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힐리야, 옛땅! 연변과 만주 벌판

방천 일기(2)

원평재 2005. 4. 19. 05:26

토문을 지나면서는 두만강을 오른 쪽으로 끼고 계속달리면 오른 쪽의 강건너

민둥산이 바로 북한 땅이었다. 

그쪽으로도 가끔 집과 경작지가 보였으며 아침밥을 짓는 연기가 정겹게

올라가고 있었다.

토문과 두만의 해묵은 이야기들은 다른 기회에 이야기할 말미를 잡기로 한다.

 

훈춘시의 모습은 연길과는 또 달랐다.

인구 20만의 이 도시도 물론 연변 조선족 자치구에 속하였으며 조선족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도로의 간판에는 한글이 들어있었으나

연길 보다는 덜 철저한듯 하였고 가끔, 아니 자주 한글이 빠진 모양을 볼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이 곳이 국경 도시임을 나타내는 듯 러시아 어가 간판 속에

심심치 않게 들어가 있었다.

 

 

특히 장령자 쪽으로 가는 합작구에 그런 러시아 글이 많이 있었고 러시아 인들의 모습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세 나라의 상품이 통관되는 해관(海關)에 도착하였다.

세관을 중국에서는 바다나 육지나 하늘이나 모두 해관이라고 불러서 역사성에 무게를

두는건지, 세관이라는 표현이 돈내는 곳이라는 너무 낯이 보이는 표현이라 둘러댄건지,

하여간 해관으로 들어가 보았다.

러시아 인 컨테이너 운전기사들이 많이 보였고 비닐 봉지에 음식과 음료를 사서

트럭으로 들락거리는 모습도 이채로웠다.

 


이 곳까지가 모두 훈춘의 시계였다. 여기에서 배가 러시아를 왕래하고 우리나라의

속초에도 많이 다닌다고 한다.

과연 Dongchun Ferry라는 글이 붙은 컨테이너가 많이 보였고 꽁무니에는

"한국 특장차"라는 한글로된 한 핏줄 증명서도 달고 있었다.

 

훈춘은 원래 크지 않던 마을이 계획 도시로 발전하기 때문에 새 건물들의

임대광고와 아파트 분양을 알리는 조감도들이 도시 외곽에서 많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탄 큰 버스는 오토바이와의 작은 접촉 사고로 시간을 빼앗겨서,

훈춘 시내에 있는 조선족 경영의 경신 식당에서 조금 늦은 점심을 먹고 우리는

방천으로 달렸다.

식당에는 마침 별 두개를 단 군관이 나타났는데 이 식당 주인의 아들로서 잠시

집안일을 도우러 나왔다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이 행사를 총괄하는 우리 조선족 직원의 친구이기도 하여서 특별히 나왔다고

하였다.

 

(훈춘의 젊은 남녀 미발 복무원들이 길건너 내 디카를 의식하고 포즈를 취하더군요.)

 

이제 방천 쪽으로 달리는 길에서 북한 쪽은 너무나 똑똑히 잘 보였다.

철교가 두어군데 걸려있어서 마음은 벌써 북녘을 달려가고 있었으나 가슴은 아팠다.

더욱이 산업도로 형태로 닦은 이 길은 작년인가에 완공이 된 새 길이었고 통행하는

차도 별로 없었는데 왼쪽으로 낮게 계속되는 철조망 너머는 바로 러시아 땅이었고

오른쪽 강 건너는 북녘 땅인 것이다.

 

 

중국 땅은 지도에서도 보이듯이 그 새로 난 길의 좁은 회랑뿐이었다.

파란 눈을 가진 사람들이 저 시베리아 툰드라 동토를 지나서 여기에 나타날 때까지

청조의 사람들은 무얼 했는지, 아니 남의 집 걱정할 일이 아니라 일제가 간도 협약을

맺을 때 우리는 뒷짐 지고 또 무엇을 했었던지---.

 

 

(망해각 밑의 팔각정에 다시 모여 섰습니다. 영화 감독은 아니지만 저는 또 카메오

게임을---. 렌즈를 남에게 맡겼더니 구도를 잘 못맞추었군요.)

 

 

(계속)