어서 만든 밋밋한 산길이 소실점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이런 산길 보다는 인츰 아래 쪽으로 굽어 흐르는 해란강 쪽에

가 있었다.

이곳 간도의 위대한 서사적 대하 소설가 김학철은 장편 “해란강아 말하라”에서

일제 강점기의 독립투쟁사를 그리지 않았던가.

아직도 소달구지가 다니는 해란강변의 농가에는 우리 배달겨레가 투박한 북녘의

말을 쓰면서 살고 있을 것이었다.

 

집의 모양이 그냥 창고처럼 1자집이면 한족의 집이고 양쪽 끝이 갓 속의 망건 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면 조선족의 집이라고 누가 설명해 주었다.

복잡한 설명을 내가 이렇게 표현해 보았는데 우리 세대가 아니면 이 말 또한

통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정작 뛰는 가슴은 토문 근처에서 시작되었다.

바로 그 강 건너가 북한 땅이 아니던가.

중국 쪽과 북한 쪽을 손 쉽게 구별하는 방법은 산에 나무가 있느냐,

민둥산이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과연 그 구별은 영락없었다.

살아가는 데에 다 특징이 있고 이유가 있겠으나 그 벌거벗은 모양이 헐벗은

모습으로 보이는 내 시선이 착각이기를 바랄 따름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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